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베카 Dec 02. 2019

어머니, 가방 놔두고 가셔. 식판 설거지는 내가 할게.

  

  나의 아들들. 일란성쌍둥이 - 로이와 폴리. EBS 만화 시리즈 ‘로보카폴리’에 홀딱 반한 이 어린이들은 스스로를 로이, 폴리와 동일시하며, 급기야 멀쩡한 이름을 버리고 서로가 서로를 ‘로이야, 폴리야’라는 애칭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두 명의 4세 어린이 - 로이, 폴리를 한 번에 같은 어린이집에 보내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보통 어린이들은 3세 때부터 어린이집을 다니곤 한다. 규모가 크지 않은 가정 어린이집의 경우, 3세 어린이들이 그대로 4세에 재원을 하게 되니, 4세부터 어린이집을 다니게 되는 아이들에게는 자리가 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우여곡절 끝에, 그나마 규모가 있는 아파트 관리동 어린이집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배정받은 담임선생님이 50대...? 원감선생님...? 엄마들 사이에서 ‘좋은 분’이라고 입소문이 난 분이라 하더라도, 나는 솔직히 선생님의 나이가 좀... 걱정스러웠다. 40대인 나도... 아들 둘 등쌀에 녹초가 되곤 하는데. 50대인 분이 4세 아이들 9명(2017년 당시 한시적으로 정원이 9명인 적이 있었다. 지금은 4세 7명)을 감당하실 수 있을는지.     





  3월 적응기간. 역시나 로이와 폴리는 사력을 다해서 울었다. 아침에 옷 갈아입을 때 울고, 현관문 나설 때 울고, 어린이집 정문에 매달려 들어가지 않겠다고 울었다. 로이가 들어가면, 폴리가 튀어나오고, 다시 폴리를 잡아다 놓으면, 또 로이가 뛰쳐나오고. 나는 녀석들을 어린이집에 등원시키면서, 온몸에 기운이 다 소진되곤 했다. 그렇게 3월 내도록, 기운 센 남자아이 두 녀석과 어린이집에 가니 안 가니 하는 실랑이가 지속되자, 나는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 빵구똥구들아, 다른 애들은 3세 때부터도 잘 다녔대잖아! 이제 들어가라고!” 


  나는 아이들을 달래기는커녕, 어린이집 앞에서 아이들을 완력으로 밀어냈다. 많은 날, 로이는 담임선생님이 들쳐 안고, 폴리는 원장선생님이 들쳐 안고 풀꽃반까지 들어가곤 했다. 그렇게 로이와 폴리는 어린이집 ‘집중관리대상’이 되었다. 다행인 것은, 둘 다 사력을 다해 울고 난 후여서인지 간식과 점심식사를 매우 잘 먹는다는 것. 선생님께서는 밥 잘 먹으면 적응하는 것이니, 걱정 말라하셨다.      


  선생님은 정말 꼼꼼한 분이셨다. 일반적인 4세 아이들의 상태에 비해서 로이와 폴리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이 못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계셨다. 엄마인 내가 어떤 부분을 좀 더 신경을 써 주면 좋을지를 이야기해 주셨다. 아이들 낮잠시간에 오늘 아이들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어린이집 수첩에 매일매일 꼼꼼하게 적어주셨다.      

   “로이가 교실에서 많이 뛰는 모습인데 점심때 자동차를 가지고 뛰다가 넘어지면서 자동차에 부딪혀 상처가 났습니다. 약을 발라주는데 아프다고 울면서 ‘엄마는 어디 있지?’라고 말해서 한참을 웃었네요. 윗옷은 양치질하다가 젖어 여벌옷으로 갈아 입혔습니다.”     


   전화도 자주 주셨다. 

   “로이가 폴리에 비해서 마음이 좀 약한 거 같아요. 로이가 항상 폴리를 챙기는데, 혹시 집에서 형 노릇을 시키시는지요, 아직 둘 다 아기인데 그렇게 행동하는 로이를 보니 마음이 좀 짠하더라고요”

  “정말요? 아... 저희는 전혀 호형호제하지 않습니다...”


   로이가... 폴리를 챙긴다고...? 로이는 태어날 때부터 폴리보다 몸무게가 많이 나갔다. 먼저 기고, 먼저 걷고, 먼저 말문이 트였다. 폴리는 그에 비해서 항상 느렸고, 밥도 느리게 먹고 잘 먹지도 않았다. 폴리는 여전히 로이에 비해 얼굴도 키도 작고, 몸도 가느다랗다. 늘 로이의 기선에 눌려서 폴리는 로이에게 어물어물 양보하거나, 한 대씩 얻어 맡기도 했다. 그런데, 밖에서 로이가 폴리를 챙긴다니. 나로선, 놀라운 일이었다. 아이들이 집에서와는 다르게 행동한다더니. 이 녀석들의 사생활이 이렇게 다를 줄이야.     






