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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도 미술관

세계 3대 미술관이라 불리는 이유

by 황현철

프라도 미술관에 왔다. 애당초 마드리드를 경유하는 것은 오로지 프라도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대단히 미술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프라도 미술관은 그런 곳이다. 숙소를 프라도 미술관이 마주 보이는 건너편에 잡은 것도 같은 이유다. 프라도 미술관은 매일 저녁 6;30분부터 폐장하기 전까지 미술관을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그래서 숙소를 프라도 미술관 앞으로 잡으면 이곳, 마드리드에서 머무르는 3일 동안 매일 프라도에 올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물론 매일 저녁에 프라도를 가겠지만 둘째 날은 종일권을 끊어 놓기도 했다. 런던의 대영박물관도 파리의 루브르도 하루 이상 할애한 적 없는 나지만 이상하게 프라도에는 이렇게 진심이 되고 있었다.


마드리드에 도착하고선 에어비앤비 호스트로부터 받은 문 열고 들어가는 방법을 수행하느라 진땀을 빼고선 시간에 늦을까 부랴 길을 건더 프라도에 왔다. 역시나 저녁 무료개방을 위한 줄이 어마하게 서 있었다. 그렇지만 이 정도 줄이야 프라도 미술관을 들어가는데 하나도 거침이 되지 않았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중심, 부엔 레티로 공원과 인접한 곳에 우뚝 서 있는 프라도 미술관은 겉모습부터 남다른 위엄을 품고 있었다. 프라도 미술관은 루브르 박물관, 에르마타주 미술관과 함께 세계 3대 미술관으로 손꼽힌다. 물론 더 멋지고 개성 있는 미술관도 충분히 많다. 하지만 프라도를 향한 이러한 내 마음 또한 충분히 개인적인 것이리라.


바르셀로나에서의 키워드가 '가우디'였다면, 마드리드에서는 '프라도'다.

입구를 지나쳐 처음 마주한 것은 프란시스코 고야의 동상이었다. 그는 단순한 화가가 아니라, 스페인의 격동기를 붓으로 기록한 역사화가이며, 인간 내면의 고통과 진실을 마주한 철학자 같았다. 그의 동상을 마주하니, 마치 작품의 숨결이 프라도 전체를 감싸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고야는 스페인 왕실을 대표하는 화가가 될 만큼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화려한 명성을 뒤로하고 청각을 잃은 후는 급격히 어두운 작품 세계를 나타내며 인간의 광기, 부조리 등을 강렬하고 주관적으로 표현해서 현대미술의 선구자로 불리기도 한다.

프로다 미술관 옆으로 이어지는 레티로 공원에는 다양한 스페인 사람들의 일상이 그대로 펼쳐진다. 화려하면서도 수수한 스페인 사람들이 참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줄을 끝에 나는 프라도 미술관 무료 입장권을 얻었다. 오늘은 내일 종일 탐방을 위한 사전 조사 정도로 해두자.

프라도 미술관의 입구와 간판, 초록빛에 붉은 간판이 강렬하다.

드디어 프라도의 내부에 들어간다. 작품에 대한 소개는 따로 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미술가도 아닐뿐더러 예술은 보는 그 사람의 마음에서 만들어지고 재해석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수많은 작품 중에서 일부 작품을 그대로 전하는 것으로 대신하려고 한다.


프라도 미술관이 세계 3대 미술관으로 손꼽히는 이유는 단지 작품의 수나 역사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이곳이 ‘예술이 인간을 어떻게 위로하고 일깨우며, 기억하게 하는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감정으로 느끼며, 예술과 내가 서로를 비추는 이 경험은 단순한 감상이 아닌, 내면의 성찰로 이어졌다.


프라도 미술관을 나서는 길, 나는 다시 고야의 동상 앞에서 한동안 머물렀다. 그리고 생각했다. 고야와 벨라스케스, 엘 그레코와 루벤스가 그려낸 시대는 과거에 머물지 않고 오늘의 나에게 말을 걸고 있다고. 그것이 바로 프라도의 힘이며, 예술의 지속성이다.


예술은 시간을 넘고, 시대를 뛰어넘는다. 프라도 미술관은 그 증거였다. 언젠가 다시 이곳을 찾게 된다면, 나는 또 다른 눈으로, 또 다른 질문으로 이 거대한 예술의 전당을 마주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감탄할 것이다. 그 위대함에, 그 깊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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