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한 해 배둘레가 늘어간다. 이것은 지극히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내가 게으르고 자기 관리를 못해서 그런 게 아니다. 나이가 먹을수록 근육이 빠져 기초 대사량은 떨어지고 연륜만큼 맛집 리스트는 늘어가니까.
작년에 잘 입던 바지가 작다. 자연스러운 일이지라도 건강에 유익한 일은 아니니, 속도를 늦추기 위해 약간의 저항이 필요한 시기가 왔다. 다이어트를 해야겠다. 하루 종일 인터넷 창에 ‘다이어트’를 검색하고 요즘 유행한다는 온갖 다이어트를 숙지한다. 저탄고지(탄수화물 섭취를 줄이고 지방 섭취는 늘리는 다이어트), 스위치온(단백질을 섭취하여 근육 손실을 줄이는 다이어트)부터 요즘 핫한 위고비(비만 치료용 주사)까지. 패션만큼이나 다이어트의 유행도 가지각색이구나. 그동안 내가 너무 뒤처져 있었나 보다.. 조사와 준비는 마쳤으니 이제 내일부터 다이어트를 시작하기만 하면 된다. 내. 일. 부. 터.
살을 빼기로 마음을 먹은 지 며칠이 지났는데 몸무게가 더 늘었다. 어제는 식사량을 줄여 어지러워서 일단 먹었고, 오늘은 내일부터 다시 다이어트를 할 것이기 때문에 먹었고, 내일은 또 다이어트에 실패해 자괴감이 들어 먹었다. ‘에라잇! 모르겠다. 나 다이어트 안 해’라는 생각이 들다가 입을 옷이 없어 다시 다이어트를 마음먹고, 또다시 실패하는 의지박약의 내가 싫어지는 나날이 이어졌다.
왜 다이어트를 하는가. 잘 살아보자고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스스로가 이렇게 미워지는데 이게 잘 사는 것인가. 아니 그래도 잘 입던 바지가 너무 작다고. 불편해서 앉지도 서지도 하는데 그럼 이건 잘 사는 거야? 살과의 전쟁은 철학적 논의로 확대되고 활발한 두뇌활동은 허기짐을 불러일으키고 과식과 자괴감이 반복된다.
결국 쇼핑 앱을 켰다. 직면한 문제를 쇼핑으로 해결하는 게 최선의 방법은 아니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쇼핑은 좋든 나쁘든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발악이다. 무궁무진한 쇼핑의 세계를 헤엄치다가 드디어 발견했다. 44 사이즈부터 88 사이즈까지 입을 수 있다는 ‘요술 고무줄 바지’를.
띠리링! 반가운 문자가 왔다.
‘고객님의 상품이 배송 완료되었습니다.’
택배 상자에는 ‘요술 바지’라는 야릇한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황급히 택배상자를 뜯었다. 평범한 검은색 바지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바지에 나의 몸을 욱여넣었다. ‘어머! 이거 진짜 요술바지네?’ 맞춤처럼 배둘레에 딱 알맞게 늘어나는 허리 고무줄. 꽉 끼지도, 헐렁하지도 않은 요술 같은 편안함. 거울에 이리저리 비춰보는데 요술 같지 않은 평범함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이 바지를 입으니 요술처럼 마음이 편해졌다. 작은 옷을 꾸역꾸역 입는 불편함도 살을 빼야 한다는 조급함도 요술처럼 사라졌다. 건강을 생각해서 언젠가 빼긴 빼야지. 그래도 마음 편한 게 먼저 아닌가. 살보다도 스트레스가 더 만병의 근원이다. 요술을 부릴 수 있다면 요술을 부려야지.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