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의 HR 커피챗 시리즈
[Edited by iid the HRer]
※ 내가 쓰는 글들은 개인적인 경험과 고민을 바탕으로 한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니, 편하게 봐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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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절대평가 이후, 보상은 어떻게 결정해야 할까? 글에서 나온 평가와 보상 분리 케이스에 대해 이런 질문들이 있었다.
"그게 가능해요?” “결국 돈 얘긴데, 사람은 감정적인데, 어떻게 따로 봐요?”
이건 단순한 궁금증이 아니라, 일종의 현장형 도전 질문이다. HR 자문을 하다 보면 리더들이 이렇게 말한다. “좋은 말인 건 알겠어요. 그런데 실무에서는 절대 안 먹혀요.” 그 말에는 경험에서 비롯된 냉소가 섞여 있다. 평가 시즌만 되면 반복되는 불만과 피로 — ‘점수’로 사람을 나누고, ‘돈’으로 관계가 흔들리는 풍경이 그 배경이다.
사람에게 평가는 언제나 감정과 연결된다. “나는 조직 안에서 어떻게 해석되고 있나?”라는 내면의 질문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도를 아무리 세련되게 바꿔도, 구성원들은 제도의 완성도보다 ‘나에 대한 해석’을 먼저 본다. 평가가 수단이 아니라 신호로 작동하는 이유다.
결국 평가와 보상의 문제는 시스템이 아니라 인식의 문제이며, 제도보다 철학이 늦게 자라는 현상이다. 따라서 이 글은 “평가와 보상은 반드시 분리되어야 한다”는 주장보다는, “왜 우리는 그 분리를 어렵게 느끼는가”를 짚어보려는 시도다. HR에서 이 주제는 늘 ‘이상론 vs 현실론’의 대립으로 비치지만, 그 사이에는 언제나 중간지대가 있다. “분리가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지금의 사고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 즉, 분리는 절대적인 정답이 아니라, 조직이 어느 단계에 서 있느냐에 따라 선택 가능한 하나의 옵션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평가와 보상의 분리는 가능하다. 다만 지금 대부분의 조직이 가진 보상 철학과 평가 언어로는 어렵다. 그건 제도의 한계가 아니라, 조직의 철학적 미숙함 때문이다. 이 구조를 ‘해야 하는 일’로 보기보다, ‘할 수 있으려면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가’로 보는 관점 전환이 필요하다.
이 변화가 가능하려면 네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1️⃣ “시간이 곧 돈”이라는 연공적 관성을 버릴 것.
2️⃣ “내가 잘하면 더 받는다”는 개인주의적 사고를 넘어설 것.
3️⃣ 평가와 보상을 감정이 아닌 구조의 언어로 구분해 말할 수 있는 조직 해석력을 가질 것.
4️⃣ 그리고 평가 자체를 비판이 아닌 학습의 언어로 다룰 만큼 개인 성과의 고도화를 이룰 것.
한국의 다수 기업은 여전히 연공 중심 보상 구조에 익숙하다. 근속이 길수록 임금이 오르고, 평가는 인상폭을 조정하는 장치로만 작동한다. 즉, 평가는 성장을 위한 피드백이 아니라 “인상률을 나누는 수단”이 된다. 리더들이 평가 시즌을 ‘전략적 대화의 시간’이 아니라 ‘점수 조정의 시즌’으로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평가는 본래 구성원의 성장 가능성을 조명하는 과정이어야 하지만, 대부분의 조직에서는 결과가 곧바로 연봉 인상률과 직결되기 때문에 누구도 피드백에 집중하지 않는다. 모두의 관심은 “얼마나 올랐는가”로 수렴된다.
