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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의 첫 관문, 어학 성적

다소 무모했던 ‘나홀로’ GRE/TOEFL 준비

by 카일

어학 성적은 유학생이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스펙이다. 기깔 나는 SOP와 대단한 연구 실적을 갖췄다 한들, 어학 성적이 없다면 그해 입시에 지원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학 성적이 입시의 당락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지만, 필수 요건이라는 점과 만족할 만한 점수를 얻는 데에 상당한 노력이 든다는 점에서 이에 따른 심리적 부담이 상당하다. 따라서, 유학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더 늦기 전에 영어 공부부터 시작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


GRE와 TOEFL은 시험 특성상 학원 수강이 강제된다. 공부해야 할 양이 워낙 많아 혼자 준비하기 어렵고, 최신 기출문제나 실전 팁 등은 학원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돈과 시간이 있었다면 망설임 없이 학원을 다녔겠지만, 방학 중에도 생활비를 버느라 학교에서 주어지는 일을 소화해야 했기에 학원까지 다닐 여력이 없었다. 그러던 중 운 좋게 먼저 유학 간 선배로부터 GRE 학원 교재를 물려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혼자 준비해보기로 결심했다.



GRE, 어떤 시험인가


더 간명하게 설명할 자신이 없어, 앞선 글에서 GRE에 대해 설명한 부분을 그대로 가져왔다.


GRE는 미국의 대학원 입학시험이며, Verbal(V), Quant(Q), Analytic Writing(AW)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Verbal으로, 대부분의 수험생이 평균 이상(보통 150점대 초중반)의 점수를 목표로 삼는다. 높은 점수를 얻으려면 최소 3,000개 이상의 단어를 외우고 1,000개 이상의 기출문제를 소화해야 하는데, 이 과정이 녹록지 않은 탓에 대부분 학원을 다니며 스터디에 참여하게 된다.


Verbal에서 등장하는 문제 유형에는 Sentence Equivalence(SE), Text Completion(TC), Reading Comprehension(RC), Critical Reasoning(CR)이 있다. 각각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면:

SE: 하나의 문장에 들어갈 단어 2개를 고르는 유형으로, 2개를 넣었을 때 그 의미가 동일해야 함

TC: 주어진 지문에 있는 빈칸 1-3개에 들어갈 단어를 고르는 유형으로, 해당 단어를 넣었을 때 논리적 흐름이 자연스러워야 함

RC: 짧거나 긴 지문을 읽고 이에 대한 여러 개의 질문에 답해야 함

CR: 지문을 읽고 지문의 논리 구조, 주장, 가정, 약점 등을 분석하는 질문에 답해야 함

4가지 유형 모두 어휘력을 바탕으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기에, 문제 풀이와 별개로 빈출 단어를 꾸준히 외워야 답을 맞출 수 있다. 학원에서 널리 활용하는 단어장 중 하나인 ‘거만어’에 수록된 단어 양은 약 3천 개로, 하루에 100개씩 외울 경우 휴일 없이 한 달이면 완주가 가능하다.


Analytic Writing은 얼마 전 축소되어 이제는 Argument Task만 준비하면 된다. Argument Task는 주어진 주장의 논리적 타당성을 글로 전개하는 과제로, 30분의 제한 시간 안에 적어도 4-500단어 이상의 완성도 있는 글을 써내야 한다. 상담 관련 프로그램에서는 AW 점수를 거의 없는 셈치기에 이를 준비하는 데에 힘을 뺄 필요가 전혀 없지만… 유학생으로서 기본(3.0 이상)은 해야 한다는 부담이 은근히 큰 영역이기도 하다.


Quant는 한국인 지원자에게 쉬어가는 영역에 가까우며, 교재만 있다면 굳이 학원 강의를 들을 필요가 없다. 중학교 수준의 수학 문제와 사회문화 과목에서 나올 법한 도표 해석 문제 등이 출제되는데, 이와 관련된 수학 용어를 영어로 잘 알아두기만 하면 어렵지 않게 풀 수 있다. AW와 마찬가지로, 상담 관련 프로그램에서는 Quant 점수를 보지 않기에 용어만 익힌 후 기출문제를 슥 풀어보는 것으로 준비를 끝내면 된다.



GRE 준비, 어떻게 했나


스터디. 같이 유학을 준비하던 친구 둘과 스터디를 꾸렸다. 스터디는 계획대로 진도를 나가는 데에 필요한 강제성을 확보할 수 있고, 문제의 풀이 원리를 함께 논의하며 익힐 수 있다는 점에서 도움이 된다. 첫 미팅 때 SE/TC, RC, CR 전 범위를 셋으로 나눈 후 할당했고, (어떻게든 빠르게 치고 빠진다는 마음으로) 3월 초 시험을 목표로 두 달간 빡세게 달리기로 결정했다. 스터디는 1주에 3번씩 화상으로 진행되었고, 만날 때마다 각자가 할당받은 문제의 답과 풀이 방식에 대해 설명하고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편 AW는 스터디용 BAND를 개설해 각자 정해진 시간에 맞춰 해당 문제에 대한 답을 공유하는 식으로 진행했고, Quant는 스터디와 별개로 각자 일정에 맞춰 남는 시간에 자율적으로 공부했다.


당시 세웠던 스터디 계획


단어 외우기. 1달간 거만어 3천 단어를 1회독한 후 2주 동안 2회독을 진행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시험 직전 2주 동안 핵단어를 봤어야 했겠지만, 새로운 단어를 외울 엄두가 나지 않아 거만어 3회독으로 준비를 끝냈다. 거만어는 워낙 유명한 덕에 구글 검색만 해도 다른 수강생이 만들어둔 Quizlet을 활용할 수 있으므로, 이를 그대로 복사-붙여넣기해 활용하면 된다. (예시) 스터디를 통해 단어 테스트를 따로 보지 않는 대신 Quizlet 시험 기능으로 해당되는 범위만큼 시험을 본 후 단톡에 점수를 캡처해 올리는 식으로 진도를 점검했다.

