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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해 Jun 12. 2020

나카노 노부키의 바람난 유전자

불륜은 왜 사라지지 않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앞으로 인류사회에 불륜이 사라지는 세상은 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인류의 뇌구조가 ‘일부일처’와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 뇌 과학자인 저자 나카노 노부코의 말이다.

 우리의 뇌는 단지 유전자나 뇌 내 물질에 의해 조종당할 뿐이다. 불륜에 대한 사회적인 비난이 아무리 강해져도, 소중한 배우자가 분노에 몸부림치고 비탄에 빠져 허우적대도 불륜이 사라지는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요즘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는 드라마가 있다. ‘부부의 세계’라는 제목을 달고 방영되고 있는 그 드라마는 바로 남편의 부정행위 즉 ‘불륜’ 때문에 발생하는 부부간의 여러 가지 문제를 다루고 있다. 사실 불륜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는 언제 보아도 흥미롭기도 하고 또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기 마련이다.

 ‘사랑에 빠진 것이 죄냐?’고 묻는 불륜 저지른 남자의 대사를 듣고 있노라면 어쩌면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 어떤 핑계를 갖다 붙인다고 해도 ‘불륜’의 피해자인 여자 또는 남자 당사자에겐 엄청나게 잔인한 일임에 틀림없다.


 이 책의 저자 나카노 노부코의 말대로 사람들 중에는 소위 말하는 ‘불륜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하니 그렇게 따지자면 불륜을 저지른 그들을 비난해야 할지 측은히 여기고 이해해주어야 할지 갈등이 생기는 지점이다. 그 사람이 가지고 태어난 유전자가 그렇다고 한다면 어찌할 방도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는 ‘일부일처제’를 원칙으로 정해놓고 혼인신고가 된 법률혼일 경우 법으로 그 혼인을 보호해 주고 있다.


 그렇다면 일부일처제는 원래부터 인류에게 당연한 제도였을까?

 한 사람이 단 1명의 특별한 상대와만 성적인 인연을 맺는 형식 이외의 혼인 형태, 예컨대 일부다처, 일처다부, 다부다처 등에 생리적인 혐오감을 품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일부일처제 이외의 혼인 형태는 결코 드물지 않았다. 고대 일본 사회에서는 남녀 모두 복수의 상대와 관계를 맺은 적이 있었고 근대로 접어든 후에도 일본 각지에는 여전히 남자가 밤에 몰래 여인의 방에 잠입하는 ‘요바이 풍습’이 남아 있었다. 예를 들면 축제 같은 일정기간에 마을 전체 여성의 성을 해방하거나 딸, 후처, 여종만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이는 일상 속 고된 노동의 긴장을 완화시키고 불임 남편을 둔 가정에 노동력으로서의 아이를 갖게 하는 등 공동체를 결합하고 유지하는 기능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생물 집단의 존속과 유전적 다양성의 유지에도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일본 이외의 나라나 지역에서도 일부일처 외의 형태를 유지했거나 현재도 사실상 허용하고 있는 사회가 있다. 예를 들어 이슬람 문화권에서 일부다처가 인정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또한 곰곰이 생각해 보면 현재의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의 사회제도는 진정한 의미의 일부일처제를 전제하지는 않는다. 현재 결혼한 사람이 다른 누군가와 연애를 하면 불륜이 된다. 그러나 반려자를 먼저 떠나보냈거나 이혼한 경우처럼 ‘시간차’가 있다면 재혼이 허용된다. ‘시간차’가 있으면 다른 이성과 결혼할 수 있는 제도는 진정한 의미의 일부일처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는 어떤 계기로 일부일처제를 적극적으로 채택하게 되었을까? 인류가 일부일처제를 선택하게 된 계기는 농경과 성병이 원인이라는 연구가 있다. 인류의 선조는 수렵 채집 생활을 했을 무렵에는 일부다처였지만 농경을 시작하며 집단으로 정착하게 된 후 성병의 대유행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그로 인해 같은 상대와 평생토록 백년해로하는 편이 공중위생적인 관점에서 볼 때 집단 유지에 유리해서 일부일처제가 되었다고 추측한다.

 또한 ‘정조’라는 개념은 인류가 본래 자연발생적으로 타고난 게 아니라 농경을 시작하면서 일부일처제가 확립된 후 ‘부록처럼’ 부여된 윤리관일 수 있다. 미국 워싱턴 주 에버그린 주립대의 역사학· 가족학 교수인 스테파니 쿤츠 교수는 부와 지위의 격차가 크고 그것이 자녀에게 계승되는 사회는 여성의 정조에 엄격한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내가 가진 부와 지위를 물려받을 자식이 확실하게 나의 자식임을 보증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부다처 사회에서 남편들은 과연 행복할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예를 들면 무슬림에서는 일부다처가 인정되는데 코란에는 “모든 아내를 공평하게 대하라”라고 쓰여 있다. 다시 말해 일부다처 사회에서 남성은 집안 여성들의 질투로 인한 다툼이나 재산을 둘러싼 분쟁을 잘 관리하고 조율해야만 한다. 이에 걸맞은 인격과 관리, 조율 능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어중간한 바람기만으로 여러 아내를 얻는 것은 무리다. 사실 남성에게는 일부다처가 일부일처보다 훨씬 성가시고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키는 제도다. 실제로 일부다처가 인정되는 지역이나 사회에서도 복수의 아내를 둔 남성은 10%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그 사회에서 가장 부유한 계층의 남성들로 한정된다.


 현대사회는 과도할 만큼 불륜에 대한 비난을 퍼붓는 시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도나 불륜은 끊이지 않는다. 또한 배우자 이외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강직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불륜을 거듭하는 사람이 있다.