그 결과, 조직의 에너지는 회고나 학습이 아니라 ‘다음 해 협상 대비’로 흘러간다. 평가가 ‘성과 설계의 도구’가 아니라 ‘인상률의 근거 자료’로 전락하는 이유다. 실제로 한 회사는 “평가와 보상은 분리할 수 없다”는 원칙을 고수했지만, 경영 환경 악화로 상위 평가자들마저 인상률이 제로였던 해를 겪으며 평가의 신뢰가 무너졌다. “결국 점수는 아무 의미 없다”는 냉소가 퍼졌고, 회사는 2년 뒤 성과 피드백과 보상 결정을 시점을 달리해 운영했다. 처음엔 혼란스러웠지만, “이번엔 평가가 진짜 성장 이야기구나”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핵심은 제도가 아니다. “시간이 아니라 역할이 임금을 결정해야 한다”는 관점의 전환이다. 시간의 언어로 보상하는 조직은 ‘얼마나 오래 있었는가’를 기준으로 하고, 역할의 언어로 보상하는 조직은 ‘무엇을 바꿨는가’를 본다. 전자가 과거의 충성에 대한 보상이었다면, 후자는 현재의 임팩트에 대한 신뢰다. 조직이 근속의 언어에서 역할의 언어로 전환될 때 비로소 평가와 보상은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독립된 축으로 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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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장벽은 개인주의적 사고다. “내가 잘했으니, 당연히 더 받아야 한다”는 직관은 인간적으로는 옳지만 시장의 언어로는 성립하지 않는다. 보상은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역할의 가치와 희소성, 그리고 시장의 수급 구조에 의해 결정된다. 성과는 개인이 만들어내지만, 그 가치를 평가하는 무대는 시장이다. “나는 열심히 했다”는 감정의 언어이고, “그 일이 시장에서 얼마나 가치 있는가”는 구조의 언어다. 많은 조직은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해 보상을 감정의 문제로 다룬다.
예를 들어, 같은 수준의 성과를 낸 두 직무가 있다고 하자. 한쪽은 인력이 부족해 시장가치가 급등하고, 다른 쪽은 인력 공급이 많아 보상이 유지된다. 두 역할 모두 조직 내에서는 동일하게 ‘잘한 사람’이지만, 시장은 다르게 가격을 매긴다. 이 차이를 설명하지 못하면 구성원은 감정적으로 ‘불공정하다’고 느끼고, 조직은 ‘시장 구조상 불가피하다’고 답하게 된다. 이 불일치는 곧 신뢰의 단절로 이어진다.
이것이 바로 ‘Market Pay’의 본질이다. 나의 보상은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가’가 아니라 ‘내 역할이 시장에서 어떤 가치를 가지는가’로 결정된다. 롯데의 직무급제 역시 같은 원리를 따른다. 같은 레벨이라도 직무의 난이도, 시장 희소성, 비즈니스 임팩트에 따라 급여 테이블이 다르다. 내부에서는 냉정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외부에서는 이미 합리적 기준으로 받아들여진다.
한 스타트업은 개발자와 영업 간 급여 격차로 논란이 있었지만, 경영진은 ‘교체 불가능성’과 ‘매출 레버리지’를 근거로 설명했다. 감정적으로 불편했지만 구성원들은 “회사가 논리적으로 일관되게 말하고 있다”는 신뢰로 전환했다. 이처럼 평가와 보상 분리는 감정의 인정 욕구와 시장 가치의 언어를 구분할 때 가능하다. “나는 인정받고 싶다”는 감정과 “나는 시장에서 어떤 가치인가”는 서로 다른 질문이다. 그 구분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평가와 보상은 독립된 축으로 선다.
※ (부록) 조직 철학별 보상 구조 유형
HR이 보상 제도를 설계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질문은 “어떤 방식을 써야 할까?”다. 그러나 보상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이 사람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결과다. 어떤 조직은 보상을 ‘헌신의 보답’으로, 어떤 조직은 ‘규칙의 결과’로, 또 어떤 조직은 ‘성과의 수치화’ 혹은 ‘시장 가치의 신호’로 본다. 그리고 어떤 조직은 ‘지금의 보상보다 미래의 확장’을 보상의 형태로 설계한다. 즉, 보상 구조는 ‘돈을 나누는 방식’이 아니라 조직의 철학을 실행하는 구조다.
① 관계 중심형 보상 ― “보상은 감정의 연장선이다.”
관계 중심형 조직은 신뢰와 관계 유지가 운영의 핵심이다. 대표의 마음, 리더의 정(情), 함께한 시간이 곧 보상의 근거가 된다. 평가는 성과보다 관계의 지속을 확인하는 절차에 가깝고, 보상은 근속과 헌신의 감정적 보답으로 결정된다. 장점은 내부 결속력이다. 사람과 사람이 조직을 붙잡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성과 기준이 모호해지고, 보상이 ‘정의 크기’로 느껴질 때 불만이 누적된다.