단어 외우는 시간을 따로 두고 공부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밥 먹을 때, 여기저기 오갈 때, 누워 있을 때, 생각 날 때마다 틈틈이. 자투리 시간에 Quizlet을 밥 먹듯 드나들며 단어를 외우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문제 풀이. 기출문제를 풀기만 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제를 푼 다음에는 반드시, 맞은 문제까지도 다시 보며 그 답이 왜 나왔는지 설명할 수 있을 만큼 풀이 원리를 숙지해야 한다. 또한 모르는 단어는 물론이고 아는 단어까지도 모르는 용례로 출제되진 않았는지 한 번 더 확인하는 것이 좋다.

아무리 고민해도 풀이 원리를 알기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는 구글 검색을 적극 활용했다. 문제에 담긴 문장을 타이핑한 후 검색하면 기출문제를 모아둔 중국 사이트가 나오는데, 번역기를 돌리면 답과 함께 다른 사람들이 풀이 원리에 대해 고민한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

교재에 담긴 문제의 양에 압도될 수 있지만, 그럼에도 가능한 많은 수의 기출문제를 풀어보는 것이 좋다. GRE는 문제은행식 시험이기에 이미 출제된 문제가 다시 출제될 확률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학원을 다닐 경우 직전 시험에서 출제된 문제에 대한 정보를 접할 수 있으므로, 다음 시험을 준비하는 데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직전에 출제된 문제는 다시 출제되지 않는 편이다)


AW 준비. 교재에 나온 모범답안에 준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고자 했고, 되도록 하루에 하나씩은 연습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보통 AW 강의를 들어야 교정받을 기회가 생기는데, 때마침 ChatGPT를 활용할 수 있게 되어 이로부터 도움을 톡톡히 받았다.




GRE 준비를 위한 팁


점수에 연연하지 말기. 요즘 같은 시대에 GRE 점수로 지원자를 떨어트리는 프로그램은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고, 설사 그런 프로그램이 있다고 한들 그런 곳에 유학생으로 가서 좋을 일이 없다고 본다. 적당히 해본 후 점수가 영 안 나온다 싶으면 미련 없이 TOEFL로 넘어가기 바란다.


AW, Quant에 힘 빼지 말기. 점수를 내도 보지도 않더라… 개인적으로 AW를 준비하는 데에 부담을 많이 느꼈는데, 정작 프로그램에서는 AW 점수가 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3달 안에 끝낸다는 마음가짐으로 공부하기. GRE는 단어를 외운 만큼 점수를 받는 시험이므로, 단기간에 최대한 많은 단어를 외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시험 준비 기간이 늘어지면 늘어질수록 급하게 외운 단어를 점점 까먹게 되므로, 긴 시간에 걸쳐 준비하기보다 3달 안에 바싹 집중하는 것이 좀 더 높은 점수를 받는 데에 유리하다.



듣기와 말하기가 관건인 TOEFL


TOEFL은 유학생의 어학 능력을 측정하기 위한 시험의 대표격으로, GRE와 달리 듣기(Listening) 능력과 말하기(Speaking) 능력도 측정한다는 특징이 있다. 3월 초 GRE 시험을 본 후 곧장 TOEFL 준비를 시작했는데, 읽기와 쓰기는 문제 유형만 익히는 것으로도 충분할 만큼 난이도가 훨씬 낮았다. 다만 듣기와 말하기는 GRE에서 다룬 적이 전혀 없었으므로 풀이 요령을 익히기 위해 인터넷 강의를 수강했다.


TOEFL에 대해서는 딱히 할 말이 많지 않다. 듣기는 notetaking 기술을 얼마나 잘 익히는지, 말하기는 각 문제 유형에 맞는 template을 답에 얼마나 잘 녹여내는지가 관건인 듯하고… 개강 직후 수업과 TOEFL 준비를 병행하느라 자신이 없는 상태로 어영부영 시험을 봤던 것이 내 경험의 전부다. 그럼에도 팁 몇 가지를 전하면:


점수에 큰 영향을 미치는 자리 운. GRE를 봤던 풀브라이트 건물에서 시험을 봤는데, 옆에 앉은 사람이 내가 한창 듣기를 풀고 있을 때 갑작스레 말하기를 시작했고, 그 바람에 주의가 흐트러져 문제 몇 개를 날려버리고 말았다. 시험장에 빨리 가는 것이 유리하다는 말을 듣고 5번째로 들어갔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시험을 망치고 나니 여러모로 허탈했다. 순전히 자리 운 때문에 시험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점, 미리 알고 마음의 대비(?)를 해두는 것이 좋겠다.


유창성에 방점 두기. 영어로 말하는 데에 자신이 없다면, 강의에서 주어지는 template에 맞춰 답을 보다 풍성하게 만드는 연습을 하는 것이 좋다. 나 역시 말하기 시험이 처음이라 효능감이 0에 수렴했지만, 최대한 떠드는 데에 집중했더니 기대 이상으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notetaking, 익숙한 방식으로 하기. 강의에서 추천하는 방식과 어디선가 본 합격 수기에서 추천하는 방식이 서로 달라 둘 다 연습하다 이도저도 아니게 되었던 기억이 있다. notetaking을 꼭 해야 점수를 받는 것도 아니니, 모쪼록 자신에게 잘 맞는 방식을 찾은 후 한눈팔지 말고 정착하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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