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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린 시아마가 들려주는 판타지 동화 <쁘띠 마망>

씨네아카이브 73.

by 마리

73번째 씨네아카이브는 지난호에 이은 12번째 감독 특집으로 그 주인공은 동시대 프랑스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자리매김한 셀린 시아마다. 셀린 시아마 감독은 선보이는 작품마다 섬세한 각본과 연출로 평단은 물론 여러 감독과 배우들로부터 찬사를 받아왔는데 2019년에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으로 칸영화제에서 <기생충>과 선의의 경쟁을 펼치며 국내에도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고, 이후 영화의 호평과 함께 역으로 이전 작품이 개봉되는 등 두터운 팬층을 보유하고 있는 감독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셀린 시아마 감독의 작품은 인물의 내면과 관계 변화의 미묘한 순간을 포착해서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서정적인 연출이 돋보이기 때문에 좋아한다. 데뷔작부터 꾸준히 이어져온 확고한 주제의식과 이를 섬세하게 표현해 내는 방식이야말로 프랑스 예술 영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것 같달까. 팬심으로는 필모그래피 전부를 추천하고 싶지만, 이번에는 국내 관객들에게 셀린 시아마라는 존재감을 확실하게 각인시킨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과 감독의 필모에서 가장 좋아하는 <쁘띠 마망>을 소개한다.


씨네아카이브 73. "셀린 시아마가 그린 사랑과 성장의 초상" 전문 읽기


<쁘띠 마망 (Petite Maman)>, 셀린 시아마 감독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쁘띠 마망 스틸컷)


<쁘띠 마망>은 ‘여성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다뤄온 셀린 시아마 감독의 이전 작품과는 조금 다른 결을 지닌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된 작품으로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엄마와 함께 시골집에 내려온 8살 소녀가 숲 속 오두막에서 엄마와 이름이 같은 동갑내기 친구 ‘마리옹’을 만난 우정을 쌓는 이야기를 그렸다. 영화는 ‘만약 어린 시절의 내가 같은 나이의 어린 시절 엄마를 만나면 어떨까’라는 감독의 상상력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여성들의 서사를 중점적으로 다뤄온 감독이 외연을 확장해 가족 간의 유대를 따듯한 시선으로 그려내며 호평받았다.


셀린 시아마 감독의 상상력에서 시작된 작품인 만큼 촬영 역시 감독의 고향에서 진행했고 세트도 할머니 집을 상상하며 만들었다고 한다. 여기에 지브리 애니메이션에서 영감을 받은 색감을 더해 세트와 소품, 의상을 완성했다. 극 중 넬리와 마리옹을 연기한 배우들은 어디서 데려왔을까 싶을 만큼 꼭 닮았는데 실제 일란성쌍둥이 자매로 감독은 모녀이자 동시에 친구 같은 관계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고민하다 같은 날 태어난 쌍둥이라면 모녀의 삶에서 정확히 같은 지점에 만나게 되는 수평적 관계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캐스팅하게 되었다고 한다. (간단히 줄거리만 읽고 영화를 감상했었는데 보는 내내 착시현상처럼 닮았다고 느끼는 걸까 의문이었지만 알고 보니 진짜 쌍둥이였다...)


<쁘띠 마망 (Petite Maman)> 줄거리

외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엄마 ‘마리옹’과 함께 시골집으로 내려온 8살 ‘넬리’는 어린 시절 엄마의 추억이 깃든 그곳에서 엄마와 이름이 같은 동갑내기 ‘마리옹’을 만나게 된다. 단숨에 서로에게 친밀함을 느낀 넬리와 마리옹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지만 넬리는 이 우연한 만남 속에 숨어있는 놀라운 비밀을 발견하게 하는데...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쁘띠 마망 스틸컷)

영화는 넬리의 시선을 따라가며 드라마틱한 사건이나 갈등 없이 전개되는데 타임슬립이라는 판타지적 요소를 다루고 있음에도 넬리와 마리옹 두 사람의 관계에만 집중해 할머니에서 딸, 딸에서 손녀로 이어지는 세대 간의 유대감을 보여준다.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좋은 영화는 갈등을 기반으로 한 대화가 아니라 자기 생각과 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을 믿고 툭 터놓는 대화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솔직해서 그렇게 하기가 쉽고, 그래서 어린이 영화와 아역배우를 좋아한다”라고 밝히기도 했는데 발행인이 <쁘띠 마망>을 셀린 시아마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꼽는 이유이기도 하다. 넬리와 마리옹을 보고 있으면 아이다운 솔직함과 순수함 때로는 놀랍도록 진중하고 어른스러우며 심지어 철학적인 면모도 발견하게 되거든. ('비밀은 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말할 곳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는 꼬맹이의 대사에 머리를 탁 쳤었다...)


넬리가 마리옹을 만나게 되는 과정 역시 담백한데 시간 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도 없고 마리옹에게 자신이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는지 비밀을 알려줌으로써 두 사람의 과거나 미래에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지도 않는다. 그저 숲에서 우연히 마주친 또래의 소녀들이 친구가 되어 함께 역할 놀이를 하거나 오두막을 완성하고 팬케이크를 만들어 먹으며 현재의 시간을 즐겁게 보낼 뿐이다. 시대와 인종을 막론하고 세상의 모든 딸들은 엄마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나눌 수 있는 사이이기에 나와 같은 시절의 엄마를 만나 친구가 되는 넬리와 마리옹의 만남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보다 엄마에게도 나와 같은 시절이 있었다는 유대감과 함께 위로를 얻게 된다.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인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영화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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