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갈리에서 현지적응 교육이 끝나고 드디어 Nyanza district office(냔자 군청)에서 일을 시작했다. 첫 출근 때까지만 해도 여전히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그려지지 않아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이야기를 했다. 군청 옆 청년센터인 yego center에 가서 뭐 하는 곳인지 기웃거리기도 하고, 냔자의 유일한 호텔에 가서 둘러보기도 하고, 왕이 살던 왕궁을 관리하는 곳의 매니저와 종종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구글지도를 켜고 보이는 곳들을 다 둘러봤다.
그렇게 2주일 정도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살펴보고 이 지역을 위해 하고 싶은 프로젝트들을 정리해서 시장님께 PPT로 보고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깡이었을까 싶다. 군청이라고 했지만 르완다 내 주요한 도시중 하나이며 Nyanza라는 지역의 업무를 총괄하는 District Office로 큰 규모다. 마치 자칭 관광 전문가라고 하는 외국인이 서울시청에 들어가 시장님한테 이렇게 서울 관광을 활성화시키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아니었을까. 그땐 고민보다는 행동이 먼저 였기에 직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코이카 단원이었기에 이렇게 기관장과 직통으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사실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곤 한다.
냔자를 둘러보면 볼수록 참 매력적인 지역이라고 느꼈다. 모든 장소가 역사가 있는 곳이고 의미가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구글 지도를 보면 이러한 매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심지어 왕의 묘지도, 게스트 하우스도, 레스토랑도 모두 등록이 되어있지 않은가! 구글 지도에서 냔자는 허허벌판처럼 느껴졌다. 외국인들이 많이 보는 트립어드바이저에도 Nyanza를 검색하면 다른 국가의 Nyanza가 나오고 르완다 Nyanza 정보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시장님께 진행하기로 했던 프로젝트들을 우선 미뤄두고 구글 지도에 장소를 등록하는 것을 먼저 하기로 했다. 아니 다른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 이 정보를 등록하는 것이 필수였다. 한국에서는 너무나 당연해서 고려조차 하지 않았던 것들이 여기에서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에 신선한 충격을 받으며 다시 한번 르완다라는 것을 인지한다.
그날 이후 사무실에 출근하자마자 짐을 사무실에 두고 냔자를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위치를 잡고 구글 지도에 등록하기 시작했다. 레스토랑이면 주인과 이야기를 하면서 외국인들이 검색할 수 있게 등록해 주겠다며 영업시간과 내부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허락도 받으며 정보를 등록했다. 기존에 등록된 장소들 중에서 오류가 있는 곳도 상당했다. 하루는 키갈리 국립 박물관 매니저가 내려온다고 해서 같이 냔자에서 제일 맛있는 꼬치집인 sunrise bar에 갔는데 위치 등록이 길 건너편으로 등록이 되어 있었다. 꼬치와 맥주를 마시다 말고 구글 지도에 위치 수정 요청을 하기도 했다. 매니저는 나에게 엄지 척 들어 올려줬다. 크~ 나는 이런 뿌듯함에 일을 한다.
두 발로 이리저리 다니면서 식당, 카페, 가게, 약국, 호텔, 주요 관광명소 등 여행자들이 이용할만한 곳들을 직접 다니면서 등록했다. 키갈리에서 사진 잘 찍는 선생님에게 밥도 사주면서 구글지도에 등록하고 싶은데 재능기부 좀 해달라고 부탁도 해가며 꾸준히 등록을 했다. 덕분에 냔자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을 만나 본 것 같다.
냔자에서 Keza 모르면 냔자 사람 아닐 정도로 모든 사람을 다 만났다. 하하. 빵집 사장님은 고맙다면서 쿠키를 하나 줬는데 너무 맛있어서 단골이 되었다. 눈에 보이는 곳들을 다 등록하고 코워커에게 부탁해서 추가로 등록해야 할 장소들을 더 찾아내어 등록했다.그렇게 구글지도에 60개의 장소를 신규 등록하고 29개의 오류를 개선했다. 현재까지 내가 등록한 장소들의 누적 조회수는 75만 건이다. 추가로 나는 냔자의 1% 로컬 가이드가 되었다. 구글에서 어느 날 축하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로컬 가이드가 되었다는 메일을 보내왔다. 그러면 상위 1% 로컬 가이드 커뮤니티에 들어갈 수 있단다.
