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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ther Oct 27. 2024

고향을 떠난 사람들, 신세고와 조 군

 “나는 중국을 몰라. 나는 여기서 태어났고 여기서 살고 있어. 나는 인도네시아 사람이야. 우리 어머니는 중국에 가고 싶어 하셨어. 내가 중국에 간다면 여행이지 살러 가지는 않을 거야.”

 신세 고. 중국이름 고칙민(Goh Chik Min). 1940년대생. 하얀 맑은 얼굴은 누가 봐도 중국계 후손이다.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에서 중의학을 공부한 한의사이다. 인도네시아 독립 후 혼란기에 성장했고 대규모 학살사건인 9.30사태도 겪었다. 수하르토 집권기의 중국인 탄압도 기억한다. 그는 인도네시아어, 중국어(광둥어), 영어로 소통할 수 있고 의학 관련 한국말도 구사한다. 


자카르타 빠사르바루에 있는 신세고 자택에서. 가운데가 신세고. 2016년 8월13일 

 신세는 인도네시아에서 중국 한의사를 부르는 호칭이다. 신세 고는 한국인들에게는 중부자카르타 빠사르 바루에 사는 침을 잘 놓는 중국계 한의사로 알려져 있다. 한국인들은 1990년대 초반부터 서울의 남대문시장 정도 되는 빠사르 바루에 있는 그의 집으로 침을 맞으러 다녔다. 그런데 이건 내가 확인한 내용이고, 어쩌면 그 이전부터 한국인이 다녔을 수도 있다. 나는 2000년대 초반부터 다닌 것 같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있으면 저녁에는 어깨가 너무 무겁고 아팠다. 눕지도 앉지도 서지도 못하다가 침을 맞고 오면 통증도 가시고 몸도 가벼워졌다. 신세 고는 침을 깊숙이 꽂은 후 침 끝에 쑥을 올려서 태웠다. 쑥을 태우며 나오는 열기가 침을 통해 몸으로 전달되는 방식이다. 한국 한의사들이 침을 얕게 꽂은 후 전기자극을 주는 방식과 다르다. 


 2000년대 초반에는 늘 환자가 기다리고 있어서 증세를 말하고 침만 맞고 왔지만, 201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환자가 줄어 우리만 있을 때가 많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여유가 생겼다. 침을 꽂고 누워서 ‘신세’라는 말의 뜻을 물었다. “혹시 신세가 선생(先生)에서 온 말인가요?”라고 물으니, 그는 “맞아. 사람들이 선생님이라고 부르던 데서 온 명칭이야”라고 확인해 주었다. 그리고 나서 사람에 대해, 세상에 대해, 인도네시아에 대해, 중국계 인도네시아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나는 중국을 몰라. 나는 여기서 태어났고 여기서 살고 있어. 난 인도네시아인이야”라는 말이 내 귀에 꽂혔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는 중국에 가고 싶어 하셨어”라는 말까지. 


황해도민의 날 행사에서. 2024년 5월1일 

 


 조 군은 황해도에서 월남 하셨다. 5살에 서울로 와서 만난 고향 어른들은 우리 아버지가 환갑을 넘기셨을 때도 조 군이라고 부르셨다. 80~90대에 이른 어른들 눈에는 여전히 아들뻘의 조 군이었지만, 수십 년이 흐르는 동안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 경기도 북부에서 월남한 사람들은 북한사람에서 ’피난민, 실향민, 북한사람’ 등으로 불리다가 더 이상 남한 사람들과 구별이 무의미해진  대한민국 사람이 됐다. 지금도 그분들은 고향에 가고 싶어하지만 그곳에서 살겠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자신들의 삶이 시작됐고 어린 시절의 추억이 남아있고 부모님이 묻혀 계시는 땅을 확인하고 싶은 정도이다. 그들의 자녀들은 북한을 모르고, 모르는 만큼 북한이 별로 궁금하지 않고 북한에 가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난 사람들. 본인의 의지와 상관 없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 신세 고는 9.30사태로 이후 중국과 교류가 자유롭지 않았고 중국계임을 드러내지 못하는 상황을 살았고, 조 군도 남북 분단과 반공 이데올로기로 북한과 교류하거나 방문할 수 없는 세월을 사셨다. 수하르토 대통령이 실각하고 인도네시아에서 민주화가 진행되고 중국과 교류를 재개하고 활발해질 때도 인도네시아에 사는 중국인들은 중국계임을 드러내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여전히 조심스럽다.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전세계를 자유롭게 오가던 시대에도, 남한에 사는 실향민들은 북한에 있는 고향에 갈 수 없었고 여전히 언제 갈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지금 인도네시아에 사는 한국인들은 한국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까. 그들은 한국과 인도네시아를 원할 때 오가며 양국의 좋은 점들을 누리며 산다. 그들은 단절된 뿌리가 아니라 교류하고 도움이 되는 뿌리로서 한국을 인식한다. 그들에게 국경은 단절을 만드는 높은 장벽이 아니다. 인도네시아에 사는 중국계 사람들은 과거보다 사정이 좋아졌지만, 한국에 사는 실향민들에게는 그렇지 못하다. 신세 고와 조 군에게도 고향이 언제든 말할 수 있고 다녀올 수 있는 곳으로 바뀌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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