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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지 Jan 08. 2021

임산부인가, 장애인인가 해서!

티 안 나는 장애인의 티 내는 에세이 출간 기념


  나는 겉으로는 티가 나지 않는 장애를 가진 장애인이다. 어릴 때는 비장애인 코스프레를 능숙하게 해냈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점 비장애인 코스프레가 버거워지고 있어 티가 난다.


  어릴 적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내 정체성이었다.


  많은 사춘기 청소년들이 그렇듯, 나 역시도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었고 내 자신에 대해 존재론적 의문을 던지며 매일 고뇌했다. 나는 나의 장애를 잘 이해하지 못했고,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 나름 잘 받아들였다고 그때는 생각했지만 지나오니 전혀 그러지 못했음을 알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장애인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의 장애인의 이야기는 너무나 드물다. 분명히 장애인은 존재하는데, 장애인의 이야기가 드물다. 찾아봐도 너무 오래되었거나 '비장애인을 위한' 장애인의 이야기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장애가 있는 사람도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비장애인인 당신이라면 더 잘할 수 있어요! 같은 이야기 말이다. 어렵사리 찾은 장애인의 이야기는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었으나, 세상에는 다양한 장애가 있고 나와 비슷한 장애인의 이야기를 찾기는 매우 어려워서. 그 이야기가 와닿지 않을 때도 많았다.


  장애인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듣고 싶다. 하지만 어디서?


  나는 마치 내가 세상에 혼자 존재하는 장애인 같았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 눈이 보이지 않는 장애인은 언론에서 많이 보여준다. 이야기도 많이 한다. (어디까지나 비교적이다. 그래봐야 오십 보 백 보 수준이다.) 겉으로 딱 보기에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겉으로 티가 나지 않는 장애인은 어디에 있지?


  티가 안 나서 외로웠다고 징징대는 게 아니다. 티가 나지 않아서 비장애인 코스프레를 하면서 분명히 득을 본 것도 있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하나다. 더 많은 장애인들의 이야기가 세상에 나와야 한다. 이런 장애인도 있고 저런 장애인도 있다.


  이렇게 사소하고 가벼운 불평불만 같은 내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놓아도 되는 것인가 두려우면서도, 당신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 이렇게 나는 내 이야기를 먼저 꺼내놓는다.


  소수자는 원하지 않아도 어디서든 발언을 할 때면 자신이 속한 단체를 대표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쉽게 일반화하기 때문이다. 나는 결코 그러한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누군가를 상처주기 위해 글을 쓰는 게 아님을 분명히 밝혀두고 글을 시작한다.


  이 글은 내가 독립출판한 책 "오른쪽 다리가 불편하세요?" 에 실린 글이며, 또 다른 에피소드는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임산부인가, 장애인인가 해서!


  때는 2018년 2월 6일, 서울로 가는 지하철 안 노약자석에 앉아 있을 때였다. 옆자리에 앉은 할아버지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노골적으로 한심한 젊은이를 보는 눈빛이었다. 나는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며 똑같이 할아버지를 노려보았다. 나를 쳐다볼 때는 아무 말 없던 할아버지가 몹시 불쾌한 얼굴로 내게 짜증을 내며 말했다.


  “왜 쳐다봐?”


  나는 차분하게 꽂고 있던 이어폰을 빼고 말했다.


  “절 보셔서요.”


  그러자 할아버지는 흐릿한 발음으로 무어라 내게 말했다. 몇 번이나 못 알아들어서, 뭐요? 뭐요? 하고 되물었다. 나는 이전의 경험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확실히 하자, 나는 당당한 사람이다, 하고 매일 지하철을 탈 때마다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있었다. 마침내 알아들은 노인의 말은,


  “임산부야?”


  그는 내게 그렇게 묻고 있었다.


  “아 임산부인가, 장애인인가! 해서 보고 있었지!”


  할아버지의 눈에는 QR코드 스캐너처럼 알 수 없는 무슨 장치가 되어 있던 걸까? 그걸 할아버지가 나를 스캔한다고 해서 알 수 있는 일인가? 기가 막혔다. 설령 둘 중 하나에도 속하지 않는다 한들, 내 몸이 아프다면 이용할 수 있는 게 노약자석이 아닌가? 임신을 하지 않았다면, 장애등급을 받지 않았다면 이용할 수 없는 게 노약자석인가?


  “장애인인데요.”


  “장애인이면 됐어!”


  아! 나는 자격을 얻었다!

  이 엄격한 노인이 내가 ‘자신의’ 노약자석에 앉을 수 있도록 허락해줬다. 그럼 이제 어휴 불쾌하다, 하고 그냥 무시하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었다. ‘재앙의 주둥아리’, 재주 말이다.


  “이제 아셨으니까 쳐다보지 마세요.”


  그 말을 끝으로 이어폰을 꽂고 읽던 책으로 시선을 옮겼다. 옆에서 이어폰의 음악 소리를 뚫고 허! 참! 하면서 혀를 차며 기가 막혀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듣는 나는 더 기가 막혔다.


