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일 정식 입사를 앞두고 갑작스럽게 중국 출장 일정이 잡혔다. 아버지께서 "어차피 중국 사업을 맡을 거니까 미리 한 번 가보자"라고 하신 것. 입사도 하기 전에 출장이라니. 하지만 거부할 이유도 없었고, 솔직히 말하면 좀 신기했다. 아직 회사 직원도 아닌데 사장님 아들 자격으로 해외 출장을 가다니. 뭐 어차피 다음 주면 입사니까 상관없겠지.
준비할 시간도 별로 없었다. 중국에서 뭘 하는지, 어떤 회사들을 만나는지, 우리 제품이 정확히 뭔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일단 여권부터 챙겼다. 아버지는 "가서 보면 안다"는 식이었고, 나 역시 "뭐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출발.
3박 4일의 일정으로 아버지와 몇몇 직원들과 함께 중국으로 향했다. 목적은 잠재 거래처들에게 우리 제품과 기술을 소개하고 협업 방안을 모색하는 것. 2014년, 우연한 기회로 중국의 동종업계 기업 10여 곳이 우리 회사를 방문했고 그들 중에 우리와 협업에 관심 있던 기업에 방문한 것이다. 우리는 토목 자재를 만드는 회사고 중국 기업들보다 우수한 기술을 가지고 있으니, 중국의 급속한 도시화와 인프라 건설 붐을 타고 진출해 보자는 것이 아버지의 구상.
"앞선 기술로 중국 시장에 진출한다."
2010년대에 모두가 하던 일이었다. 우리도 이 거대한 시장을 공략해서 수출을 확대하고자 중국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래서 출장지는 어디인가 하니, 칭하이성 시닝시. 오잉 그게 어디지. 아는 중국 도시라고는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같은 대도시랑 전 회사에서 출장 갔던 옌타이 정도였으니.(...) 인터넷으로 찾아봤더니 중국의 서쪽 끝자락, 삼국지 시대 서량이라고 불렸던 곳이다. 마초가 있던 그 서량? 코에이 삼국지 게임에서 서량은 산악지형이었는데, 찾아보니 역시 해발 2000미터 이상의 고원도시라고 한다. 고산병 주의사항까지 나와 있어서 약간의 걱정과 함께 시닝으로 향했다. 이런 멀고 외진 도시에 당연히 직항은 없고, 상하이에서 경유를 하는데 환승 시간도 꽤 긴 여정이라 이동에만 하루가 꼬박. 시닝 공항에 도착하니 확실히 공기가 달랐다. 좀 더 맑고 차가운 느낌. 고산병이 걱정됐지만 다행히 일행 모두 별문제 없이 적응했다.
이동 시간이 길어서 정작 시닝에서의 일정은 빡빡했다. 우리를 초대한 회사의 사무실에 가서 미팅하고 공장 견학하고 저녁에는 만찬. 미팅과 공장 견학 모두 중국 회사 대표와 아버지가 주로 대화하며 진행했다. 아버지도 중국어는 못 하시기에 우리 해외사업팀 중국 담당 직원이 통역.
나는? 중국어도 전혀 못하고 배경 지식도 별로 없는 상태라 특별한 역할이 없었다. 그냥 옆에 앉아서 듣고 메모만 했다. 가끔 아버지가 "우리 아들인데, 앞으로 중국 사업을 담당할 예정입니다"라고 소개해주시면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혹시 영어를 사용하면 조금이나마 대화해볼까 싶었는데 상대방이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고 할 생각도 없어 보였다. 그렇게 딱히 뭔가 하진 못하고 보고 따라다니기만 하며 해가 저물었다.
그런데 진짜 내 역할을 찾은 건 저녁 만찬이었다.
"간빼이!"
술잔을 들고 건배를 외치는 중국 사람들. 아버지도 자연스럽게 따라 하시고, 나도 따라 했다. 그런데 이게 시작. 중국 사람들의 술 권하는 문화가 생각보다 강했다. 한 명씩 돌아가며 우리에게 건배를 하고, 당연하다는 듯이 잔을 비우는 분위기. 아버지는 이미 익숙하신 듯 자연스럽게 응대하셨지만, 나이가 있으시다 보니 한계가 있었다. 무엇보다 우리는 4명인데 저쪽은 10명이 넘으니 자연스럽게 우리가 술을 더 마실 수밖에 없는 구조. 그래서 내가 나섰다. 술 좋아하고 잘 마시고, 무엇보다 지금 내가 할 게 이것뿐이라(...).
호의적인 분위기에서 일정을 마무리하면서 중국 업체 대표와 아버지가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잘해봅시다. 자주 만나요."
"네, 제 아들이 자주 올 겁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 정말로 내가 이 일을 하게 되는구나
그 순간 실감이 났다. 2014년 11월 출장 때와 마찬가지로 뭣도 모르겠지만 신기하고 재밌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구체적이었다. 이런 사람들과 이런 식으로 일하게 되는구나. 사실 이번 출장에서 협업에 대한 구체적인 결론이 나지는 않았다. 서로의 계획을 공유하고 호감을 주고받는 정도. 중국에서 말하는 꽌시라는 걸 쌓는 건가 싶었다.
돌아오는 길 비행기에서 아버지가 물으셨다.
"어때, 재미있겠어?"
"네,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그때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중국 출장을 다니게 될지, 그 과정에서 어떤 고생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전혀 몰랐지만. 정말 몰라서 그랬다.
출장을 마치고 돌아와서 며칠 쉬지도 못하고 바로 7월 1일, 첫 출근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