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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경 Oct 07. 2024

요즘 애들

chapter6

오전과 오후에 나누어 진행되는 스쿠버 강습이 끝나면 딱히 일정이 없었다. 다합은 쇼핑이나 관광에 적절한 도시가 아니었다. 재희 언니가 자신의 쉐어 하우스에서 같이 저녁을 먹자고 제안했을 때, 태형까지 합류한 닭볶음탕 파티에 구미가 당겼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햇볕이 어스름하게 떨어지고 어둑한 느낌이 감도는 시각, 숙소 앞으로 나를 데리러 온 태형은 6개입 맥주 두 개를 양 손에 하나씩 들고 있었다. 

 “어딘지 알아. 지도 안 봐도 돼.”

 자신만만하게 앞으로 나서는 뒷모습에 다듬은 지 오래된 듯한 긴 뒷머리가 눈에 띄었다. 조금 빠른 걸음으로 걷는 태형의 대각선 뒤에서 비포장도로를 걸었다. 마감이 되지 않은 건물에 고양이들이 웅크리고 앉아서 태형과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다합은 어딜 가나 고양이가 있었다. 사람 손을 많이 탔는지 도망치지도 않았다. 이집트에 오고 난 뒤로 해가 진 거리를 걷는 건 처음이었다. 태형은 나보다 어린 남자애일 뿐인데도 곁에 있다는 사실이 든든하게 느껴졌다. 

 “요리 잘 해?”

 탁 탁 꽂히는 슬리퍼 소리를 가르고 태형이 물어왔다. 

 “어떨 것 같은데.”

 “진짜 못할 것 같아.”

 웃음기 섞인 낮은 목소리가 조용한 거리에 흩어졌다. 

 “그럼 왜 물어봤어.”

 발끈하는 모습에 짐짓 으스대는 목소리로 태형이 답했다. 

 “난 잘 하니까.”

 “어떻게 잘하는데?”

 “여행 하다보면 한식은 통달하게 돼. 매번 사 먹을 수가 없으니까.”

 오른쪽 코너 방향을 손짓하며 맥주 번들을 한 번 추켜 올린 태형이 거의 다 왔다는 말을 덧붙였다. 뭐야, 자랑하려고 말 꺼냈네. 자랑에는 대가가 필요하니 오늘 뭐라도 해 보이라는 말을 웃어넘기는 모습이 밉지 않았다.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한 화법은 아직 어린 티가 났지만 홀리는 면이 있었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안 겪어봤지만 저런 애들이 제일 위험했다.

 “재희 언니네 있는 사람들이랑은 다들 친해?”

 “친하다면 친하지.”

 “그건 또 무슨 대답이래.” 

 “보면 알아.”

  재희 언니와 상용이, 서율이는 알고 보니 함께 산 지 이 주밖에 안 되었다고 했다. 쉐어 하우스의 구성원은 원래 계속 바뀌는데, 어쩌다보니 재희 언니가 주인처럼 오래있는 사람이 되었을 뿐이었다. 스물 두 살밖에 안 된 서율이는 한 학기 휴학을 내고 여행 중으로, 우리 중 유일하게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쓰는 사람이었다. 서율이는 재희 언니의 딸 뻘인데도 다 같이 둘러앉아 동등한 일원으로 밥을 먹고 맥주를 마시는 게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 휴학 내고 여행을 할 생각을 했어?”

 스물 두 살이면 한창 고민이 많을 때 아닌가. 취업 준비로 정신없었던 나의 이십 대 초반을 생각하니 어린 나이에 먼 나라로 여행을 온 서율이가 새삼 대단해보였다. 

 “백 세 시대에 일 년 빨리 일 시작하면 뭐 해요. 현역으로 대학 입학했으니까 한 학기 정도는 놀아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이야, 이게 바로 엠지인가?”

 재희 언니가 새삼스러운 사실을 듣는 듯 놀리자 서율이 엠지 맞다며 웃음을 터트렸다. 집안 사정과 무관하게 모든 것에는 시기와 단계가 있다고 생각하던 대학 시절이 생각나 입안이  썼다. 요즘 애들은 다르구나. 아님 서율이가 다른 건지. 여덟 살 차이지만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상용이는 원래 무슨 일을 했는지 뚜렷하게 말하지 않았다. 대학교를 다니는지도 불분명했다. 다만 자신이 카투사 출신이라서 영어를 곧잘 한다는 사실만을 말했을 뿐이었다. 용산 카투사가 사라지고 경기도로 이전한 이야기를 한참 들었다. 카투사에 있는 미군들이 실은 미국에서는 그다지 대접받지 못하는 미국인이라는 사실에 대해 상용이는 흥분해서 이야기했다. 

