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기 적절한 태도에 관하여

프랑스 알자스 여행 후기 #00

by CHOi
스트라스부르 인근 도로 / 21.06.21

3년의 프랑스 유학 생활 끝에 처음으로 여행을 갔다. 물론 그동안 지방 한 구석에 틀어박혀 지낸 것은 아니다. 파리에 자주 머물렀고, 다른 지방에도 몇 번 갔었다. 하지만 다른 지방에서의 체류를 여행이라 말하지 않겠다. 그 지방에 사는 친구를 보러 가서 같이 시간을 보냈을 뿐이다. 단어 하나하나마다 고유한 뜻이 있다고 믿는 나에게 여행과 관광은 또 다르다. 그저 유명한 볼거리를 찾아다니며 사진첩에 저장하고 바로바로 다른 화려한 것들에게 카메라 렌즈를 돌리기 위함이 관광이라면, 내 평생에 관광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나에게 여행은 대체 어떤 고유한 의미가 있느냐 물을 수 있지만, 사실 명쾌하고 객관적인 답이 나오지는 않는다. 다만 낯선 장소에 서있고, 종종 계획에서 벗어난 상황들이 발생하고, 그 순간에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만끽할 수 있다면 그게 여행이 아닐까. 그런 이유라면 매 순간이 여행이라는 말도 맞다. 실제로도 그렇게 생각한다. 다만 이전까지 다른 지역을 가더라도 어느 정도 부모님께 금전적으로 의존해야만 했었던 학생의 삶이었다. 온전히 내 능력으로 어딘가로 떠날 수 있는 프리랜서가 된 이후 첫 여행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새롭다는 말을 덧붙이며 지금까지의 몇몇 여행에도 불구하고 이번이 첫 여행이라 스스로 고집하는 것에 대해 여러분에게 이해를 구한다. 나도 안다. 사실 그렇게까지 '첫 여행'은 아니다.


파리 동역 / 21.06.21

매 여행마다 새로운 모험에 대한 두근거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여행을 많이 해 본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런 떨림이 멎는 순간 여행이라는 단어는 그 의미를 잃는다. 매일같이 비행기를 타고 타지에 가야 하는 사람에게는 같은 비행기에 타고 있는 수많은 관광객들을 보더라도 여행을 한다고 느낄 수 없을 것이다. 나만해도 그렇다. 친구들이 여행을 오고 싶다고 부러워해 마지않는 프랑스 생활이지만, 유학생으로 현실적인 고민들에 치여사는 나에게 다른 사람들이 상상하는 두근거림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나에게 파리 에펠탑은 로맨틱의 상징이 아닌 덩치 크고 실용적이지 않는 철골 구조물일 뿐이다.


여행, 모험, 도전. 이런 키워드를 떠올리면 우리가 공통적으로 느낄 감정들이 있다. 낯선 환경, 다른 언어, 새로운 사람들 혹은 나와 다른 눈을 가진 그 사람. 두근거림이 따라온다. 반면에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낯선 상황을 마주하면 당황한다. 늘 타던 회사 엘리베이터에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인사를 한다면 경계할 수밖에 없는 게 사람이다. 내가 프랑스어 수업을 하며 종종 낯선 단어를 내뱉을 때면 학생들은 당황하는 모습과 함께 새로운 단어를 배워야만 한다는 현실에 풀이 죽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사람은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환경에 뛰어들기를 갈망한다는 사실이 굉장히 아이러니하다. 우리는 경계하는 대상을 동시에 갈망한다.


나의 일상은 다소 복잡하지만 난잡하지 않고 체계적이다. 삶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들은 대부분 내 예측 범위 안이다. 마치 잘 끼워진 톱니바퀴들처럼 일상은 규칙적이고 돌발 상황 프로토콜도 재빠르게 작동한다. 이 기계 장치를 주기적으로 닦고 조이는 일은 습관이 되어버려서, 사람들은 내가 이 체계 밖에서 살기를 무서워한다고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잘 맞춰진 체계를 좋아하는 게 아니다. 규칙성을 찾고 체계를 만들어나가는 과정 자체를 좋아한다. 마치 아이들이 모래성을 쌓은 뒤 신나게 부시는 것처럼. 그런 내가 자발적으로 낯선 환경에 뛰어드는 것을 싫어할 리가 없다.


21.06.23

좋아하는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는 이런 문구가 나온다.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다.' 삶의 안테나 바깥으로 벗어나 나를 잡아먹을지도 모르는 혼돈을 자발적으로 쫓아가는 것. 내가 속하지 않았던 낯선 세상을 마주함으로써 내가 몰랐던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 완전함이 아니라, 불완전함을 찾기 위해 지금의 시공간에서 벗어나는 것. 그런 것들이야말로 여행하기 가장 적절한 태도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