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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7. Decision To Go Back

: 돌아갈 결심

by 낙타

마음을 먹고 또 먹는다, 그게 무슨 마음이던지 간에. 떠날 마음을 먹던지 머물 마음을 먹던지 어쨌든 마음이란 건 매일 먹고 또 먹어야 하니까. 그러다 내가 왜 이렇게 마음을 먹고 있지 싶어서 가만 생각해 보니, 지난 몇 년간 먹어온 우울증 약을 끊은 지 이제 2주일 정도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니 지금 이 상태와 이 꼬락서니는 내가 자초한 셈이다.


2025년 7월 25일 금요일의 밴쿠버. 오늘의 하늘은 쾌청했고 온도는 어제보다 조금 낮아서 딱 내가 좋아하는 시원함이 느껴졌다. 나는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아침을 먹고 나서 <진돌> 유튜브를 몇 시간 내리 보았고, 애인과 밖에 나가 커피를 마시고 장을 보고 왔으며, 돌아와서는 대인기피증에 지쳐 쓰러져서 또 <진돌> 유튜브를 몇 시간 내리 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애인이 잠들고, 길고 긴 밴쿠버의 여름 해가 진 오후 10시가 된다. 스팀웍스 맥주 한 캔을 텀블러에 털어 넣고, 록산 게이의 《어려운 여자들》을 잠깐 읽다가, 태블릿을 켜놓고 오늘치 글을 쓴다.


왜 이리 우울할까 생각해 보다가 이 우울감이 크게 낯설지 않다는 걸 기억해 낸다. 5월에도 한번 도졌던 병이 7월이 되니 다시 한 번 도진 셈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 중간에 한국을 한 번 갔다 왔는데도 그렇다는 것이다. 그것도 2주일이나 펑펑 놀다 왔는데. 결국 한국을 갔다 온다고 해서 해결될 병이 아니라는 사실은 명확해졌다.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 집이 어디인지 나도 모르겠다는 점은 매번 재밌게 느껴진다. 서울에 돌아가고 싶어 하면서도 서울에 돌아가봤자 내 집이 없다는 아이러니. 그렇다면 문제의 핵심은 장소에 있는 게 아니다. 이건 향수병이 아니라서 내가 서울에 머물지 밴쿠버에 머물지는 중요하지 않다. “마음이 지옥이라면 어딜 가든 지옥인 법이다.”


그래서 약을 끊었다. MSP 신청이 계속 꼬여서 약의 정확한 공급을 기대할 수 없었던 것도 이유 중 하나였지만, 무엇보다 약을 먹어도 내 마음이 똑같이 지옥이라는 점이 더 큰 이유였다. 이럴 거면 약을 먹어서 무얼 하겠어. 그러니 몇 년 만에 본디 얌전한 나로 되돌아가기로 했다. 덜 활발하고 덜 충동적이면서 더 조용하고 더 우울해진 예전의 내 모습이 점점 나오기 시작하니 반가운 마음이다.


약을 끊었기에 우울한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 이건 변명거리가 있는 글이다. “기왕 죽을 거라면 한국보다는 캐나다에 가서 죽는 게 나을 것 같다”는 마음으로 떠나온 밴쿠버에서 나는 서울을 생각하며 조금이라도 살아보려고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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