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7
언제 잠이 들었지? 눈을 뜨자 사위가 어둑했다. 핸드폰 충전도 해놓지 않고 깜빡 잠에 들었나보다. 8프로. 아슬아슬한 배터리 잔량이 불안했다. 불도 안 켜놨네. 스위치를 내렸지만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화장실로 가 전등 버튼을 눌렀지만 전구는 반응이 없었다. 제발, 변기 레버를 내려 봤지만 반응이 없었다. 창문을 내다보니 불이 켜진 건물이 없었다. 정전이었다.
다합은 종종, 아니 꽤 자주 정전이 된다고 들었다. 전기 사용량이 조금만 많아지면 전체 정전이 된다고 했다. 짧으면 십 분, 길면 한나절이라는 정전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몰랐다. 망했다. 보조 배터리를 충전해뒀던가? 플래시 키는 배터리를 아끼고자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컴컴한 와중에 짐을 아무렇게나 헤집었다. 수영복과 속옷들이 마구잡이로 흩어졌다. 정돈되지 않은 캐리어 속에서 손바닥만한 보조 배터리를 찾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처럼 느껴졌다. 땀방울이 이마에 맺히는 느낌이 조급함을 더했다. 이대로 핸드폰이 꺼지고 정전이 계속된다면 그야말로 고립이었다.
까맣게 내려앉은 어둠을 뚫고 인스타그램 메시지 알람이 환하게 주위를 밝혔다.
- 나오셔.
테형이었다.
- 어딜?
빠르게 타이핑하는 손가락이 미약한 흥분으로 물들었다.
- 앞.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었지만 우선 앞이라는 태형의 말에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가슴이 쿵쿵 뛰는 게 느껴졌다. 정전이 돼서 나를 데리러 온 건가? 네가 날? 왜? 립스틱이라도 바를 걸 뒤늦은 후회가 되었지만 거울 하나 없는 계단에서는 매무새를 다듬을 수도 없었다. 매일 물에 젖은 생쥐 꼴만 보여주다가 이제 와서 예뻐 보이고 싶어 하는 것도 웃겼다. 급한 대로 머리를 다시 묶고, 손가락으로 이마의 잔머리를 정리하는 스스로가 우습게 느껴졌다.
막상 불이 다 꺼진 삼 층 계단을 내려가는 일은 두렵게 느껴졌다. 배터리를 아끼려고 주머니에 넣어뒀던 핸드폰을 꺼내 플래시를 켜고, 한 손으로는 난간을 잡으며 천천히 한 발자국씩 발을 디뎠다. 금방이라도 굴러 떨어져서 다리가 부러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돌발 상황에 취약한 건 스스로가 싫어하는 특징이었다.
문득 재현과 함께 타고 가던 지하철이 갑자기 멈췄던 순간이 떠올랐다. 운행하던 지하철이 역과 역 사이 어딘가에 정지하고, 불이 꺼졌던 그 순간. 나오지 않는 안내방송에 웅성대는 승객들···. 이미 혼자만의 재난상황으로 빠져버린 나를 불러와 꺼냈던 다정한 재현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것 같았다. 전기가 나가서 에어컨이 꺼진 탓인지, 고작 한 층을 내려가는데에도 진땀이 삐죽 났다.
동시에 태형이 왜 나를 데리러 왔을 지에 대한 생각도 멈출 수 없었다. 타지에서 혼자 위기 상황에 놓인 한국인을 두고 볼 수 없는 타입일까. 단지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태형과 다이빙 샵 밖에서 일부러 단 둘이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 사실을 자각하자 당황스러울 만큼 난간을 잡고 있는 손 끝이 미끌거리기 시작했다.
과연 태형은 숙소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매일 신는 낡아빠진 슬리퍼를 신고, 다이빙 샵에서 퇴근한 옷차림 그대로 서 있었다.
“뭐야.”
고맙고 반가운 마음과는 달리 불퉁한 말이 튀어나갔다.
“뭐가 뭐야. 어리둥절해하고 있을 거 뻔해서 왔지.”
귀가 달아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주변이 어두운 게 다행이었다. 태형이 핸드폰 플래시 라이트를 키고 오른손으로 내 팔목을 잡았다. 엎어지지 말고 잘 따라오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온 신경이 팔목으로 쏠려 있었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손의 온기가 전해져 오는 감각이 마치 처음 사람의 살갗이 닿는 것처럼 생경하게 느껴졌다.
“근데 우리 어디 가?”
“별 보러. 정전되면 별 보러 가야 돼.”
불이 없는 다합의 거리는 왠지 으스스했다. 간간히 플래시 라이트를 켜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보였지만, 건물의 불이 다 꺼져있으니 왠지 폐허가 된 도시 같았다. 길가에 아무렇게나 누워 있는 고양이의 눈만이 빛나고 있었다. 디스토피아가 된 다합을 태형과 함께 탐험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정말로 디스토피아가 되어도 왠지 태형은 살아남을 것만 같았다.