 “나는 지금 전역하고 여행한 지 삼 개월쯤 됐는데, 여행 경험 바탕으로 귀국하고 책 내고 싶어. 근데 재희 누나가 뭐라는지 알아? 요즘 여행 책 누가 읽냐고 라면 받침으로 쓸 거냐고 하더라. 너무하지 않아?”

 틀린 말 했냐며 웃음을 터트리는 재희 언니가 태형을 가리켜 말했다. 

 “태형아, 지연이한테도 그 얘기해줘. 너 총 맞을 뻔 한 거.”

 “뭔데? 나도 모르는데, 얘기해줘.”

 존댓말을 쓰는데 편하다던 서율은 태형을 유난히 편하게 대하는 것 같았다. 재희 언니 옆에서 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채 상체는 태형 쪽으로 기울이고 있었다. 

 “총을 맞을 뻔 한건 아니고. 여기 오려고 고버스 타고 시나이 반도 건너는데 갑자기 버스 탄 사람들 전부 다 내리라고 하더라고. 거기 분쟁지역이잖아. 짐 풀어서 검사하면서 총 들고 한 명씩 겨누면서 머리 뒤에 손 대라고 하던데.”

 그릇에 남은 쌀밥을 모으면서 하기에는 섬뜩하고 무서운 얘기였다. 듣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는 상황 묘사에 다시금 비행기로 다합을 오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험천만한 경험담을 아무렇지 않게 묘사하는 태형이 대단해보이기보다는 안쓰러워 보였다. 위험을 최대한 피해 가려고 하는 나로서는 태형이 스스로 위험한 상황을 자처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안 무서웠어? 다친 사람은 없었어?”

 “이상한 물건 없으니까 다 보내주던데. 무서웠지 당연히. 여기서 끝인가 보다 싶었는데, 그래도 여기 지금 멀쩡히 있잖아.”

 개무서워, 소름돋아,를 연발하며 태형의 팔뚝을 때리던 서율이 대뜸 물었다.

 “갈 때는 비행기 타자. 오빠 아직도 한국 가는 티켓 안 끊었어? 언제 갈 건데.”

 갈 때 되면 가겠지, 웅얼거리며 대답을 회피하는 태형이 상용에게 대화의 바통을 넘겼다. 너네 샵 블루 홀 언제 또 간대. 상용이와 서율이는 라이트 하우스에 좀 떨어진 다이빙 샵에서 프리 다이빙 자격증을 따고 있었는데, 서율이는 그 사실을 못내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 

 “아, 나도 재희 언니 있는 데서 할 걸.”

 “저기요, 나 때문에 옮기고 싶은 거 맞아요?”

 재희 언니가 키득거리며 상용이와 맥주 캔을 부딪혔다. 서율이 태형에게 한 마디라도 더 말을 걸고 싶어 하는 게 티가 났다. 감추지 못하는 건지, 감출 생각이 그다지 없는 건지 알 수 없는 생기발랄함이 공처럼 튀어 올랐다.

 “언니, 진짜 아니라니까요.”

 서율이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 재희 언니의 팔을 팔꿈치로 톡 쳤다. 

 “아니, 태형이가 워낙 인기 많으니까. 혹시나 했지.”

 “라이트하우스 앞바다가 좋아보여서 라니까요.”

 닭볶음탕에 남은 감자를 포크로 잘게 쪼개고 있던 태형이 말을 돌렸다.

 “다들 또 어디 갈 예정이야?”

 대화의 주제는 열기구를 탄 듯 각자의 여행으로 이어졌다. 어디를 여행하고 왔는지, 또 다른 곳은 어디로 가고 싶은지. 다들 여행이 삶의 목적 중 하나인 것 같았다. 이곳에서는 인수인계까지 다 마치고 유급휴가를 온 내가 특이한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이 주 뒤에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타입이었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바다로 뛰어드는데 결심하는 것도 한참이나 걸리는. 

