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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경 Oct 07. 2024

쫄지 말고

러브 다이브 chapter4

  이틀 만에 두 개의 나라를 건너뛰었더니 시차가 엉망이 되었다. 이집트 시각으로 잠에 들기에는 너무 일렀지만 당장이라도 잠에 빠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암막 기능이 제대로 되지 않는 커튼을 뚫고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지만 오히려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당장의 고단함이 하루빨리 시차적응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이겼다. 잠깐만 누워볼까. 맛만 보는 거야. 

 안개가 낀 듯한 머릿속으로 잡생각이 둥둥 떠 다녔다. 한국인 직원이 있는 스쿠버 다이빙 샵은 내가 알기로 라이트하우스에 두 곳뿐이었다. 일부러 현지 샵으로 갔는데, 아까 그 남자는 누구였을까. 나이가 많아 보이지 않았다. 한국인 남자에 대한 생각은 자연스레 재현과의 추억으로 이어졌다. 재현과 처음 만날 때 재현의 나이도 그 즈음이었던 것 같았다. 서로를 알아주는 건 둘 뿐이라고 생각하던 때에서 남이 되기까지의 기간은 얼마나 덧없이 흘러갔던가. 지금 이 곳은 한국의 자취방에서 체감상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이건만, 재현을 생각하니 금세 서울에서 느끼던 감정의 늪으로 다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무리하게 긴 휴가를 내고 이집트까지 간다는 말을 듣는다면 재현은 어떤 반응일지 예상이 가지 않았다. 처음에는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다가 이내 지지해 주었을 것 같기도, 끝까지 무리라며 반대했을 것 같기도 했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인스타그램 어플을 켜 주변 지인이 아무도 모르는 유령 계정으로 로그인했다. 손가락이 외우고 있는 재현의 계정을 검색하자 24시간동안 볼 수 있는 스토리의 원이 업로드를 알리는 뜻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누를까, 말까. 큰 맘 먹고 누른 스토리는 시시하게도 고작 아무것도 없는 하늘 사진이었다. 에이, 시시해. 하지만 시시한 게 좋은 거였다. 여자랑 손이라도 잡고 있는 사진을 올렸다간 당장에 통곡 파티가 시작될 수도 있었다. 다시 만나고 싶은 건 아니지만, 아직 다른 여자와 만나는 건 싫어. 


 저녁을 건너뛰고 잠든 탓에 배가 고팠지만 스쿠버 강습 시각을 맞추기 위해 길을 나섰다. 아침인데도 따사로운 햇살이 발뒤꿈치를 쫓아오는 것 같았다. 이른 아침인만큼 스쿠버 다이빙 샵은 한산했다. 어제 카운터에 있던 이집트인 아저씨, 자파리는 보이지 않았다.

 “이 쪽으로 오시면 돼요.”

 웃통을 벗고 있던 어제와 달리 흰 색 반팔을 입은 한국인 남자가 나를 알은체 했다. 

 “자파리랑 사람들은 벌써 다 바다 갔어요.”

 남자는 낡은 소파를 지나쳐 나를 벽면 외부로 이끌었다. 작은 수도와 간이 샤워실, 그 옆에는 작은 방이 딸려 있었다. 방으로 나를 안내하고 텔레비전 선을 연결하는 남자의 행동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오늘은 이론 교육이라서 영상을 시청하고 공부를 해야 한다던 남자가 아 맞다, 하며 주머니에서 어제의 잔돈 달러를 내밀었다. 

 “여기 한국인 강사님 없다고 들었는데, 직원이신 거예요?”

 “정식 직원은 아니고요. 장기 여행하다가 다합에 잠깐 눌러 붙어 살게 되어서, 여기 일 도와주면서 펀 다이빙 공짜로 하고 있어요. 있게 된 지 몇 달 안 됐어요.”

 일부러 한국인 강사를 피해서 왔더니만. 그렇지만 웃을 때 눈꼬리가 휘어지는 남자의 인상이 나쁘지 않았다. 서글서글하게 말을 붙이는 솜씨를 보아하니 잘만 한다면 한국인 관광객에게 입소문이 날 것 같았다. 