“누나, 나 한국 가면 뭐 할까?”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별을 보러 가는 중에 진로 걱정을 하다니.
“그런 생각, 별로 안 하는 줄 알았는데.”
“어떻게 안하겠어. 나라고 언제까지나 이집트에서 살 수는 없으니까.”
불빛이 없는 어두운 밤거리를 걷는 태형이 평소보다 조금 심란해 보였다. 손에 쥔 플래시가 흔들리면서 태형을 비추자 꾹 다문 입술이 드문드문 시야에 들어왔다. 그래, 언제까지나 낭만을 좇아 살아갈 수는 없겠지. 그렇지만 몇 년째 회사 생활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지금의 순간을 좀 더 즐기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일은 어떻게든 시작하기만 하면 바퀴가 굴러가는 것처럼 굴러가게 되는 법이었다. 그러나 그 말이 태형에게 닿을 것 같지는 않았다.
“지금도 멋져 보여. 괜찮아.”
앞뒤를 다 잘라먹은 말에 태형이 희미하게 웃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누나가 그렇게 말해주니까 다행이네.”
태형은 이차 해석을 하게 만드는 말을 종종 했다. 습관처럼 나오는 말버릇인지 나에게 호감이 있어서 그런 건지 긴가민가한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툭툭 내뱉었다. 호감이라는 것도 타지에서 한국인을 만나서 반가운 인간적인 호감인지, 나와 잘 해보고 싶은 호감인지 그 경계가 불분명했다. 모든 호감은 그 비중의 차이 일테지만, 혼자 곱씹어보게 만드는 말을 여상히 하는 그 모양새가 익숙한 것은 아니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입사 동기를 제외하고 남자와 친구가 된 적이 없었다. 딱히 남자사람친구는 존재할 수 없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내 곁엔 재현이 있었으며 그 이외의 기간에도 남자들은 딱 두 부류였다. 내게 이성적 관심이 있거나, 없거나.
스쿠버 다이빙 샵의 옥상 계단 문을 열쇠로 여는 태형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얘는 나랑 뭘 하고 싶은 걸까. 어쩌면 딱히 별 생각 없을지도. 관심이 없는 여자를 이렇게 챙겨주나? 이것도 샵 회원을 챙겨주는 것의 일환인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물음표들이 수면 아래 물방울처럼 이어졌다. 옥상이라고 해봤자 고작 삼층 계단 위에서 보는 정도의 높이밖에 안 되었지만 그래도 지상에서 보는 것과는 다른 기분이었다. 불이 모두 꺼진 마을 위로 하늘이 대조적으로 더 빛났다. 서울에서는 볼 수 없었던 별들이 자수처럼 촘촘하게 박혀 있었다. 장인이 한 땀 한 땀 바느질로 수놓은 듯한 별들이 너무 아름다워 오히려 이질감이 들었다.
“북두칠성밖에 모르겠네.”
태형이 손가락으로 별을 하나하나 세어가며 말했다.
“별자리 같은 거, 어렸을 땐 오히려 알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전혀 모르겠다.”
북두칠성조차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에 태형이 손가락으로 하늘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저기 있잖아. 유난히 밝은 별무리.”
에이 참, 하며 내 손가락을 끌고 가 하늘을 가리키는 태형의 손길이 이전보다 따스해져 있었다. 원래 이렇게 사람 손을 덥석 덥석 잘 잡느냐는 말이 튀어나가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뭐든 대수롭지 않게 행동하는 태형에 비해 과민 반응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다.
잠시 태형이 아래층에 음료를 가지러 간 사이 혼자 옥상 너머의 마을을 바라보았다. 건물의 불은 여전히 꺼져 있었고, 플래시를 킨 사람들이 간간히 돌아다니면서 뭐라고 소리치는 게 작게 들렸다. 매일같이 지하철을 타고 출근해서 일을 하던 게 열흘도 되지 않았는데, 그 시간들이 아득한 과거처럼 느껴졌다. 아직도 휴가가 많이 남아있었지만 다시는 그 시간으로 돌아갈 것 같지 않다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휴가가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단순한 바람이 아니었다. 지금의 나와 서울에서 살아가는 나 사이의 괴리감이 너무도 크게 느껴졌기 때문일까. 지금의 시간들이 내 삶에서 툭 튀어나온 조각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핸드폰도 안 보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파인애플 맛 음료 병을 두 개 들고 올라 온 태형이 샵에는 술이 없어서 아쉽다고 투덜댔다. 플래시를 킨 채로 유리병 밑에 깔아두자 음료의 색깔에 따라 노란색의 조명이 생겼다. 대학교 신입생 시절 잔디에서 술을 먹을 때 소주병 밑에 조명을 깔아두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빛을 받아 탐스럽게 빛나는 노란색의 액체를 멍하니 쳐다보다, 문득 태형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렇게나 바닥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모습이 편안해 보여 그 옆에 따라 앉았다.