꼬치와 맥주를 마시다가 정보 오류를 수정한 곳을 8000명이나 봤다니 기분이 좋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고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아무도 하지 않던 일이었다. 나에겐 너무나 쉬운 일이었는데 그들에겐 너무나 필요했던 것이었고 그 효과는 정말 컸다. 이후 로컬 체험을 하는 프로젝트를 하는 데에도 이 지도가 기반이 되었고 냔자의 올레길을 만드는 프로젝트에도 이 지도가 기반이 되었다. "지속 가능성"을 고려해서 내가 떠나도 누구나 구글 지도에 새로운 장소를 등록하고 기존 정보를 수정할 수 있도록 코워커는 물론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여러 차례 워크솝을 열었다. 호텔 매니저는 업무상 참여할 수 없다고 해서 직접 방문해서 구글지도 등록, 수정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떠나기 전에 코워커에게 구글지도 등록과 수정하는 가이드를 전달하기까지 했다.
냔자의 숨겨진 장소를 발견하며 사람들과 이야기 나눈 시간들 모두 즐거웠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배운 것이 있다면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는 누군가에게 필요한 일을 할 때 그 결과는 배가 된다는 것이다. 특히 개도국에서는 더더욱 그러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마지막으로 내가 냔자에서 발견했던 곳들을 소개하며 이 글을 마무리해보고자 한다.
냔자에서 가장 매력적인 숙소, Lcyari Lodge
냔자에서 머문다면 Dayenu Hotel보다 100배는 더 좋은 분위기에서 머물 수 있는 곳이다. 이렇게 멋진 공간이 있는데 구글 등록이 안되어 있어 아무도 몰랐던 곳이다. 키갈리에 있을 듯한 현대와 전통이 어우러진 인테리어로 진짜 쾌적하게 머물 수 있다. 비영리 기관을 운영하는 대표님이 운영하는 곳이라 인심 또한 좋고 냔자나 교육 철학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 볼 수도 있는 곳이다. 진짜 200% 만족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곳!
키갈리에 사는 사진 전문가 선생님을 섭외해서 멋진 숙소 사진을 얻고 장소 등록까지 완료했다.
예술에 관심 있다면 강력 추천 하는 Rwanda African Art Museum
냔자에 갔다면 이곳을 꼭 들려보길 추천한다. 처음 오픈하기 전부터 르완다 국립 박물관 매니저를 통해서 알게 된 곳이다. 이곳을 운영하는 대표는 르완다 사람이지만 캐나다에서 오랜 기간 살다가 은퇴하고 고향에 돌아온 분이다. 그래서 문화와 전통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있어서 사비로 아프리카 전역에 있는 예술품들을 모아 고향에 아프리카 박물관을 만든 것이다. 얼마나 멋있지 않은가. 예술가들이 서로 교류할 수 있는 공간도 지원하고 있고 여행자들을 위한 게스트 하우스도 운영 중이다. 예술을 좋아한다면 꼭 들려서 이야기 나눠보길 추천한다. 정말 많은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이곳에 간다면 'Keza에게 추천받고 왔어요'라고 한다면 맛난 커피도 얻어먹을 수 있을 것이다: )
냔자의 피톤치드를 맘껏 느낄 수 있는 Remera Hill
살면서 산이란 공간을 지도에 등록해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가 바로 나다 : )
그런데 이 장소를 등록하는데 무려 4개월이 걸린 듯하다. 너무 좋은 곳인데 등록이 안되어 있어서 구글에 지명 등록 요청을 했는데 주소도 없고 그렇다고 영업 중인 사업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파악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2번 반려당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었는데 몇 주뒤에 Nyanza trails(냔자 올레길) 다국적 프로젝트에 합류하면서 이 지명이 등록이 필수로 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고 구글지도에 계속 등록 요청을 해서 결국 등록이 된 곳이다. 그렇다 난 의지의 한국인이다. 장소 등록 후에 47,927회나 조회되었는데 반려했던 구글 담당자 반성하시오!!