  아이들 4세 시절은 내 독박 육아에의 고단함이 절정에 달해 있던 시기였다. 당시의 나를 기억하는 아줌마 친구 션은 “그 땐, 이렇게 웃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심각하고, 어둡고, 그랬었었죠. ㅎㅎ”라고 회자했다. 그랬다. 나는 누군가 내게 ‘힘내라’라고 위로해주면, ‘말로만, 흥. 와서 애들이나 한 번 안아주라고’ 생각했고. 회식하고 오는 남편을 ‘고기 먹고 오면 좋아? 나는 물에 밥 말아서 서서 먹는다고’라고 몰아붙였다. 먼저 인사를 했는데 나를 못 보고 스쳐 지나간 동네 사람을 보면 ‘저 인간마저 나를 무시하나?’라고 생각했었던 시절이다. 체력 바닥, 자존감 바닥, 엄마 능력치 부족으로 인한 무력감, 나를 도와주지 않는 친정 가족에 대한 섭섭함이 한 데 섞여서 나는 거의 매일을 울거나, 분노하거나, 혹은 지쳐서 누워있었다.     


   어느 날,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이야기 도중에 나는 훅-하고 울었고. 그런 나에게 선생님은 말했다.


  “어머니, 내가 느끼기에 어머니도 뭐랄까... 소신이랄까... 그런 게 좀 있는 사람 같은데. 절대로 다른 사람 말 믿지 말아요. 지금 내가 하는 말도 믿지 말구. 나도 어머니보다 아이를 잘 파악하지 못해요. 그냥, 어머니 자기 자신 한 명 믿고 지내요. 엄마가 별거 없어요. 그냥 내가 제일 잘 한다. 그렇게 믿고 애들 돌보는 거예요.

    그리고 어머니, 애네 둘 쌍둥이로 태어난 거. 엄마 사랑 나눠서 받는 거. 그거 애들한테 미안해하지 마요. 그냥 ‘운명’이라고 생각해야지. 애들도 다 받아들일 겁니다. 내가 보니, 지금 둘이서 의지하고 장난치고 하는 거,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을 채워주고 있는 거 같아요. 나도 10년 넘게 보육교사 하고 있지만, 쌍둥이는 처음 맡아봐요. 처음이라서 나도 잘 모르지만, 애들 보면 참 재밌어요. 애네들 어머니 생각하는 거만큼, 그렇게 부족하고 불안해 보이지 않아요. 애들한테도 운명이라고 받아들이라고 이야기해 줘요. 그럼 알아들을 거예요

     엄마가 자꾸 애들한테 미안해하고 그러지 마요. 애들도 다 느껴요. 그러니 탁- 받아들이고 가볍게 육아하세요. ”     




   전화를 끊었다. 다른 사람 말 믿지 말고... 운명이다... 가볍게... 그렇게 나는 한참을 울었다. 나를 지켜봐 주는 사람. 괜찮다고 해 주는 사람. 내 아이의 상태에 대해서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구나...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 선생님의 따뜻한 조언은 나를 일으켰다. 나는 이런 조언을 내게 해 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 선생님의 존재 자체에 더 감사했다.       




   

   선생님은 그 후에도, 아이들 등원 하원 시에 자주 나의 안부를 물어보셨다.

   “어머니, 어깨 좀 피고 다니셔. 왜 그래, 마음 아프게”

   “네에-”

   돌아서서, 나는 그 따뜻한 말 한마디를 품에 안고 집으로 오곤 했다.     


   그 해 겨울, 나는 독감에 걸렸었다. 아이들을 겨우겨우 어린이집에 보내고 하원 시간이 되어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 아이들이 나왔다. 선생님이 나의 상태를 보시더니 아이들 어깨에 멘 가방을 다시 풀어내신다.

  “선생님, 가방은 왜요...?”

  “어머니, 가방 놔두고 가셔. 식판 설거지는 내가 할게.”

  “예...? 아니에요. 그 정도는 제가 해도 되구요. 남편이 해도 돼요”

  “아이고, 그냥 가셔...”

  그렇게 선생님은 내 독감이 나아지는 며칠 동안 아이들 식판과 간식통 설거지를 해 주셨다.  

    

  흔히, ‘아이들은 사랑을 먹고 큰다.’고 한다. 나는 이 말의 뜻을 선생님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나도 아이들도 선생님의 사랑을 먹고, 그 고단했던 한 해를 따뜻하게 잘 보냈다.      




  선생님께서 우리에게만 특별히 따뜻하셨던 것은 아니다. 선생님과 인연이 닿은 여러 가정에 정을 나누어주셨다. 같은 반 아이 중에 민아가 있었다. 민아 엄마는 친정엄마가 안 계신다. 민아 엄마가 둘째를 임신하고 입덧이 심해지자, 2주 넘게 선생님께서 식판 설거지를 해 주셨단다. 현이 엄마는 맞벌이 중인데, 그 집에 일이 생기자, 선생님께서 현이와 한 달 동안 함께 등원을 하셨다고도 들었다.      


  사랑을 먹으면 따뜻하게 채워진다. 오늘도 하원한 아이들과, 퇴근한 남편과 따뜻하게 포옹하고 다독이며... 잘 지내야지... 암암... 나는 잘 지낼 수 있다... 있다...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명문대 나온 전업맘님들, 후회하시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