✅ 설계 포인트
- 인센티브 대신 ‘관계 유지 비용’으로 접근
- 금전 외 보상(칭찬, 권한, 기회)을 병행
- 신뢰를 감정이 아닌 구조로 옮겨오기
✅ 점검 질문
- 우리 조직의 신뢰는 제도보다 사람에 기반하는가?
- 인상 결정의 언어에 감정이 개입되어 있지는 않은가?
- 보상은 공로의 결과인가, 관계의 보답인가?
② 운영 안정형 보상 ― “규칙이 공정을 만든다.”
운영 안정형 조직은 절차와 규율을 통해 공정을 확보한다. 사람보다 시스템이, 관계보다 규정이 우선이다. 보상은 개인의 성과보다는 규칙을 지켰는가로 결정된다. 평가는 등급별로 구분되고, 인상률이 등급에 따라 고정된다. A등급 6%, B등급 3%, C등급 0%. 누구도 억울하지 않은 체계지만 감동도 없다. 장점은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이다. 그러나 지나친 규정화는 평가를 ‘의미 없는 통과 의례’로 만든다. 공정은 유지되지만, 성장은 정체된다.
✅ 설계 포인트
- 평가·보상 시점을 분리해 평가가 학습 대화로 작동하도록 설계
- 등급별 인상률 대신 ‘범위(예: 3~6%)’를 두어 리더 재량 확보
- 피드백 퀄리티를 높이는 리더십 코칭 도입
✅ 점검 질문
- 보상 기준은 “규정에 맞게”인가, “성과에 맞게”인가?
- 구성원은 공평함과 공정함을 혼동하고 있지 않은가?
- 규칙 준수가 목적이 되고 있지는 않은가?
③ 성과 중심형 보상 ― “성과가 곧 인정이다.”
성과 중심형 조직은 결과를 가장 정직한 기준으로 삼는다. 매출, KPI, 달성률 같은 숫자가 평가의 전부이며 보상은 즉각적이다. “성과를 내면 보상받는다.” 명확하고 직관적인 구조지만, 감정 소모가 크고 협력보다 경쟁을 강화한다. 개인은 자극받지만 조직은 소진된다.
✅ 설계 포인트
- 단기성과(보너스)와 장기성과(Long Term Incentive, 스톡옵션) 분리
- 목표 미달 시 ‘학습 리뷰’ 프로세스 도입
- 팀 단위 인센티브 비중을 높여 협력 중심 보상 구조 설계
✅ 점검 질문
- 우리는 “성과가 좋으면 자동으로 돈이 오른다”고 믿는가?
- 실패 후 학습 대화가 가능한가?
- 단기성과 중심 구조가 장기 몰입을 약화시키고 있지 않은가?
④ 역할 가치 중심형 보상 ― “시장가치가 기준이 된다.”
역할 가치 중심형 조직은 개인의 노력보다 직무의 가치를 본다. “이 역할은 시장에서 얼마의 가치를 가지는가?”라는 질문이 출발점이다. 직무급제나 Market Pay 구조가 대표적이다. 같은 직급이라도 역할의 범위, 책임, 시장 희소성에 따라 연봉이 달라진다. 이 구조에서 평가는 보상의 근거가 아니라 성장의 피드백 도구로 전환된다. 장점은 시장 정합성이다. 내·외부 모두 납득할 수 있는 구조지만, 단점은 내부 온도 하락이다. 시장 논리가 인간적 온도를 빠르게 식히기 때문이다.
✅ 설계 포인트
- Market Data 기반 밴드 설계
- 보상 결정은 HR, 평가 대화는 리더 — 투트랙 운영
- 역할 정의(범위·책임·영향력)를 명확히 문서화
✅ 점검 질문
- 보상은 감정의 보답인가, 시장의 신호인가?
- 구성원은 ‘보상은 시장이 결정한다’는 원리를 받아들이는가?
- 리더는 평가와 보상의 언어를 구분해 말할 수 있는가?
⑤ 미래가치 중심형 보상 ― “지금의 성과보다 내일의 성장에 투자한다.”
