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해서, 나는 잘생겼다.
거울을 볼 때마다, "와 이 정도면... 아이돌도 그냥 가능 할거 같은데"는 생각이 든다. 물론 친구들은 늘 비웃는다. 하지만 그 놈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뻔하다. 부러워서 그런거겠지.
나는 김지훈. 포항오천고 3학년 3반. 키는 184. 어깨는 태평양. 공부는... 뭐, 그저 그렇다. 성적에 대한 내 마인드는 중간만 가자 주의. 근데 운동만큼은 자신 있다. 농구도, 축구도, 수영도 웬만한 건 다 해봤다. 했다하면 잘한다. 싸움도 잘한다. 왜냐하면 격투기 종목도 거의 다 거쳐왔기 때문이다. 그러다 정착한 곳은 킥복싱. 킥복싱으로 세계 제패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뿐.
솔직히 고3이라 진지하게 고민도 해야 할 시기다. 근데 이상하게, 진지한 거랑 나는 잘 안 맞는다. 오늘 점심도 매점에서 컵라면에 참치마요를 먹으면서, "내일 급식 뭐냐?" 하고 묻는 내 모습을 보면 안다.
우리 가족 얘기를 좀 해야겠다. 부모님은 돌아가셨다. 어릴 때 무슨 사고였다고 들었는데, 할머니가 그 이상 말을 안 해주신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는 조금 무거워져야 할 의무감을 느끼지만, 워낙 오래전 일이고, 할머니, 할아버지, 동생과 사는 생활에 익숙해 져서 이제는 부모님 이야기를 할 때도 별다른 감정을 느끼진 않는다.
동생 지민이는 나보다 두살 어리다.
지민이가 우리 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학교 전체 스크린이 동시에 깜빡였다. 평소엔 학습자료가 뜨는 그 스크린들에, 갑자기 19금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한 건 그 다음 순간이었다.
2초 정적.
분위기는 둘로 나뉘었다.
"우우우우우우우~~~"
남학생들은 환호했다.
“꺄아아아아악!”
여학생들은 눈을 가린척 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기집애들 내숭은..
“뭐야? 왜이래?"
"꺼! 끄라고!”
교무실에서, 방송실에서, 아수라장이 됐다.
전교생이 웅성이고, 선생님들이 미친 듯이 컴퓨터를 두드렸지만, 화면은 멈추지 않았다. 하긴 선생님들이 컴퓨터에 대해 뭘 알겠어...
딱 3분.
모든 화면이 일제히 꺼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크린 중앙에 회색 배경에 검은 글씨로 한 줄이 떴다.
"재밌었냐? - from. K.J.M.-"
그날 오후, 지민이는 선생님들에게 둘러싸인 채 조용히 앉아 있었다. 누가 봐도 위기 상황인데, 걔는 책상에 다리를 꼬고 앉아 딸기 우유를 마시고 있었다.
“김지민, 네 짓이냐?”
“그렇게 생각하시면, 그쪽 자유죠.”
“너 지금 장난치는 거냐?”
지민이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봤다. 봄바람이 불고, 운동장에선 애들이 축구를 하고 있다.
“네, 장난 맞는데요?”
교감이 멱살을 잡을 듯 다가오려 하자, 지민은 스스로 일어섰다. 그리고 가방에서 프린트 된 종이 한 장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렸다. 깔끔하게 적힌 자퇴서였다. 이름, 생년월일, 보호자, 사유까지 모두 자필로 적혀 있었다. 사유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 학교, 생각보다 재미가 없네요.” 그리고 싸인 옆에 작게, 'P.S. 방송실 보안은 너무 허술해요.' 지민이는 무표정으로 유유히 학교를 빠져나갔다. 넋을 잃어버린 선생님들은 지민이를 막아서지 못했다.
다음 날부터, 1학년 7반 지민이 자리는 비었다.
어지간히 미친 놈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런 짓을 하고도 멀쩡한지...
내 동생이지만 가끔 걔가 낯설다.
할아버지는 오징어잡이 배 선장이시다. 인생을 바다에 바친 분. 항상 까맣게 탄 얼굴에 굵은 주름이 있는데, 웃을 땐 정말 순하다. 할아버지의 그 웃음에 힘들었던 하루를 다 위로받는 듯한 때도 있다. 할머니는 된장찌개와 정을 파시는 분이다. 그리고 마당 고양이 삼색이를 나보다 더 예뻐하신다.
어쨌든 미치지 않는 나는 오늘도 평범하게 학교에 갔다. 평범한 날의 연속일 줄 알았는데, 오늘은 좀 달랐다.
그 애를 처음 본 날이었거든.
조용한 복도 끝, 햇살이 창문 너머로 길게 드리우던 그 순간. 그녀는 검은 긴 머리를 넘기며, 혼자 교무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 순간 그애랑 눈이 딱 마주쳤다.
근데 그 눈빛이 좀 이상했다. 그 애는 분명, 나를 아는 눈치였다.
그날부터 내 고3 인생은 평범하지 않게 돌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