 정숙 유전자와 불륜 유전자가 따로 있다는 것인가?

 최근 연구에서 특정한 유전자의 특수한 돌연변이체를 가진 사람은 그것이 없는 사람에 비해 불륜율, 이혼율, 미혼율이 높다는 것이 밝혀졌다. 불륜형과 정숙형의 비율은 연구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략 반반일 것으로 추측된다. 요컨대 당신 주위의 2명 중 1명은 본질적으로 일부일처제 결혼과 맞지 않는 불륜형 유전자를 가졌다는 뜻이다.

 즉 태생부터 일부일처제와 맞지 않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엄연한 과학적 사실이며, 최소한 ‘남편 외도의 원인은 아내의 성격이나 행동에 있다’는 식의 논리보다는 훨씬 정당하다. 어떤 사람의 행동이 일부일처제의 가치관과 합치하느냐 아니냐는 본인의 의지나 노력도 중요하지만 유전자와 뇌 구조로 결정되는 부분도 크다는 뜻이다. 또 뇌 내 전두피질의 기능 약화는 유전만이 아니라 알코올 같은 후천적 요인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술김에 저지른 하룻밤 실수’가 발생하는 것이다.

 어쩌면 불륜 유전자는 오히려 우리의 생존에 필요했기 때문에 도태되지 않고 현재까지 살아남은 것이다. 불륜을 하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그 사람의 도덕이 타락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가 조금이나마 효율적으로 번식하도록 우리를 몰아세우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성 행동이 오늘날의 윤리관에서 허용되지 않을 뿐이다.


 한 인간의 불륜 기질 혹은 불륜 방법이나 불륜 목적에 영향을 주는 요인 중 하나로 ‘애착 유형’이 있다. ‘애착 유형’은 그 사람의 대인 관계를 좌우하므로 당연히 연애와 성 행동도 애착 유형에 따라 달라진다. 애착 유형중 안정형은 일부일처형 성 행동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회피형 사람은 애정과 성행위를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애정 없이도 성욕이 생기면 얼마든지 섹스를 할 수 있고 누구와도 깊은 관계를 맺고 싶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과 가벼운 관계를 맺고 싶은 경향이 있다. 불안형은 불륜에 취약하며 불안형 사람이 섹스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이유는 파트너의 애정이나 헌신을 잃을 것 같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인간의 성 행동은 뇌 내 물질에 좌우되는 부분이 매우 크다. 물론 이것은 남성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여성도 배란기가 되면 그 시기에 무의식적으로 발정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배란기에 상대가 없는 여성은 하룻밤의 실수를 범하기 쉽고, 남성은 그런 여성에게 매혹당하기 쉽다. 이런 현상은 동물로서의 인간이 피하기 어려운 성질 중 하나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불륜에 분노하고 비난하는가?

 그 분노와 비난의 본질은 무엇인가? 현재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불륜은 ‘비도덕적인 행위’ 일지는 몰라도 ‘범죄’는 아니다. 그런데도 불륜이 발각된 유명인은 사회의 맹렬한 비난을 받는다. 이러한 불륜에 대한 비난의 본질은 윤리관이나 교육이 아니라 ‘이득을 보는 인간’에 대한 사회적 제재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윤리관의 껍질을 한 꺼풀 벗겨 보면, 불륜 남녀를 향한 “남몰래, 남보다 먼저 ‘좋은 경험’을 하는 건 용납할 수 없다” “그런 ‘좋은 경험’을 즐기는 건 당치않다”는 잠재적인 ‘질투’의 감정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배우자가 있는 기혼 남성은 오래 살고 불륜 남성은 일찍 사망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 원인에 대해 연구자들은 ‘복수의 이성을 동시에 사랑하는 것은 육체적· 정신적 부담이 크기 때문’으로 추측하고 있다. 특히 젊은 여성과 불륜을 하면 일찍 죽을 확률이 더 놓아진다. 한 편 불륜을 저지르는 여성의 수명이 짧아진다는 연구는 찾아볼 수 없지만, 비밀리에 관계를 이어가는 부담은 여성에게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불륜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나는 절대 들키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경우가 있으나 매우 위험한 믿음이다. 이것은 위기가 닥쳐오는데도 ‘나만은 괜찮다’고 굳게 믿어버리는 정상화 편향의 한 변주라 할 수 있다.


 불륜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적지 않게 존재하는 이상 앞으로도 불륜은 사라지지 않을 것인데 우리 사회는 불륜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불륜을 박멸한다거나 반대로 결혼 제도를 없애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세상에는 연애, 결혼, 생식과 관련한 여러 가지 평가 기준이나 가치 규범이 있다. 인류는 이를 둘러싼 모순을 해소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구조를 수만 년 동안 만들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륜은 악’이라고 과도하게 공격하거나 ‘부부는 이래야 한다’고 단정적으로 결론을 내릴 필요는 없다. 그런다고 해서 우리가 더 행복해지는 건 아니며, 인간은 극단의 모순도 껴안고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덮으면서 한 마디 덧붙인다면 우리가 운전을 할 때 빨간 신호등 앞에서는 멈추어야 하는 것이다. 만약 그 빨간 신호등에도 멈추지 않고 그대로 내달려버리면 나도 다치고 남도 다칠 수 있다. 아니면 내가 죽거나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게 되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고 해서 내 맘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마구 내달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자동차를 운전할 때처럼 내 인생을 운전해 나갈 때도 가다가 주황색 등이 켜지거든 조심, 또 조심할 것이며 달리다가 빨간색 신호등이 켜지거든 속도를 줄이고 멈추어 서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 즉각 멈추지 않으면 엄청난 사고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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