 끝이 나지 않는 휴가를 받으면 어떤 기분일지 상상이 가질 않았다. 지나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합에는 기약 없는 여행을 떠나 온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다. 한정적인 돈은 둘째치더라도, 끝나지 않는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마음은 어떤 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아서 부러웠다. 그래 본 적이 없어서, 정확하게 부럽다고 말할 수 있는지도 확신이 없었다. 다만 거침없이 뛰어드는 자세가 자파리의 다이빙을 연상케 했다. 

 모두와 인스타그램 팔로우를 하고, 태형과 내가 설거지를 했다. 태형이 나를 숙소에 데려다주는 길에 담배를 얻어 폈다. 쓸데없는 도전이라고 말리던 태형은 기어이 내가 담배를 하나 집어 입에 물자 불을 붙여주었다. 불이 붙지 않았다.

 “이거 불량 인가봐.”

 태형이 가볍게 웃으며 내 손가락에서 담배를 채 가더니, 자신의 입에 물었다. 너무도 쉽게 불이 붙은 담배를 내게 건넸다. 

 “너가 하니까 되네.” 

 “그러게, 내가 하니까 되네.”

 완전히 캄캄해진 다합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가끔씩 아기가 우는 듯한 고양이 소리를 제외하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밤이었다. 가끔씩 오토바이가 지나갔지만 서울에 비하면 이렇게나 조용한 밤은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갖고 온 화장품은 한 번도 쓰지 않았다. 선크림이라도 바르면 다행이었다. 모두가 땡볕 아래에서 공평하게 익어가고 있는 다합의 하늘 아래에서 치장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낯선 사람을 만나는데도 대충 츄리닝 차림으로 간 게 새삼 답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태형과 발걸음을 맞췄다. 꽉 맞는 스키니 진을 벗어두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듯한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오픈워터 교육 삼 일차, 수월하게 자격증을 딸 수 있었다. 이로써 15m 수심까지 내려갔다 올 수 있는 자격을 취득하게 되었다. 무스타파와 버디가 되어 계획 다이빙을 하고, 수중 나침반을 사용해 직진하는 법을 배웠다. 고개를 들어 코를 푸는 시늉을 해 마스크에 차오른 물을 빼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호흡으로 몸의 부력을 컨트롤하는 호버링은 까다로웠다. 그렇지만 모든 과정이 인터넷에서 본 후기만큼 어렵지는 않았다. 무스타파는 나의 차분함이 강점이라고 말해주었다. 

 깊은 바다로 내려갈수록 뭍으로 올라가는 데에도 시간이 걸렸다. 수심이 깊어질수록 압력이 세지고 잠수를 오래할수록 체내의 질소 농도가 높아진다고 했다. 갑작스럽게 얕은 수심으로 올라가 신체가 받는 압력이 바뀌면 폐가 팽창되어 위험하기 때문에, 우리는 늘 수심이 얕은 곳에서 멈춰 있다가 수면 위로 올라가고는 했다. 

 스쿠버를 하는 동안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온갖 사소한 걱정과 잡념의 목소리가 사라지는 기분이 좋았다. 입에 물고 있는 호흡기를 통해 들어오는 산소를 마시는 데에 집중하고, 눈에 가득 들어오는 산호와 물고기를 구경하는 데에 바빴다. 팔 다리는 헤엄쳐서 앞으로 나아가야 했으며, 귀가 아프지 않도록 틈틈이 압력 평형도 해주어야 했다. 그야말로 스쿠버를 하는 동안은 바빴다. 깊은 바다 속에서의 분주함은 역설적으로 나의 내면을 고요하게 만들어주었다. 

 더 깊은 곳으로 가 보고 싶었다. 욕심이 났다. 아직 여행 일정은 넉넉했고, 카이로를 둘러보는 데는 며칠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생각보다 시시하게 딴 오픈워터 자격증에 만족하기에는 스스로가 꽤나 스쿠버 다이빙에 재능이 있는 것 같았다. 마침 어드밴스 프로그램은 이틀이면 한다기에, 망설임 없이 자파리에게 수강료를 지불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기세등등했던 태도와는 달리 나름 긴장했었던지, 침대에 눕자마자 눈이 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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