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점과 차이점을 중심으로
분과(division)란 인지심리학, 발달심리학, 임상심리학과 같은 심리학 안의 다양한 하위 영역을 지칭하고, 분야(field)란 교육학, 사회복지학과 같은 심리학 바깥의 다양한 학문 분야를 뜻합니다. 지난 글에 이어, 이번에는 상담심리학이 인접 분과 및 분야와 어떤 점에서 비슷하고 또 다른지 설명하고자 합니다.
※ 이하 내용은 Gelso와 Williams가 집필한 ⟪상담심리학⟫ 제4판의 내용 일부를 번역 및 요약한 것입니다.
Gelso, C. J., & Williams, E. N. (2022). Counseling psychology (4th ed.).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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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심리학(clinical psychology)은 심리학 원리를 적용해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응용심리학(applied psychology) 안에서 가장 큰 분과입니다. 임상심리학은 이상 행동(abnormal behavior) 또는 역기능적 행동(maladaptive behavior)을 연구하고 치료하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있으며, 심리적 건강보다는 정신병리(psychopathology)를 다룹니다.
임상심리학에서는 정신병리 내지 이상 행동에 개입하고자 통상의 상담보다 장기적인 형태의 심리치료(psychotherapy)를 활용합니다. 인간의 역기능적 측면에 집중하다 보니, 교육 및 직업 발달이나 환경과 같은 그 외의 영역에 대한 고려가 상대적으로 미진한 편입니다. 상담심리학자가 이러한 영역을 핵심 가치로 삼을 만큼 중요시하는 것과 대조적이지요. 그 결과, 임상심리학자는 좀 더 심각한 정신적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방문하는 병원과 같은 환경에서, 상담심리학자는 대학교 상담센터처럼 좀 더 교육적인 환경에서 더 많이 활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두 분과 간 차이는 미국보다 한국이 더 큽니다. 미국에서는 상담심리학 전공자도 병원에서 수련받을 수 있고, 임상심리학자(clinical psychologist)라는 이름으로 병원에서 근무하는 상담심리학 전공자도 상당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임상심리학 전공자만이 병원에서 수련받을 수 있고, 정신건강임상심리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어요. 수련 형태도 확연히 다르고요.
산업/조직심리학(industrial/organizational psychology)은 산업과 조직 안에서 인간 행동의 효과성을 높이는 것을 도모하는 분과입니다. 산업/조직심리학자는 고용, 평정, 직무분석, 평가 센터(assessment center) 개발과 같은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며, 최근에는 사이버보안과 같은 분야로까지 활동 영역이 확장되고 있습니다.
산업/조직심리학과 상담심리학은 진로와 직업 발달, 업무 환경과 같은 요소를 중점적으로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다만 상담심리학은 진로 발달과 같은 심리적 과정에 좀 더 관심을 두고, 산업/조직심리학은 개인의 수행(performance)에 진로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탐색하는 데에 초점을 둔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조직 안에서 상담심리학자는 상담을 통해 개인의 정서 조절을 증진하지만, 산업/조직심리학자는 개인의 직무 수행을 개선하기 위해 조직적 차원에서 개입 전략을 실행합니다.
미국에서는 진로 발달과 관련된 영역을 상담심리학의 주된 정체성으로 간주하는 역사적 맥락이 확고히 자리 잡혀 있습니다. 그렇기에 산업/조직심리학을 상담심리학과 인접한 분과로 여기는 것이지요.
학교심리학(school psychology)은 아이들이 학습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문제를 예방하거나 해결하는 데에 심리학적 지식과 기술을 적용하는 분과입니다. 학교심리학자는 학교에 속한 아동과 청소년, 대학생과 같은 초기 성인까지를 개입 대상으로 간주하며, 학교 안에서 학생, 교사, 보호자에게 자문, 상담, 평가를 제공합니다.
학교심리학과 상담심리학의 중첩은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발생합니다. 상담심리학자가 중학교에서 일하는 경우, 또는 학교심리학자가 대학교에서 일하는 경우에 해당하지요. 그러나, 학교심리학자는 교육적・심리학적 평가를 주로 담당하는 반면, 상담심리학자는 상대적으로 상담이나 예방 프로그램 개발과 같은 일을 맡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생깁니다.
한국에서는 학교심리학이라는 분과가 명목상으로만 존재합니다. 학회가 있기는 하지만 학교심리학 전공도 없고, 이에 대한 수요도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미국에서는 학교심리학자(school psychologist)가 학교에서 담당하는 일이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으며, 늘어나는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미국에서 상담사교육(counselor education), 정신건강상담(mental health counseling), 학교상담(school counseling)과 같은 상담 전공은 석사급 인력인 상담사(counselor)를 양성합니다. 상담 전공과 상담심리학은 거의 동일한 역할과 핵심 가치를 지향하기에, 이것만으로 두 분야를 구별 짓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다만, 상담심리학은 심리학의 한 분과로서 과학자-실무자 모델(scientist-practitioner model)을 준수하며, 박사급 인력인 심리학자(psychologist)를 양성하는 전공이라는 점에서 상담 전공과 차별화됩니다.
상담심리학과 상담 전공은 학문적 기반과 양성 시스템 말고는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배우는 내용도 비슷하고, 중요시하는 가치도 비슷하고, 현장에서 하는 일도 비슷하거든요. 몇 년 전부터 미국심리학회(APA)에서도 석사급 자격 도입에 대한 논의가 지속되고 있어, 조만간 상담심리학 전공에서도 석사급 자격을 발급할 수 있게 될지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둘 다 석사급 자격을 발급한다는 점에서 더더욱 비슷해질 거예요.
한편 한국에서는 심리학과 상담심리학 전공을 졸업하든 교육학과 상담 전공을 졸업하든, 똑같은 수련 과정을 거쳐 똑같은 학회 자격(상담심리사, 전문상담사) 또는 국가자격(청소년상담사)을 취득합니다. 학문적 기반이 다른 것 말고는 둘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 셈이지요.
정신의학(psychiatry)은 정신장애의 진단과 치료를 담당하는 의학의 한 분과입니다. 정신과 의사는 주로 약물 처방과 같은 의학적・심리학적 개입을 활용하며, 심리치료도 이에 포함됩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정신과 의사가 직접 심리치료를 실시하는 일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신의학의 주무기는 진단과 약물 처방입니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정신의학 수련 과정에서 요구하는 심리치료 트레이닝은 임상심리학자 또는 상담심리학자가 받는 트레이닝에 비해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한참 모자랍니다.
임상사회복지학(clinical social work)은 임상 현장에서 활동하는 임상사회복지사(clinical social worker)를 양성하는 전공으로, 상담 및 심리치료와 더불어 프로그램 관리, 지역사회 실무, 사회복지 정책과 관련된 영역을 아우릅니다. 임상사회복지사는 석사급 인력으로 주로 사설 상담센터에서 활동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심리평가를 수행할 수 없으며, 상담심리학자와 달리 연구, 학업상담, 진로상담에 대해 배우지 않습니다.
미국에서는 임상사회복지사가 상담인력 중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임상사회복지사 자격을 갖춰도 상담센터를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상담에 대한 훈련 또한 석사급 상담 전공에 준할 만큼 집중적으로 이루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