이 유형은 스타트업, 스핀오프, 성장지향형 조직에서 자주 나타난다. 보상의 초점이 ‘현재 연봉’이 아니라 미래의 수익 구조에 있다. 당장의 급여는 낮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개인이 얻는 리턴이 커지는 구조다. 보상의 단위가 ‘연봉’이 아니라 ‘시간의 누적 가치’인 셈이다. 대표적 형태가 스톡옵션, 지분참여, 장기 인센티브(LTI), 혹은 배운 뒤 별도 브랜드를 운영하는 파트너십 모델이다.
이 구조의 장점은 몰입이다. 사람은 자신의 기여가 미래의 수익으로 돌아온다는 확신이 있을 때 더 오래 머문다. 그러나 단기 보상이 부족하면 신뢰가 깨질 수 있다. 따라서 기대 가치의 투명한 공유가 필수다.
✅ 설계 포인트
- 스톡옵션·지분 외에도 ‘분사/창업/내부 파트너’ 등 장기 리턴 설계
- 기여도·참여기간에 따른 Future Return Matrix 공개
- 단기 유지비용(생활 연봉)과 장기 수익구조를 명확히 분리
✅ 점검 질문
- 우리는 구성원에게 ‘지금의 보상’보다 ‘내일의 기회’를 제시하고 있는가?
- 리더는 “당신의 기여가 시간이 지나 어떤 리턴으로 돌아올 것이다”를 명확히 말할 수 있는가?
- 구성원은 단기 안정보다 장기 확장을 보상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관계 중심형 조직에서는 사람의 신뢰가 보상이고, 운영 중심형 조직에서는 규칙의 실행이 보상이다. 성과 중심형 조직에서는 숫자가 보상이며, 역할 중심형 조직에서는 시장이 보상이다. 그리고 미래가치 중심형 조직에서는 시간이 곧 보상이다.
결국 보상은 제도가 아니라 철학의 언어다. 조직이 어떤 언어로 사람을 대하느냐가 곧 보상 체계의 본질을 결정한다. HR의 질문은 언제나 이렇게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 조직의 신뢰는 사람에 기반하는가, 제도에 기반하는가?”
“보상은 감정의 보답인가, 시장의 신호인가, 아니면 시간의 약속인가?”
“리더는 평가와 보상을 같은 문장 안에서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명확해질 때, 보상 구조는 제도적으로 정리되기보다 철학적으로 정렬된다. 결국 보상은 ‘지금의 숫자’가 아니라 “우리가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대한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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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조건은 조직의 언어 수준이다. 리더와 HR이 평가와 보상을 구분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평가가 성장의 언어로 작동하고, 보상이 시장의 언어로 작동하려면 조직이 이 두 언어를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조직에서는 두 언어가 뒤섞여 있다. “이번엔 고생 많았는데, 급여는 많이 못 올려드릴 것 같아요.” 따뜻한 말이지만 구조적으로 위험한 문장이다. ‘고생 많았다’는 감정의 언어이고, ‘급여는 못 올린다’는 시장의 언어다. 이 둘을 함께 쓰는 순간, 피드백은 ‘핑계’로 들리고 보상은 ‘배신’으로 들린다. 이 모호한 언어 혼용이 리더십 신뢰를 가장 빠르게 무너뜨린다.
한 글로벌 컨설팅사는 이렇게 말한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당신의 리서치 역량이 많이 발전했어요. 다만 현재 역할의 시장 밴드는 이 수준이에요. 다음 단계로 가려면 ○○ 역량을 증명해야 합니다.” 이 언어에는 감정이 없다. 대신 구조가 있다. 평가의 목적은 성장이고, 보상의 목적은 시장이다. 그 둘을 혼동하지 않기 때문에 리더도, 구성원도 덜 흔들린다.