 “그런데 혼자 오신 거예요? 멋지다. 여기 꽤 안전해서 있을만해요.”

 영어와 한국어가 적힌 에이 포 용지를 훑어보며 남자가 말을 이었다.

 “이름이, 지연 씨. 동생인 줄 알았는데 누나네요? 편하게 불러주세요. 태형이에요.”

 배시시 웃으며 오른손을 내미는 태형의 살가운 태도가 사뭇 놀라웠다. 머나먼 타국에서 만난 한국인이라 그런지, 거리낌 없어 보이는 느낌이 싫지 않았다. 

 “몇 살인데요?”

 “지연 씨보다 이 년 늦게 태어났어요. 일 년 여행하면서 한 살 먹었네요.”

 군대를 갓 전역했을 것 같은 외모와 달리 그래도 스물여덟 살이면 아주 어린 나이는 아니었다. 일 년이면 꽤 긴 공백인데, 취업 준비를 하지 않고 계속 여행을 해도 되나? 선 넘는 질문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정신 줄을 잘 붙잡아야 했다. 사람의 경력을 가늠하고 재단하는 것은 인사팀에서 일하면서 생긴 고약한 버릇이었다. 

 “누구 씨 하는 거 오글거리는데 그냥 저한테 말 편하게 하시면 안 돼요? 어차피 바다 들어가면 길게 존대도 못 해요.”

 “어, 그래.”

 훅 다가온 태형의 말에 파도에 떠밀리듯 대답을 했다. 이렇게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사람은 오랜만이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바라봤지만 정작 당사자는 무심히 책장에서 책을 꺼낼 뿐이었다. 반바지에 쪼리를 신은 모습이 편안해 보였다. 지금 여기 사는 건 맞지만, 정말 원래부터 계속 다합에 살던 사람 같았다. 

 “졸면 안돼요.”

 책 위에 석류맛 탄산음료를 하나 얹어 둔 태형이 스쿠버 이론 영상을 틀었다. 재생 버튼을 누르자 화면에 가득한 파란색 바다 화면 위의 영어 자막과 함께 토익 리스닝 파트 같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해 못한 부분은 이따가 한국어로 설명해 줄게요. 쫄지 말고 봐요.”

말을 마친 태형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뚫려 있는 문을 통해 나갔다. 영어는 아마 내가 더 잘  할텐데. 졸지 말고, 쫄지 말고. 어린애 같은 말버릇에 피식 웃음이 났다.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건 오랜만이었지만 왠지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를 배우는 것 자체가 실로 오랜만이었다. 취업 준비를 하던 때를 생각하면 요즈음은 새삼 나태지옥에 빠져도 할 말이 없는 지경이었다. 4년제 대학을 휴학 없이 졸업하고, 공백기 없이 바로 취직한 나는 일명 ‘칼졸업, 칼취업’에 성공한 사람이었다. 남들 다 한다는 휴학 한 번 없이 쫓기듯 취준을 시작했으니까. 그러나 그 시절을 생각하면 늘 후회가 덤으로 딸려왔다. 3학년 때부터 이미 인강이며 스터디며 바빠 동아리 한 번 제대로 못해본 게 그렇게 한이 되었다. 매일같이 도서관에 박혀 있어야 하는 나에게 일주일에 두어 번 만나야 하는 동아리 활동은 부담이 되었다. 정말로 하고 싶었던 게 있었던 건 아니지만, 밴드 동아리에 들어가서 악기 하나쯤 배우는 건 살아가면서 좋았을지도. 지루한 영어 스쿠버 강의는 하염없이 의식의 흐름을 타고 흘러가다가 재생버튼이 세모가 되면서 멈췄다. 

 “못할 것 같아.”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약한 소리를 잘 하는 사람이었더라. 그렇지만 깊은 바다 속에서 호흡기와 마스크를 벗었다가 다시 쓰는 일을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영상이 끝남과 동시에 돌아와 리모컨을 조작하고 있던 태형이 푸흐흐 소리를 내며 웃었다. 

 “다들 영상 보면 그 소리 하더라. 그래도 자파리가 진짜 베테랑이에요. 같이 바다 들어가면 어떻게든 다 하게 돼 있어요.”

 “그래? 못 하는 사람은 없어?”

