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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베카 Jan 21. 2020

돈벌이가 지겨운 나의 아저씨. 나의 남편.

 

  “어떻게 하면 월 500, 600을 벌어도 저렇게 지겨워 보일 수가 있을까?”

  - 드라마 나의 아저씨 중.     


  저렇게 지겨워 보이는 표정의 아저씨. 나와 같이 산다. 나의 남편. 어디 우리 남편만 그런가. 내가 사는 아파트 우리 동에만 해도, 이런 표정의 아저씨가 족히 50명은 넘을 것이다. 자주 마주했던 우리 동네 소아과 하마방 의사 아저씨, 약 지어주던 약국 아저씨. 택배 아저씨. 모두 다 약속이나 한 듯 무표정이다. 지겨워서 지쳐 보이기보다, 어딘지 모르게 ‘나 건드리지 마. 나 화났어’이런 느낌의 아저씨들. 퉁퉁 대는 얼굴로 퉁퉁 대며 산다. 우리네 아저씨.     


  나의 남편, 나의 아저씨. 그의 하루 일과는 이렇다.      


  오전 5시 30분. 눈이 자동으로 떠진다. 알람을 하지 않아도. 그렇게 한 30여분을 핸드폰을 보며 이불속에서 존재한다. 

  오전 6시. 샤워를 하고 옷을 입고 물 한잔 마시고 집을 나선다. 

  오전 6시 30분. 출근한다. 회사에 걸어간다. 도어 투 도어. 집에서 사무실까지 걸어서 대략 30~40분 소요. 회사 식당에 들러서, 샌드위치나 주먹밥을 타고 사무실에 들어간다. 사무실에서 간단하게 먹는다.

  오전 7시 30분. 이메일을 확인한다. 

  오전 8시.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한다. 

  정오 12시. 점심식사를 한다.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또 일을 한다. 

  오후 5시 30분. 동료들이 하나 둘 퇴근하기 시작한다. 퇴근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냥 회사에서 식사를 한다. 집에 가 봐야, 애들에게 시달릴 테고. 마누라가 저녁 식사를 차려줄지도 의문이다. 회사 식당에서 혼자 조용히 정식을 먹거나, 김밥과 샐러드를 가져와서 사무실에서 먹는다. 그렇게 남아서 조금 더 잔업을 한다. 

 오후 7시. 퇴근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인터넷 기사를 좀 보기도 한다. 

 오후 7시 30분. 컴퓨터를 끈다. 퇴근이다. 

 오후 8시. 아빠랑 놀기를 기다렸던 7살 아들 녀석 두 명이 매달린다. 

  - 아빠, 로보트 그려주세요

  - 아빠, 레고 조립 같이 하자.

  - 아빠, 우리 같이 색칠공부하자.

  그러면 20분 정도, 놀아준다. 그리곤 아이들 양치질을 도와준다. 그리고 나면, 마누라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준다. 그때부터 휴식시간이다. 침대에 가서 눕는다. 

오후 9시.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어간다. 10시까지 한 시간 동안 인터넷 게임을 한다. 아이들이 자면, 부인이 잠시 안방에 들른다. 오락을 계속하면서, 마누라의 이야기를 듣는다. 별 일 없는 하루다. 잠이 오기 시작한다. 

오후 10시 30분. 불을 끄고 침대에 눕는다.      


   이것이 나의 남편의 하루 일과다. 언젠가 연예인 한고은이 직장인 남편인 김영수의 삶을 보고 “직장인이 이렇게 자유시간이 없는 삶인지 몰랐어요”라고 하는 말을 하는 것을 티브이로 본 적이 있다. 나의 아저씨, 나의 남편,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아저씨들. 그들은 뭘 그렇게도 잘못했길래, 이렇게 자유시간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하나.   

 


   주 60~70시간 이상 일하고 몇 년이 지나면 태심한 골병으로 고생하는 노동자는 여전히 많다. 재벌 기업은 노동자에게 가하는 엄청난 신체적 폭력의 대가로 몸집을 키워간다. 여기에서 파생되는 일상의 온갖 부수적인 폭력을 생각하면 더욱 착잡하다. 기업의 이윤 극대화를 위해 바치는 인생의 무의미함과 서러움을 잊기 위해서 마시는 술이 내 몸에 가하는 폭력, 술기운에 가족과 주변 사람에게 저지르는 폭력, 세계 최장 시간 노동으로 인해 아이들에게 충분한 애정을 주지 못한 데서 비롯되는 학교 폭력 등. 

 - 박노자. 비굴의 시대. p.127



   우리 동네에는 같은 회사를 다니는 사람이 꽤나 많다.  남편 책상 바로 옆자리 동료이자,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아저씨가 있다. 우리는 그 아저씨는 편의상 ‘옆집아저씨’라고 부른다. 

