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 벨렝지구에서 만난 시간 여행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 그중에서도 바다와 역사가 만나는 벨렝(Belém) 지구를 찾은 날은 유난히 하늘이 맑고 테주 강을 따라 부는 바람이 깊은 감정을 일깨우는 듯했다. 엄청난 무더위로 고생을 했지만 결코 헛된 걸음은 아니다.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인간의 도전 정신과 믿음이 깃든 장소이기 때문, 그 시작은 벨렝탑(Torre de Belém)부터다.
마치 강 위에 떠 있는 듯한 벨렝탑은 16세기 초, 테주 강을 따라 침입해 오는 적을 감시하고 막기 위한 요새이자, 리스본 항을 지키는 출입문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탑은 상징이 되었다. 바로 ‘출항’과 ‘귀환’을 모두 품은 장소, 수많은 선박이 세계를 향해 나아가던 출발점이었다. 흰 석재로 지어진 이 고딕 양식의 탑 앞에 서 있자니, 고요한 물결 위에 포르투갈의 영광과 두려움, 희망과 고독이 함께 출렁이는 듯했다.
바스쿠 다 가마 기념탑(Padrão dos Descobrimentos)에서는 감정이 한층 더 깊어진다. 기념탑 정면에는 바스쿠 다 가마가 항해 지도와 함께 선두에 서 있고, 그 뒤로 선교사, 천문학자, 왕자, 군인 등 그 시대를 함께 연 인물들이 줄지어 있다. 조각상 하나하나의 표정과 자세가 모두 다르고, 각자의 역할을 조용히 이야기해 주는 듯했다.
바스쿠 다 가마는 1497년, 포르투갈 왕 마누엘 1세의 명을 받아 인도 항로 개척을 위해 떠난 항해자였다. 그가 케이프타운을 돌아 아프리카 남단을 통과한 뒤 인도 캘리컷(오늘날의 코지코드)에 도착함으로써,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새로운 해상 무역로가 개척되었다. 이 항로는 포르투갈을 세계 무역의 중심지로 부상시켰고, 스페인과 함께 대항해시대의 쌍두마차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 여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낯선 땅에서의 병과 식량 부족, 불안정한 무역 협상, 무력 충돌까지 – 그는 단지 항해자가 아니라, 외교가이자 지도자였다.
바닥에 그려진 지도에는 대항해시대에 발자취로 대륙별로 발견된 시기가 새겨져 있다. 1541년에 일본이 발견되었다고 하니, 우리나라도 아마 비슷한 시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위대한 여정을 가능하게 했던 바스쿠 다 가마의 출발점과 마지막 안식처는 바로 제로니무스 수도원(Mosteiro dos Jerónimos)이다. 고딕과 르네상스 양식이 어우러진 이 수도원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작품이었다. 화려하지만 경건한 회랑과 수도자의 기도처, 그리고 햇살이 스며드는 스테인드글라스 아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숨을 죽였다. 이곳은 단지 신을 향한 기도소가 아니라, 인류의 의지와 신념이 축적된 장소였다.
수도원 내부 깊숙이에는 바스쿠 다 가마의 무덤이 있다. 조용히 그의 이름이 새겨진 석관 앞에 서니, 그는 이제 더 이상 전설 속 인물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미지의 세계에 닿으려 했던 한 인간으로 다가왔다. 출항 전 이곳에서 그는 무엇을 기도했을까. 생존을 위한 간절함이었을까, 조국의 영광을 위한 다짐이었을까. 그 모든 생각이 얽히며 가슴 깊은 곳에서 벅참이 올라왔다.
벨렝탑에서 시작해 바스쿠 다 가마 기념탑을 지나, 그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제로니무스 수도원까지 이어진 하루의 여정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었다. 그것은 ‘탐험’이라는 단어 속에 담긴 인간의 본성과 마주한 시간이었다. 알지 못하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용기, 그리고 그 여정에 기꺼이 인생을 던졌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지금도 이곳의 바람과 돌벽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바람을 따라, 오늘도 또 다른 의미의 ‘항해’를 시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