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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걷는다

근데 바로 뛴다

by 다비드

아들과 본격적으로 산책을 시작하면서 나의 큰 관심사는 아들이 언제 걸을까였다. 유모차에 태우거나 아기띠에 매달고 산책을 다니는데 손 잡고 같이 걸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 2020년 초, 소파나 테이블을 잡고 일어서는 아들을 보며 설렘이 가득했다. "이제 곧 걷겠네!" 하는 기대와 함께 핸드폰 카메라 항시 대기. 그동안 누워만 있던 아이가 기어 다니더니 이제 서기까지 하다니. 다음 단계는 당연히 걸음마겠지?

하지만 아들은 생각보다 신중했다. 잡고 서기를 시작한 지 몇 달이 지나도록 혼자 걷지 않고 계속 붙잡고만 다녔다. 마냥 기다리지 못해 집안에서 훈련도 시켰는데, 손으로 잡고 세웠다가 손을 놓고 이리 오라고 시켜서 수십 번 엉덩방아를 찧게 했다.(...) 혹시 우리 아들 걸음마가 늦나 하는 조급한 마음이 들었는데, 육아 선배님의 한 마디로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

아들이 걷기 전의 평화를 누리렴

2020년 4월 어느 날, 회사에 있는데 아내로부터 짧은 영상이 왔다. 아들이 의자를 잡고 섰다가 웃으며 아내에게 세 걸음 걷고 넘어지며 안기는 영상. 내가 본 첫 걸음마 영상이라 잘 잊히지 않는다. 뒤집기, 기어가기, 잡고 서기를 하나씩 해나갈 때마다 신기했지만 걷는 건 좀 더 특별했다. 이제 신발도 신기고 같이 손잡고 걸어봐야지 하는 생각에 신나게 퇴근을 했던 기억이 난다.

CollageMaker_20200409_213935656.jpg 똥 싸는 줄 알았는데 걸었다!

그 이후로는 조금씩 연습을 시켰다. 살짝 떨어져서 아들을 두고 "이리 와~" 하면서 걸어오게 하는 그 뻔한(?) 연습. 하지만 집 안에서는 여전히 기어 다니는 게 빠르다고 생각하는지 걸음마보다는 기어가기를 선호했다. 그래도 조금씩 걸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기특했다.

2020년 5월, 처제 부부가 놀러 와서 다 같이 과천 관문체육공원으로 나들이를 갔다. 넓은 잔디밭을 보니 "여기서 한 번 걸어보라고 해볼까?" 싶었다. 아들을 잔디밭에 세워두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아들 이리 와!" 하고 불렀다. 역시 안 걷는다. 그러다 두 발 자전거 가르치기 방식을 떠올려서 손 잡고 부축하듯이 걷다가 손을 놨다. 그런데 이게 웬걸, 아들이 5미터 정도를 뒤뚱뒤뚱 걸어가는 게 아닌가! 온 가족이 난리가 났다. 아들은 체력 방전인지 더 걷기는 포기. 하지만 그날부터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CollageMaker_20200504_214858062.jpg 첫 야외 걸음마 영상 편집 by 친할아버지

이제 걸을 수 있으니 당연히 같이 손잡고 산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우량아 아들을 아기띠에 메고 다니느라 어깨 아팠는데, 이제는 손잡고 나란히 걸으면서 여유롭게 산책할 수 있겠구나. 하지만 현실은 종종 기대를 배신한다.

아들은 걸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밖에 나가면 걷지 않으려고 했다. 여전히 아기띠나 유모차 선호. 억지로 걸으라고 하면 몇 걸음 걷다가 안아달라는 듯이 팔을 벌렸다.

"아니, 집에서는 그렇게 잘 걸어(서 말썽 부리고..) 다니면서 왜 밖에서는 안 걸으려고 하는 거야?!"

알고 보니 아직 체력이 부족해서 오래 걷기 어려웠고, 밖은 집보다 자극이 많아서 걷는 것보다는 구경하는 데 집중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몇 달 동안은 여전히 아기띠와 유모차가 주력이었다.

신기한 건 평지는 잘 안 걸으려고 하면서 계단은 좋아했다는 점이다. 공원에서, 건물에서 계단만 보면 혼자서 열심히 올라갔다. 그래서 산책할 때마다 계단이 있는 곳을 일부러 찾아갔다. 아들은 계단 오르기에 푹 빠져서 같은 계단을 몇 번씩 오르내리곤 했다. 나는 그 옆에서 "조심해, 천천히" 하면서 따라다니고.

스크린샷 2025-09-18 213500.png 이 아이는 1년 후 귀가 때마다 아파트 옥상까지 올라 다녀서 아빠 체력증진에 기여합니다(...)

2020년 가을이 되어서야 드디어 같이 걷는 산책이 시작되었다. 아들의 체력도 늘고 걷는 것에 자신감이 생기면서 조금씩 더 오래 걸을 수 있게 되었다. 10월에는 아기띠 완전 졸업. 하지만 여전히 걷다가 안아달라는 경우가 많아서 사이드 힙시트는 필수였다. 걷다가 지치면 힙시트에 앉혀서 잠깐 쉬고, 다시 내려서 걷고를 반복했다. 그런데 아들이 걷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이 녀석이 걷지 않고 뛰는 것이다.

"아들! 잠깐만! 거긴 가면 안돼! 손 잡고! 그거 만지면 안 돼!"

아들은 신이 나서 이리저리 뛰어다녔고, 나는 그 뒤를 쫓아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여유롭게 손잡고 걷는 산책을 꿈꿨는데, 현실은 아들을 쫓아다니는 추격전.

20201122_110750.jpg 추격전 후 사이드 힙시트 안착, 이 남자는 아들이 25kg을 넘긴 2023년에도 아들을 메고 다니게 됩니다(...)

걸음마를 시작하면서 우리 육아는 완전히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이제 아들은 가고 싶은 곳에 혼자 갈 수 있고, 만지고 싶은 것을 혼자 만질 수 있게 되었다. 그만큼 위험한 상황도 많아졌다. 계단에서 떨어질 위험, 차도로 갑자기 뛰어나갈 위험, 높은 곳에 올라갈 위험 등등. 눈을 뗄 수 없는 시간이 늘어났다. 하지만 아들이 두 발로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기도 했다. "우리 아들이 이제 진짜 사람 같아졌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어 다니던 아기에서 걸어 다니는 유아로의 변신. 아들아, 이제 진짜 너와 함께 걷는 산책이 시작됐구나. 물론 너는 뛰고 나는 쫓아가지만 말이야.

20201122_100224.jpg 고객 만족을 위해 쉬지 않고 달리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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