  - 옆집아저씨, 회사 몇 개월간 쉰대

  - 여얼? 육아 휴직 낸 거야? 워~메~ 용감도 하시네

  - 아니, 건강검진에서 정신적 스트레스 상태가 너무 심각해서 정밀검사 진단받았어. 상담받고 쉬기로 했어

  - 아, 진짜...? 얼마나... 심각하신데?

  - 몰라, 근데 그렇게 쉬고 나면... 뭐, 여튼 다음 달부터 몇 달간 쉰데. 아.... 나도 쉬고 싶다.

  그렇게 옆집아저씨는 6개월간 쉬었다. 그리고 복직을 했다. 그 과정이 녹록지 않았던 듯하다. 나는 가끔씩 옆집아저씨를 아파트 장터나 놀이터에서 마주치곤 했다. 서로 간에 머쓱하게 인사를 하곤 했었는데. 사람 좋게 잘 웃으시더니만. 그 아저씨의 마음속에는 어떤 병이 지나갔던 걸까.     



   주 52시간 노동에서 배제되는 특수사업장으로 분류된 회사에 다니는 나의 남편은 주말을 오롯이 쉬지 못한다. 토요일 혹은 일요일 중 하루는 출근을 한다. 위로라면 위로랄까. 우리 동네에는 같은 회사를 다니는 남편을 둔 아줌마들이 많은 관계로, 서로가 서로를 ‘너도 과부 아닌 과부냐?’라며 위로해준다. 토요일이나 일요일 마트나 키즈 카페에 가 보면, 아줌마 혼자 아이 둘 혹은 셋을 케어하며 아이들에게 짜증 섞인 버럭을 내뿜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중에 나도 있다. 우리는 서로를 알아본다. ‘님도, 과부시군요. 파이팅하소. 마.’     



  ‘쉬는 날. 단, 3-4시간만이라도 혼자이고 싶다.’     

  나의 남편은 성격이 매우 보들보들한 사람이다. 오죽하면, 재래시장 핫도그 아줌마가 두어 번 만난 남편의 얼굴을 기억하며 ‘천상 화라고는 안 낼 얼굴이네요’라고 하셨을까. 그러면서 내 얼굴을 한 번 보시며, ‘여자가... 결혼 잘한 게, 더 잘 산데요.’라는데... 이게 칭찬인가 욕인가. 그런 사람이 어느 날 나에게 단호하게 저렇게 말했다. 나의 아저씨 일상의 마지막 숨 쉴 구멍. 혼자 있는 시간. 일주일에 단 3-4시간.        





       

  “그래, 어떤 사람이야?”

  “맑아요, 표정이. 피부도 나보다 좋구요.”     


  나는 신혼초에 남편을 ‘방실방실이’라고 불렀었다. 가끔 신혼초 사진을 보며 ‘방실방실이 어디 갔냐?’고 물어보면 남편은 ‘이제 그 방실방실이는 지구 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게. 이제, 그는 잘 웃지 않는다. 웃어도 어딘가 텅 빈 것 같다. 피부도 푸석하다. 화를 낼 줄 모르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자아냈던 평정한 마음의 소유자였던 그는, 이제 가끔씩 ‘버럭’도 한다. 가끔은 세상 모두에게 화가 나기도 한다고 한다. 나의 아저씨는, 그렇다고 한다.     


  - 여보, 요즘에도... 아침에 눈 뜨면.. 막 가슴이 갑갑하고... 막... 괴롭고... 그래?

  - 응, 그 기분은 몇 년 됐어. 그냥 그러려니 해. 로또만이 살 길이야.

  - 그렇구나... 삼겹살 드셔

  - 너도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길래. 삶이 이다지도 고단한 건지. 나는 잘 모르겠다. 돈을 좇아서 너무 아등바등하지도 않는데. 왜 이럴까. 가끔은 억울하다. 잘하는 게 무엇인지, 내 꿈이 무엇인지 어린 시절 적성을 못 찾은 탓일까. 회사원이 되는 것 말고는 다른 삶의 길을 찾지 못한 것이, 내가 그리고 나의 남편이 이렇게 살아야 하는 원죄인가.


  모든 시대를 통틀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밥벌이의 엄중한 무게를 견디며 사는 것이 삶이라고... 그래 그렇다고 치자. 그러면, 그 안에서 행복은 어떻게 찾아야 하는 것인지. 누가 나에게 복잡하게 설명하지 말고, 아주 간단하고 명료하게 알려주면 좋겠다.     






  "억지로 산다. 날아가는 마음을 억지로 당겨와 억지로 산다."

  산사의 겸덕에게 넋두리를 합니다.     


  "불쌍하다, 니 마음. 나 같으면 한 번은 날려주겠네."

  - 드라마 나의 아저씨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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