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5
“숨 쉬어!”
일 미터의 얕은 수심에서 올라와 자파리가 내게 외쳤다. 수면 아래로 내려가니 산소통이 있다는 것을 망각한 채 습관적으로 숨을 참게 되었다. 코는 내버려둔 채 순전히 입으로만 호흡한다는 점이 익숙하지 않았다. 걱정했던 바다 수영은 오히려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물속에서 자연스럽게 호흡기로 호흡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할 듯싶었다.
따뜻한 날씨와 달리 2월의 다합 앞바다는 차가웠다. 추위를 많이 탄다고 미리 엄살을 부려놓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스타파가 건네 준 5mm짜리 다이빙 수트를 입었는데도 사방에서 공격하는 싸늘한 바닷물은 매서웠다.
“아, 추워!”
아랑곳하지 않고 물을 몸에 끼얹으며 직진하는 자파리가 대단해 보였다. 이집트인은 바이오리듬 같은 게 다른가. 한국인의 기개를 보여주고 싶었지만 등에 진 산소통은 너무 무거웠고,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애매하게 젖은 몸은 떨려왔다. 한 여름에도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는 나에게 2월의 수온은 가혹했지만, 고작 이런 걸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입버릇처럼 하는 말을 되뇌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래도 어떡해, 해야지.
스쿠버 다이빙의 시작은 잠수였다. 너무나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막상 직면하니 당연하지 않았다. 한 톨도 남김없이 고개를 완전히 다 수면 아래로 집어넣는 일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몸은 둥둥 떠오르고, 바깥 세상에 미련이 남은 나는 자꾸만 공기 중으로 얼굴을 디밀었다.
“다이브.”
자파리가 몇 차례나 시범을 보여주었지만 머리를 깊은 바다 속으로 집어넣는 일은 쉽지 않았다. 부력조절장치의 공기를 빼 완전히 물에 잠기는 일이 사뭇 두렵게 느껴졌다. 스스로도 망설임 없이 물속으로 뛰어들고 싶었지만 마음과 몸이 따로 놀았다. 세상에 남은 미련이 이다지도 많았던가. 자꾸만 수면 위로 올라오려고 하는 어깨를 자파리가 탁 붙잡았다. 두려워하지 마.
겁이 많다는 말보다는 조심성이 많다는 말을 듣고 살았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스타일이었고, 척 봐도 위험할 것 같으면 가까이 가지도 않았다. 한국 수준의 치안이라는 다합에 와서도 밤에 혼자 돌아다닌 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언제나 모험을 꿈꿨다. 틀에 박힌 삶에서 벗어나서 예기치 못한 낭만이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낭만은 불규칙에서 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규칙적인 삶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벗어나지 못하는 스스로를 언제나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고, 때로는 무엇이 이렇게 나를 만든 건지 원인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전부 소용이 없었다. 빠져들어야 했다.
숨을 크게 들이 쉬면서 부력조절장치의 공기를 뺐다. 수면 아래로 진입하는 순간 눈을 뜨고 호흡을 시작하려고 애썼다. 얕은 물이라 흙바닥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밖에서 보는 것보다 맑고 투명한 물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고요한 해수면 아래에서 들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내가 숨 쉬는 소리뿐이었다. 호스를 타고 산소가 나에게로 들어오는 소리가 뚜렷이 들렸다. 투명한 공기 방울만이 내가 물속에서 살아 숨 쉰다는 것을 입증해주었다. 곧이어 따라 들어온 자파리가 엄지 척을 내밀었다.
조금 더 깊은 곳으로 헤엄쳐 들어가자 청록 빛에 가까운 물빛이 옅어지면서 물고기 떼가 보였다. 물결에 따라 흔들리는 말미잘과 산호 사이사이로 니모와 도리가 헤엄치는 걸 볼 수 있었다. 수면 아래에서 수영하는 일은 오히려 수영장에서 수영하는 것보다 쉽게 느껴졌다. 팔을 허우적대면서 오리발로 발장구를 치면 몸이 앞으로 나아갔고, 중력을 받지 않는 느낌이 들어서 마치 우주에 있는 것 같았다. 둥둥 떠다니는 몸의 느낌이 육지에서보다 자유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깊은 물속으로 들어갈 때마다 자파리가 귀 압력 평형을 하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노란색과 주황색이 섞인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다니는 걸 보고 손짓하자 자파리가 웃는 듯, 공기 방울이 커졌다. 산호를 만지거나 바닥을 손으로 짚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말을 들었던 터라 자갈 위로 다니려고 애썼다. 사람이 한 번 손을 대면 원래의 해양 상태로 복구되는 데에는 한참이 걸린다는 경고는 나를 두렵게 했다. 사람에게든 자연에게든 피해를 주는 건 딱 질색이었다.
엎드린 상태로 몸을 평행하게 유지하는 중성 부력은 단순했다. 숨을 들이 마시면 몸이 떠오르고 내뱉으면 가라앉았다. 호흡기와 마스크를 제거했다가 다시 쓰는 일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지만, 이미 차오른 자신감이 부스터를 달아주었다. 입으로 우 하는 소리를 내뱉으며 공기방울을 만들면서 호흡기가 없는 상태를 견디자 자파리가 물속에서 박수를 쳐 주었다. 육지에서는 천근만근 무거운 짐처럼 느껴졌던 산소통이 별다른 무게도 느껴지지 않을뿐더러, 소중한 자원으로 느껴지는 기분 역시 생소했다.
수면 위로 올라와 호흡기를 입에서 뺀 자파리가 말했다.
“베리 굿.”
땡큐. 스스로 생각해도 나쁘지 않았던 것 같아서 칭찬을 곱게 받아들였다. 다들 한 번씩 고생한다는 귀 압력 평형에도 문제가 없었다. 하이파이브를 하고 바다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어쩌면 나, ‘스쿠버수저’ 아닐까. 바닷물이 허리춤에 올 정도가 되자 산소통이 급격히 무거워졌다. 지난 이틀 동안 봐왔던 사람들처럼, 마스크를 손에 들고 물을 뚝뚝 흘리며 다이빙 샵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