결국 평가/보상 분리는 언어의 분리이기도 하다. 조직이 이 언어를 다루지 못하면, 제도를 아무리 바꿔도 감정으로 회귀한다. 중요한 건 ‘언어의 기술’이 아니라 ‘언어의 인식’이다. “평가의 언어로 성장을 말하고, 보상의 언어로 시장을 말한다”는 단 한 문장만 공유돼도, 조직의 대화는 달라진다. 리더의 피드백은 추상적 위로에서 구체적 방향 제시로 바뀌고, 구성원은 억울함 대신 납득으로 반응한다. 감정은 여전히 남지만, 그 감정이 구조 안에서 정리된다. 리더십이 언어를 통해 감정을 구조화할 때, 평가와 보상은 더 이상 서로의 변명 거리가 아니라 각자의 역할을 가진 두 축으로 자리 잡는다. 이 지점에서부터 조직은 처음으로 ‘공정한 피드백’이라는 개념을 실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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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와 보상 분리는 모든 조직이 당장 실행할 수 있는 답이 아니다. 이는 조직의 성숙도가 일정 수준에 이르렀을 때 가능한 선택지다. 아직 개인의 성과를 객관적으로 피드백하지 못하거나, 리더가 평가를 ‘비판’으로만 인식한다면 분리보다 먼저 ‘평가의 의미’를 재정의해야 한다. ‘고도화’란 시스템의 정교함이 아니라, 조직이 사람을 해석하는 철학의 수준이다. 평가는 서열을 매기는 절차가 아니라 한 사람의 맥락과 학습곡선을 읽어내는 과정이어야 한다. 이 능력은 제도로 주입되지 않는다. 리더의 관점이 바뀔 때 비로소 생긴다. 리더가 “이 사람은 부족하다”가 아니라 “이 사람이 어떤 한계를 겪고 있는가”를 본다면 평가는 처벌의 언어가 아닌 관찰의 언어가 된다. 이것이 ‘고도화된 조직’과 ‘감정적 조직’을 가르는 본질적 차이다.
조직이 고도화된다는 것은 리더가 성과를 숫자가 아니라 패턴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일시적 결과보다 사고 습관과 선택의 구조를 본다는 의미다. HR은 이런 해석이 가능하도록 리더에게 틀을 제공해야 한다. 즉, ‘성과 관리’가 아니라 ‘사람의 작동 방식을 해석하는 철학’이 조직 안에 있어야 한다. 그 철학이 자리 잡을 때 비로소 평가는 보상과 다른 언어로 작동한다. 결국 평가–보상 분리는 제도의 완성도가 아니라 조직이 사람을 다루는 철학이 성숙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보상은 시장의 언어로, 평가는 성장의 언어로 말할 수 있는 조직만이 감정의 충돌을 구조로 흡수한다.
결국 평가–보상 분리는 제도의 완성도가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는 태도의 문제다. 사람을 결과의 도구로 보는 조직은 돈으로 말을 끝내지만, 성장의 주체로 보는 조직은 대화로 말을 이어간다. 전자는 ‘성과’를 관리하고, 후자는 ‘사람’을 설계한다. 그리고 바로 그 차이가 조직이 감정의 파동을 넘어 구조적 균형으로 나아갈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
평가와 보상을 분리하는 것은 “이게 맞다/틀리다”의 문제가 아니다. 그건 조직의 운영 철학이 어디에 초점을 두느냐의 선택지 중 하나다. 연공 중심, 관계 중심, 정(情) 중심으로 운영되는 조직이라면 이 구조는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 반대로 시장 중심,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을 추구하는 조직이라면 평가/보상 분리는 자연스러운 진화일 수도 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그것이 ‘불가능한 이상론’은 아니라는 점이다. 단지 지금의 철학과 관성으로는 어려운 일일 뿐이다. 그 벽을 깨려면, 조직이 시간 대신 역할로, 개인 대신 시장으로, 감정 대신 구조로 사람을 해석해야 한다. 그리고 그게 바로, 조직이 ‘성숙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제 다른 언어를 다룰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다.
이 시점에서 HR의 역할은 ‘평가와 보상의 기술자’가 아니라 ‘언어의 번역자’가 된다. 제도와 감정 사이를 잇는 해석자, 시장의 언어를 내부의 피드백 구조로 바꾸는 설계자다. 평가–보상 분리는 결국 HR이 감정을 설계하고, 리더가 언어를 선택하며, 구성원이 시장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즉, 이 구조는 완성이 아니라 ‘조직이 사람을 다루는 방식을 업데이트하는 실험’이다. 그 실험을 시작하는 순간, 조직은 이미 이전과 다른 언어를 말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언어가 누군가의 감정을 덜 흔들게 되고, 누군가의 성장을 더 명확히 보이게 만들 때, 비로소 평가와 보상은 ‘분리’가 아니라 ‘진화’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