  그럼 평생 쳐다보고 있을 거였나? 애초에 쳐다본 사람이 무례한 일인데 그걸 인지할 수 없나? 기가 차 하는 할아버지를 무시하고 여유롭게 지하철을 타고 목적지로 갔다.


  그나마 이 할아버지는 꽤 젠틀한 사람이다.


  어떤 할아버지는 아예 대놓고.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젊은 사람이 노약자석에 앉으면 어떡해!”

 

 나도 소리쳤다.


  “저 장애인인데요! 장애인도 이 자리에 앉을 수 있어요!”


  오랜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결코 주눅들면 안 된다. 이건 여론전이다. 목소리가 높아지는 순간부터 사람들은 우리를 주목한다.


   그 할아버지는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젊은 여자애가 되바라지게 어른의 말에 고분고분하지 않고 자신에게 말대꾸하는 게 불쾌했는지 여전히 분을 삭히지 못한 채로 내게 윽박질렀다.


  “네가 왜 장애인이야! 네가 어디가 아픈데!”


  그리고는 나를 샅샅히 살폈다. 나는 기가 찼다. 안 보이면 장애를 가진 게 아닌가? 아니 그리고 도대체 왜 노인 아니면 잘 봐줘서 장애인만 앉을 수 있는 게 노약자석인 건데. 부글부글 속이 끓어서 할아버지와 한참 언쟁을 했다.


  “장애인이 아니더라도 앉을 수 있어요. 몸이 불편한 사람이라면 노약자석을 이용할 수 있다고요. 노, 약자석이요! 약자석!”


  종국에는 지갑에서 복지카드를 꺼내서 보여줬다. 지겹고 화가 났다. 억울했다. 왜 내 소중한 개인정보를 역무원도 아니고 이런 사람의 부당한 요구에 보여줘야 하는가? 그날의 기억은 내게 너무 속상하고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할아버지는 부모님까지 들먹이며 욕했다.


  그날 나는 울었다.


  슬퍼서 운 건 아니었고, 일부러 울었다. 슬프긴 슬펐다. 그렇게 내가 당하고 있는데도 모두 구경만 할 뿐 도와주지 않았다. 내가 부당하게 당하고 있는데 왜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걸까. 너무 외로워서 슬펐다. 근데 그와는 별개로 눈물은 일부러 흘렸다. 여론전이니까.


  “저도 저희 부모님 소중한 딸인데 저한테 도대체 왜 그러세요!”



  그 말을 끝으로 울면서 무릎에 엎어졌다. 흐어어어엉, 서럽게 우는 척 소리까지 내면서 코를 훌쩍였다.


  “저희 부모님이 얼마나 속상해하시는지 아세요? 저도 장애인이에요, 저도 여기 앉기 싫어요(구라)! 저도 건강하고 싶어요(진심)!”


  내가 울음을 터뜨리자 할아버지가 당황했다.


  “나도 장애인이야!”


  할아버지는 자신의 복지카드를 내밀며 말했다. 나는 울면서 소리쳤다.


  “그래서요! 안 궁금해요! 어쩌라고요!”


  그리고 마구 서럽게 울었다. 그제야 사람들이 내 편을 들어주기 시작했다. 내가 아주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리고 나서야 라운드가 끝났다는 듯. 제일 먼저 다가와 편을 들어준 건 아주머니였다. 손수건을 건네주며 아가씨, 울지 마. 나를 위로해주었다. 그리고는 여전히 나를 향해 화를 내는 할아버지를 향해 그만하세요, 젊은 사람 속상하게 왜 그러세요. 편을 들어주었다.


  그때부터는 정말 울었던 것 같다. 손이 파들파들 떨렸다. 지하철을 탈 때마다 자리가 있을까, 자리가 없어 서서 갈 때마다 내 다리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계산했다. 노약자석에 앉을 때는 단 한 번도 마음 편하게 앉아본 적이 없었다. 책을 읽으면서도 내내 누가 날 함부로 대한다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 억울하게 울면서 집으로 가지 않겠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도 그 사람이 함부로 대하도록 두지 않겠다고 각오하며 촉각을 세우고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어딜 봐도 멀쩡한데 거짓말하는 되바라진 나쁜 년이 되었다. 장애인이라면 불쌍하고 측은한 맛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서 밉보이기 일쑤였다. 이렇게 내 편을 들어준 사람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조용히 가는가 싶다가, 내리기 직전 또 나를 향해 억울하면 경찰에 신고하라는 식으로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그러자 이번에는 남자가 큰 소리로 외쳤다. “할아버지! 그만 좀 하세요!” 그러자 할아버지가 찍 소리도 못하고 지하철에서 내렸다.


  나는 얼굴이 엉망이 되어서 콧물투성이 손수건을 아주머니께 돌려드렸다. 일부러 운 건데, 정말 슬픈 게 아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서러워져서 진짜로 슬퍼서 울었다.


  그렇게 7호선을 한 시간 더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현실은 어느 한 장면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돌아가서 밥 배부르게 먹고 씻고 누워서 쿨쿨 잘 잤다. 다음날에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하지만 그런 사람을 만나면 또 두 주먹 꽉 쥐고 싸우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다시 지하철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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