구글에서 2차례 거절 당함.
두어번 정도 더 시도해서 결국 등록 완료!! 의지의 한국인!!!
냔자에서 이색적인 깔끔한 레스토랑을 찾는다면 Rerumwana Center Restaurant
청년 직업 교육센터인데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요리를 하고 밥을 먹을 수 있는 레스토랑도 운영한다. 외부, 내부 시설 모두 깔끔하고 맛도 있는데 구글지도에 등록이 안되어 있어서 냔자 사람들 빼고는 몰랐던 곳이다. 센터장과 이야기를 나누며 르완다에서 교육과 취업을 연계하는 시스템을 생각한 것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다. 특히 냔자 지역은 상권이 많이 활성화되지 않아 일자리가 많이 부족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이런 멋진 곳이 조금 더 활성화되어 더 많은 학생들을 수용할 수 있도록 코이카 동기 선생님들에게 여기 너무 좋다고 많이 놀러 오라고 많이소개했었다. 냔자에 간다면 여기도 꼭 들려보길.
행복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Urumuri Pottery
르완다 도예기술의 시작점은 냔자다. 그래서 유능한 도예 기술자들은 모두 냔자에 있다고 한다. 대표적인 도예시설은 Gatagara Pottery다. 이곳은 이미 시설 등록도 되어 있고 운영하는 담당자도 있어서 사진만 추가로 등록해 주고 잘못 등록된 정보만 업데이트를 해줬다. 그런데 Gatagara Pottery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한 Urumuri Pottery라는 곳은 운영 매니저가 혼자 하드캐리 하는 곳이었다. 군청에서도 인가를 받은 시설이긴 하지만 서류 작업이나 마케팅 등 모든 업무를 매니저 혼자 담당하고 있었다. 마케팅에도 관심이 많은 담당자여서 우선 구글에 등록하는 방법도 알려주고 여행자들이 오면 투어를 할 수 있도록 투어 콘텐츠도 함께 기획해 준 곳이다.(투어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꺼내보기로) 사진에 있는 여성들은 이 지역에 사는 분들인데 도자기를 만드는 분들이다. 얼마나 행복해 보이는가. 이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 주변 에너지가 생각보다 나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행복한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의 나의 표정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의 표정이다. 진짜 르완다에 가서 내 표정이 정말 많이 달라졌다. 한국에 있을 땐 항상 무표정으로 일 했는데.. 아무래도 나는 한국을 벗어나야 행복한 사람인가 보다 ㅎㅎㅎ
Urumuri Pottery 도예가들
바나나술 양조장이 궁금하다면 AkanyamunezaLtd
진짜 여기 코워커와 대화를 하다가 우연히 알아낸 곳이다. (내 코워커들은 모두 술을 마시지 않는다..ㅎㅎ;;;) 바나나술은 르완다 전통 술로 르완다에 2년 넘게 산 한국인들도 잘 모르는 술이다. 이 존재를 알게 된 건 국립 박물관 매니저와 저녁을 먹으면서 알게 되었는데 이 술은 옛날 우리나라 막걸리처럼 집에서 소량으로 만든다고 한다. 바나나술의 포인트는 숙성을 시키고 먹는 타이밍이다. 그래서 만들고 가장 맛있을 때 바로 먹어야 하는데 마트에 유통을 하면 그 시점을 파악하기 어려워 르완다 사람들은 바나나술을 굳이 마트나 가게에서 사서 먹지 않는다고 한다. 이 양조장의 바나나술은 어디로 유통되는지 모르겠지만 상당히 커 보였다.
이보다 더 많이 있지만 끝이 없기에 이만 줄인다. 냔자에 알려지지 않은 보물 같은 곳들이 많은데 더 많은 사람들이 알고 방문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