태형이 고개를 꺾어 두 모금 정도 남은 음료를 원 샷했다. 저거 내가 입  댄 건데. 빈 캔은 포물선을 그리며 쓰레기통으로 나가떨어졌다. 

 “못 하는 사람 있죠. 그래도 대부분은 다 해요. 그리고 딱 보니까 누나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냐고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입버릇처럼 해주는 칭찬인 게 티가 났다. 아마 이런 식으로 사람들의 용기를 북돋아 주는 거겠지. 이 말에 넘어가서 실실거리면서 노닥거리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입 꼬리가 올라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내일 너는 안 가?”

 “오픈워터는 거의 자파리가 해요. 저는 마지막 날 정도 가려나?”

 “그렇구나.”

 “왜요, 서운해요?”

 사람을 휘감는 재주가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어린애 주제에, 까져가지고. 나도 호락호락하지 않은 여자라는 걸 보여주어야지. 아무런 대답도 않자 태형이 주제를 돌렸다. 

 “근데 영상 다 이해했어요? 영어 되게 잘 하나보다.”

 “교재가 한국어라서, 매치하면서 보니까 그냥 뭐.”


 기초교육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태형과 이야기를 나눴다.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사람들만 마주치다 비교적 또래인 한국인을 만나니 반갑다는 태형의 말이 진실인지 알 수 없었지만 우선 믿어주기로 했다. 이집트 전에는 이스라엘과 요르단을 들렀다고 했다. 한 번도 여행을 생각해보지 않은 지역이었다. 사해에 들어가면 몸이 따갑다고 이야기하는 남자를 앞에 두고 문득 궁금증이 치밀었다. 태형은 언제까지고 그냥 이렇게 돌아다니며 사는 걸까? 가족이나 애인은 싫어하지 않을까? 위험천만하게 들리는 자신의 여행 경험을 꽤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듯하여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그렇게 길게 휴가 내기가 어려우면 왜 하필 다합으로 왔어?”

 혼자만 말을 놓는 게 불편해, 서로 편하게 하자니 태형이 기다렸다는 듯 반말을 했다. 꽤 핵심을 짚는 질문에 어디서부터 대답을 해야 할 지 잠시 고민이 되었다.

 “잠수를 하고 싶었어. 그런데 여기가 블랙 홀이라길래.”

두서없이 나간 말이 스스로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가에서 기웃거리는 거 말고, 수면 아래로 다이빙을 하고 싶었어. 아예 빠져들고 싶었다고. 그래서 스쿠버 다이빙을 검색하고 있었는데 여기가 여행자들의 블랙 홀이라길래 궁금해지더라.”

 태형이 주의를 집중해 듣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응시하는 눈이 영상을 틀기 전 기초 설명을 해줄 때보다도 더 진지해보였다. 

 “얼마나 헤어 나오지 못하길래 블랙홀일까. 그런 곳, 살면서 한번쯤은 가보고 싶잖아.”

 “누나 되게, 뭔가 철학적이다.”

 진지한 얼굴과 상반되는 아이 같은 반응에 웃음이 터졌다. 

 “너 그 말, 진짜 철학적이지 않다.”

 “아니 정말로, 스쿠버 하는 이유 중에 이렇게 낭만적인 건 처음 들어봐.”

 킬킬거리는 나와 상반되는 진지한 얼굴에 더 웃음이 터졌다. 그다지 꾸며서 말하지도 않았는데 순수하게 감탄하는 해맑음이 신기하기도, 사뭇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 

 “그냥 내가 뻔해지는 것 같아서, 그게 싫어서 잠깐 떠난 거야.”

 “여기는 다들 뻔한 거 싫어서 온 사람들뿐이야. 그런 사람들 모여도 비슷해.”

 의외의 말이었다. 그럼 너도 뻔한 사람이야? 물음을 고민하는 사이에 사람들이 탁탁 장비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들어오는 게 보였다. 오늘은 자파리와, 현지인 남자, 어제의 그 사십 대 여자 세 명이었다. 

 “코샤리?”