“이제 말해봐.”
“뭘요.”
괜히 피식피식 웃는 모습에 아직 앳된 느낌이 남아 있었다. 조금씩 불어오는 바람에 정돈되지 않은 앞머리가 눈을 슬쩍 가렸다. 정전된 오지의 마을에서 나를 데리러 온 너, 너는 누구니.
“그냥, 너에 대해.”
“면접관이세요? 그냥 눈앞에 있는 대로 봐.”
“방어적이기는.”
“그럼 누나는. 누나가 먼저 말해봐, 자신에 대해.”
막상 그렇게 치고 들어오자 무엇부터 말해야할지 말문이 막혔다. 엠비티아이? 너무 진부했다. 학교와 전공? 정말 면접을 보는 것도 아니고.
“나는, 모험하고 싶은 사람이야.”
도시의 불빛 곁에서는 보이지 않는 별들이 암전된 시골 마을 위에서 빛을 발하는 것처럼, 일상의 사소한 순간순간에서는 쇠해버릴 단어들이 이곳에서는 응축되어 밀도 있게 내뱉어졌다. 이 몽환적인 순간의 근원이 내가 사는 동네에서 열 네 시간 떨어진 곳에서 존재한다는 신비감 때문인지, 곁에 있는 사람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십 대, 이십 대가 지나면 이제 더 이상 온 몸을 내던져서 무언가를 하지는 못한다고 하잖아. 나이가 들수록 안정적인 걸 찾게 되니까···. 난 계속 나를 던지고 싶어. 그게 뭐든 말이야.”
“이번엔 그게 스쿠버였고?”
“스쿠버든, 뭐든, 계속 다이브.”
몇 번 보지도 않은 사람에게 이런 내밀한 속 얘기를 하게 되는 게 신기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도 이 순간을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럼 나는 반대네. 나는 안정적이고 싶은 사람이야.”
의외의 말에 얼굴을 살폈으나 장난기는 없어보였다. 잠자코 말을 이어가기를 기다리자 태형은 조금 머쓱해보였다.
“내가 스스로를 생각했을 때 안 될 것 같아서. 한 곳에서 계속 박혀서 직장을 가지고 살 수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그렇게 못 살 것 같아. 그래서 한국 안 가는거야. 못 가는 거 일지도.”
늘상 농담조로 말하는 태형에게도 고민이라는 건 무거운 거였다. 일 년 넘게 여행하는 거며, 이집트가 마음에 든다고 몇 달씩 지내는 거며 마냥 자유로운 영혼일거라 생각했었다. 상념에 잠긴 듯한 태형에게 짠, 하며 병을 들어 유리를 부딪쳤다.
“그럼, 우리는 서로의 추구미네.”
“추구미?”
“추구하는 컨셉 같은 거, 몰라? 이렇게 되고 싶다, 저렇게 되고 싶다. 그런 모습을 추구미라고 하더라고 요즘은. 너 여행 오래 하느라 감 다 죽었구나.”
별 단어가 다 있네, 새로 배운 단어를 발음해보는 태형을 보며 슬그머니 나오는 미소를 참았다. 쟤 왜 저렇게 웃기지. 문득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이없다, 웃기다는 생각은 모든 애정의 징조가 아니던가.
“난 바르고 건실한 남자 좋아해.”
갑작스러운 내 선언에 태형이 저항 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갑자기 이상형 토크? 나도 말해야 돼?”
됐다며 손사래 치는 내 옆으로 태형이 털썩 드러누웠다. 아, 오늘 불 들어오기는 글렀나보네. 낮에는 더위에 무겁게 느껴졌던 공기가 밤이 되자 산뜻하게 다가왔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자 소금기가 섞인 듯한 공기에 몸이 훈훈해지는 게 느껴졌다. 밤이지만 서늘하지 않은 날씨,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지금의 온도와 습도를 어딘가에 보관하고 싶었다. 태형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숙소에서 혼자 꺼진 핸드폰을 붙잡고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것이었다.
“고마워.”
태형이 고개를 한 번 끄덕하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우리는 파인애플 음료 조명을 사이에 두고 한참을 말없이 밤하늘을 응시했다. 별자리의 이름은 몰랐지만 대략의 윤곽은 그릴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몇 번의 별똥별을 봤고, 그 때마다 서로의 팔을 건드려 별똥별을 볼 수 있도록 알려주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두 손을 맞잡고 말없이 소원을 빌었다. 다시 이 곳에 올 수 있게 해달라는 소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