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호소다 마모루 감독 <시간을 달리는 소녀>

씨네아카이브 74

by 마리

씨네아카이브를 시작하고 10월마다 픽사 애니메이션을 소개해왔는데 이번에는 약간 변주를 줘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픽사 애니메이션도 소개할 예정이지만 그에 앞서 특정 장르는 마니아층만 즐길 수 있을 거라는 발행인의 편견을 깨부순 일본 애니메이션 특집을 준비했다. 현재 일본 애니메이션을 이끌어 가는 두 축이라고 할 수 있는 호소다 마모루 감독과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 중에서도 ‘타임슬립’이라는 판타지 소재를 각자의 개성으로 풀어낸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너의 이름은>을 소개한다.


씨네아카이브 74. "시간을 달려 너의 이름을 부르다" 전문 읽기



<시간을 달리는 소녀>, 호소다 마모루 감독, 2006년 개봉
(이미지 출처: 왓챠)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어느 날 갑자기 ‘타임리프’ 능력을 얻게 된 여고생 마코토가 과거를 오가며 사소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사랑과 우정을 깨닫게 되는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동명 소설과 이를 영화화한 작품을 본 감독이 뒷이야기를 만들어 완성한 작품이기도 하다. (원작 소설보다 20년 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고 한다.)


영화는 타임슬립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바탕으로 아름다운 작화, 군더더기 없는 이야기 전개와 여운이 남는 결말이 어우러져 개봉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히 회자되는 명작으로 꼽힌다. 어는 날 갑자기 전력질주하면 시간을 뛰어넘을 수 있는 소녀 마코토를 통해 찬란하게 빛나는 여름날의 풋풋한 청춘을 작품 곳곳에 녹여냈다. 무엇보다 잔잔한 일상의 풍경과 특정한 시절의 감성을 따뜻한 시선으로 섬세하게 그려내는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개성이 잘 드러나는 작품으로 영화를 보고 있으면 삶의 고단함을 알게 되는 나이가 되면 더욱 그리워지는, 오직 10대 때만 경험할 수 있는 정서를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어느 날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시간을 뛰어넘을 수 있는 ‘타임리프’ 능력을 얻게 된 마코토는 자신에게 선물처럼 주어진 능력 덕분에 시간을 되돌려 망친 시험을 잘 보거나 지각을 면하기도 하고, 먹고 싶은 음식을 몇 번이고 다시 먹는 등 일상의 소소한 기쁨을 마음껏 누리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영원히 즐거운 나날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던 마코토는 어느 날 갑자기 치아키에게 고백을 받게 되고, 친구로만 생각했던 치아키의 고백을 없었던 일로 만들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지만 어째서인지 일은 점점 꼬여이기만 한다. 그리고 과거를 오갈수록 자신의 뜻과 다른 일이 벌어지자 ‘타임리프’가 선물이 아니라 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타임리프 능력은 마코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어떻게 바꿔놓게 될까?


(이미지 출처: 구글)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주인공의 ‘성장’ 서사를 ‘타임리프라는 판타지적 요소와 신비한 사랑’이라는 테마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며 관객들로부터 깊은 여운을 남긴다. 특히 주인공이 타임리프를 사용하는 방식은 영화의 후반부 주인공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마코토는 타임리프 능력을 자각한 후 푸딩을 마음껏 먹거나, 노래방 시간을 무한대로 연장하고, 망쳤던 쪽지 시험을 만회하는 등 사소한 곳에 사용한다. 남들이 보기엔 사소한 것에 불과하지만, 돌이켜 보면 청소년기에는 사소한 것들이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다. 이는 감독이 판타지 소재를 활용하는 방식을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그때 그 시절의 정서와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극의 몰입도를 높이는 영리함이 돋보이는 부분처럼 느껴져서 좋았다. 무엇보다 사소한 곳에 사용했던 능력이 결정적인 순간에는 부재함으로써 주인공이 시행착오를 겪고 성장하게 되는 구조 역시 서사에 정당성을 부여하는데 결국 영화는 ‘타임리프’라는 소재를 통해 과거를 돌아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재와 미래라는 이야기를 전한다.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인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영화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영화 뉴스레터 ciné-archive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셀린 시아마가 들려주는 판타지 동화 <쁘띠 마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