 현지인 남자가 벽면 외부로 향하면서 말하자 사람들이 줄지어 예스,라고 대답했다. 무슨 뜻인지 몰라 가만히 있는 나를 향해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같이 먹어요. 이집트 전통 음식 같은 건데 먹을 만 해요.”


 고개를 끄덕이자 자파리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고, 채 십 분도 지나지 않아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이 플라스틱 통 네 개를 봉투에 담아서 가지고 왔다. 우리는 테라스라고 하기엔 초라하지만 어쨌든 의자와 차양이 있는 곳에서 밥을 먹었다. 수도 옆에 붙어 있는 공간을 잘 활용한 곳이었다. 코샤리는 쌀과 파스타, 병아리콩 위에 향신료와 토마토소스를 부어먹는 식사였다. 후추 향이 강하게 났지만 그런대로 밥이 될 것 같았다.

 새로운 맛에 도전하는 사이, 나를 위해 모두가 통성명과 자기소개를 다시 했다. 한국인 손님이 꽤 많은지 자파리와 현지인 강사 무스타파도 간단한 한국어 단어를 알고 있었다. 자파리는 내 생각을 읽은 듯 자기 스스로를 가리켜 ‘아저씨’라고 했다. 큰 키에 잔뜩 그을린 피부를 갖고 있는 무스타파의 나이가 내심 궁금했지만, 외국은 자기 소개할 때 나이를 말하지 않았다. 대신 무스타파가 4개 국어를 할 줄 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재희 언니는 아예 퇴사를 하고 여행 중이라고 했다. 언니는 유럽을 돌아다니는 데만 반년이 걸렸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말했다. 마치 이제 그 곳의 문화는 다 알게 되었다는 듯이.

 “여기는 거의 장기 여행하는 사람이 많아. 집도 렌트해서 다 같이 쓰고.”

 재희 언니의 말에 따르면 다합에는 집 하나를 통째로 빌린 다음, 쉐어하우스 형식으로 여자 남자할 것 없이 방을 하나씩 맡아 쓰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곳에 오기로 결정한 뒤로 나름의 조사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가성비 호텔만 찾고 있었던 스스로가 초짜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혼성 쉐어하우스라니, 말만 들어도 불편했다. 

 “그런데 다합은 어떻게 알았어?”

 아까 태형의 질문과 비슷한 듯 다른 재희 언니의 질문에, 스쿠버 다이빙을 검색하다가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고 답했다. 다합이 배낭여행자들에게 천국인 이유를 설명하는 언니의 말투 속에는 다합이 ‘진짜 여행자’의 것이라는 의기양양함이 배어 있었다. 그 속에 잘 녹아든 자신에 대한 자부심도 뚜렷하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 의도가 너무도 분명해서 가르쳐주는 듯한 말투가 딱히 미워 보이지 않았다. 

 “난 아마 여기 당분간 살 것 같아. 모르는 것 있으면 나한테 물어봐.”

  나를 제외한 모두가 담배를 즐겼다. 이집트는 딱히 흡연구역이랄 게 없는지, 앉은 자리에서 다리를 꼬고 저마다 담배를 꺼내어 불을 붙였다. 다 먹은 코샤리의 플라스틱 통이 재떨이가 되었다. 무스타파는 카운터 구석에 놓여있던 시샤를 가져왔다. 회사 생활을 하며 담배 냄새에는 면역이 생긴 터라 자리에 그대로 있었더니, 무스타파가 손님이 먼저 하는 게 예의라며 시샤를 권했다. 

 “아 돈 스모크.”

 시샤는 담배가 아니라는 항변에, 소심하게 손가락으로 만든 엑스 자가 슬그머니 내려갔다. 인헤일, 익스헤일. 들이 마쉬고, 내쉬고. 좋은 거 가르친다고 키득거리는 태형과 재희 언니의 웃음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처음에는 콧구멍으로 나오던 연기가 점차 사라지고 입안에 살구 맛이 감돌기 시작했다. 마침내 입으로 후 연기를 내뿜자 무스타파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이 정도 가지고. 뿌듯한 마음에 크게 한 번 내쉬었더니 머리가 핑 돌았다. 살구 향 연기가 기차에서 나오는 매연처럼 공기 중으로 퍼졌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시샤 연기와 섞여 스쿠버 샵 내부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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