영화와 단상 #4
굽은 등 뒤의 빨간 횡십자 표식이 인상적이다. 칙칙하고 빛바랜 재킷 위에 칠해진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위치를 생각해보면 누군가에게 보여야 하는 것이기 때문일 듯하다. 어쩌면 그는 이미 죽어있고, 등 뒤의 표식이 살아서 그를 조종하는 듯하다. 분명한 것은 자신 스스로가 칠한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다.
국방색의 남루한 넝마로 덮은 무언가는 회색 의자 위에 올려져 있다. 무언가의 앞에서 그의 어깨는 무너졌다. 고개를 숙여 그것을 응시하는 것인지, 아니면 눈을 감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정적이 감도는 방 안에서 공기는 무겁게 내려앉아있다. 침묵 속에서 그의 폐에서 새어 나오는 호흡소리만이 작게 들려온다. 그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단상
홀로코스트 속에서 살아남아있는 그의 이름은 사울이다. 그는 유대인이며, 독일군의 부역자이다. 가스실로 들어가기 전 같은 유대계 사람들의 옷을 벗기고 소지품을 몰수한다. 그리고 절멸 과정이 끝나면 그와 동료들은 시체들을 옮겨 불태운다. 감정은 사라진 지 오래고, 물이 마른 눈은 건조하다. 꽤 오래 반복되었는지 몸짓은 재빠르다. 그러던 중 가스실의 시쳇더미 속에 어느 주검을 발견했다.
사울은 울지 않는다. 표정이 변하지도 않고, 해야 할 일듯 앞에서 정확하고 재빠르게 움직일 뿐이다. 그 뒷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