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계단과 단테
사실 이 모든 여행은 유라시아 대륙의 끝, 호카곶에 가보자는 말로 시작되었다. 지극히 사적이고 일반인의 시각으로 그려보고자 했던 이 여행을 기록해 보자는 것이 이 여행기를 적어가는 유일한 이유이다.
호카곶을 가기 위해서 꼭 들러야 하는 포르투갈의 신트라, 자연스럽게 걸음은 신트라로 이어진다. 중간 여정이라 일정에 포함된 헤길레이아 별장(Quinta da Regaleira). 처음 그 이름을 들었을 때는 단지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궁전이라 여기고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그 땅을 밟고 그 돌길을 따라 걸으며 마주한 것은, 장엄한 건축물과 정원을 넘어선 하나의 철학적 세계였다.
헤겔레이라 별장은 20세기 초 포르투갈의 부유한 프리메이슨 신자이자 자산가였던 안토니우 카르발류 몬테이루(António Augusto Carvalho Monteiro)의 의뢰로 지어진 독특한 건축물이다. 이 별장은 고딕, 르네상스, 마누엘 양식이 혼합된 신비롭고 상징적인 건축미로 유명하며, 곳곳에 비밀 통로, 지하 갤러리, 나선형 우물, 조각상과 신화적 상징들이 배치되어 있어 하나의 거대한 상징체계로 구성되어 있다.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 별장은 단순한 궁전이 아닌, 철학과 신비주의, 건축미가 융합된 하나의 우주라 할 수 있다.
안내서와 구글링으로 관련된 정보를 찾아가며 탐방하던 중 ‘그런데 왜 이름은 헤겔레이라 별장이지?’하는 의문이 들었다. 주인의 이름은 안토니오 카르발류 몬테이루인데 말이다. (혹시 질문이 너무 유치했다면 이해하시라, 이 여행기는 지극히 일반인의 관점이라는 것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
이름은 건축주가 토지를 구입할 당시 이미 있었던 이름이라고 한다. 이 부지는 19세기말까지 ‘Regaleira 가문’의 소유였고, 그들이 이 지역을 ‘Quinta da Regaleira’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카르발류 몬테이루가 이 토지를 사들여 현재의 별장을 건축했을 때도, 원래의 이름을 유지하여 역사성과 상징성을 이어가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별장의 입구에서 가장 먼저 나를 사로잡은 것은 섬세한 조각으로 장식된 고딕 양식의 예배당이었다. 첨탑은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었고, 벽면에는 성인을 묘사한 조각상이 질서 정연하게 서 있었다. 정적 속에 깃든 신비로움이 공간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정원 곳곳을 거닐다가 도달한 곳은 바로 ‘이니시에이션 웰(Initiation Well)’, 흔히 지옥의 계단이라고도 불리는 장소였다. 이 웅장한 나선형 구조물은,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한없이 깊은 무언가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나는 그 계단에 발을 디딘 순간,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상징의 여정을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돌계단을 따라 한 걸음씩 아래로 내려갈 때마다 주변의 빛은 점점 사라졌고, 공기는 서늘해졌다. 그 계단은 단지 물리적인 깊이가 아닌, 자신의 내면으로 깊이 침잠해 가는 통로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순간, 단테의 『신곡』 속 장면이 떠올랐다.
“나는 삶의 한복판에서 어두운 숲에 들어서 있었고, 그 길은 곧바로 이어지지 않았다.”
단테 『신곡』 제1곡 중
단테가 지옥의 9층을 통과하며 인간의 죄와 고통을 직면했듯, 나 또한 이 나선형 계단을 걸으며 내 안의 두려움, 무지, 그리고 외면했던 감정을 조용히 마주하고 있었다. 계단을 다 내려갔을 때는 마치 죽음의 문턱에 도달한 듯한 고요함과 정적이 나를 감쌌다. 그러나 그곳에서 다시 위를 올려다보니, 원형의 빛줄기가 정중앙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햇빛이 아니었다. 상징적인 희망, 구원의 시작, 다시 올라가야 할 이유를 말하는 듯했다.
그 순간, 단테가 지옥을 통과하고 연옥과 천국으로 향한 여정이 곧 자기 인식과 정화의 여정이었다는 사실이 명확히 다가왔다. 헤길레이아 별장의 나선형 계단은 단테의 『지옥편』과 완벽히 평행을 이루고 있었다. 단테가 자신의 죄와 인간 본성을 마주하며 다시 신성에 도달했듯, 나 또한 그 깊이를 지나 다시 세상 위로 올라오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여행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었다. 고딕 건축의 아름다움과 숨겨진 통로의 신비로움도 있었지만, 진정으로 마음에 남은 것은 그 나선형 계단을 걸으며 마주한 내 안의 그림자였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며 때로 외면하는 진실, 피하고 싶은 감정, 그리고 직면하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는 성장의 가능성이었다.
내려간다는 것은 끝이 아니다. 오히려 다시 올라오기 위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