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이 되신 선생님의 분향소 앞에서
2025년 5월 22일. 또 한 명의 교사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교육의 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숨 쉬며 교사로서 최선을 다하던 그는 왜 이토록 고통스러운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이는 개인의 비극이자 우리 교육의 구조적 문제를 정면으로 드러내는 사건입니다.
서이초 교사 사건 이후, 교권 보호 4 법이 개정되고 교사를 위한 다양한 제도적 장치들이 도입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제도들이 현장 교사들에게 실질적인 보호로 체감되기에는 여전히 거리가 멀기만 합니다. 교사들은 악성 민원에 시달리고, 교육적 판단이 아동학대로 곡해되는 두려움 속에서 수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교사들이 안심하고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환경은 아직도 요원한 현실입니다.
제주도 교육청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는 고인의 동료 교사들뿐만 아니라, 제주 전역과 전국에서 찾아온 교사들, 그리고 일부 학부모들도 함께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헌화를 하는 학부모들의 모습은 깊은 슬픔 속에서도 작지만 의미 있는 희망으로 다가왔습니다. 교사를 공감하고 추모하는 그들의 마음은, 교사와 학부모가 대립하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교육을 이루어가는 공동체라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교사(敎師)’라는 말은 가르칠 ‘교’ 자와 스승 ‘사’ 자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단순히 학생 앞에 서는 직업인이 아니라, 아이들의 성장을 돕고 이끌어가는 책임과 사명을 가진 존재이지요. 국회의원이 개별 헌법기관으로서 입법권을 행사하고, 개개의 검사가 검사권을 행사하듯이, 교사 역시 교육과정을 독립적으로 운영하며 교육적 전문성과 판단을 바탕으로 교육활동을 수행하는 ‘교육기관’ 그 자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의 방향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교육은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기능을 넘어서야 하며, 아이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기술을 익히고, 건강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교육은 성적 중심, 결과 중심, 민원 대응 중심의 체제에 갇혀 있습니다. 교사는 교실 안에서 교육에 집중하기보다는 행정 업무와 각종 민원 대응에 시달리고, 학생과의 관계를 쌓기보다 실수를 두려워하며 거리 두기를 택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교육은 점점 본질에서 멀어지고, 교사와 학생 사이의 신뢰는 더 얇아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교육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진정한 교육은 교사, 학부모, 학생이 서로를 신뢰하며 협력할 때 가능합니다. 교사는 전문성을 바탕으로 아이들을 이끄는 주체로서 존중받아야 하고, 학부모는 교육 과정에 협력하며 자녀의 성장을 함께 만들어가는 존재로 인식되어야 합니다. 단지 ‘학교에 맡긴다’ 거나 ‘교사를 감시한다’는 관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는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필수 조건이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 사회는 교육의 가치를 ‘투자’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교사가 온전히 아이들과 호흡하며 수업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교사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구조적 병폐들을 제도적으로 제거하고, 교육공동체 안에서의 상호 존중 문화를 강화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슬픔을 단지 감정으로 소비하지 않아야 합니다. 고인의 죽음은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되는, 무겁고 아픈 경고입니다. 동시에 그것은 우리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교사의 자리를 어디에 둘 것인가. 교육을 누구의 몫으로 볼 것인가.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바꾸어야 할 것인가.
진정한 교육의 회복은 교사와 학부모가 서로를 교육의 동반자로 인정하고, 신뢰와 존중 속에서 아이를 함께 키워갈 때 가능합니다. 그 여정은 쉽지 않겠지만, 오늘의 죽음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일 때, 거기서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 출발선에 서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