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은 있다 (현실에) 쳐맞기 전까지는
이제 진짜 전쟁이 시작됐구나.
아내가 복직하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20개월 동안 아내 혼자 육아를 담당하던 시절이 그리워질 정도로, 맞벌이 육아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우선 기본 방침부터 정했다. 각자 직장의 장점을 살려서 역할을 분담하기로.
등하원: 아내 담당 (차로 15분 거리의 압도적 우위)
비상상황: 내가 담당 (조퇴, 재택근무 등으로 대응)
이론적으로는 완벽한 계획이었다. 아내는 출퇴근이 편하니 등하원을 맡고, 나는 업무 융통성이 좀 더 있으니 아들이 아프거나 할 때 대응하기로. 서로의 장점을 살린 합리적 분업이라고 생각했다.
아내의 하루 일과:
8시 30분: 아들과 함께 집에서 출발
8시 55분: 어린이집 등원 후 출근
18시: 퇴근 후 아들 픽업
18시 30분: 집 도착
다행히 직장 어린이집을 보내는 다른 동료들도 대부분 같은 시간에 등하원을 해서 마음의 부담이 적었다고 한다. "나만 일찍 가는 게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이랄까. 아내가 처음에는 아들과 헤어질 때마다 마음이 아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익숙해졌다. 아들도 어린이집 생활에 적응하면서 "엄마 가지 마!" 하던 것이 "엄마 빨리 와!" 정도로 바뀌었고.
나의 하루 일과:
6시 40분: 집에서 출발
8시: 출근
17시: 퇴근
18시 30분: 집 도착
아침을 처자식과 보내지 못하는 게 아쉽긴 했지만, 저녁에는 같이 보낼 수 있어서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는.
아내가 복직하면서 가장 큰 변화는 집안일을 할 여유가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휴직 중에는 아들 낮잠 시간을 활용해서 아내가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고, 반찬도 만들고 했는데, 이제는 그런 시간이 전혀 없었다.
아침은 각자 출근과 등원으로 정신없고, 퇴근 후에는 저녁 식사 준비하고 아들 돌보고 하다 보면 하루가 끝났다. 빨래, 반찬 만들기, 청소 같은 큰 집안일은 모두 주말로 미뤄졌다. "주말에 뭐 할까?" 하던 여유로운 고민은 사라지고, "주말에 뭘 먼저 해야 하나?" 하는 계획 세우기가 시작되었다. 물론 내 담당인 아들과의 산책도 빠질 수 없었다. 이전에는 아내의 쉬는 시간이었지만 이젠 밀린 집안일 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2021년 4월, 회사에서 큰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 안양 대신 분당으로 출퇴근해야 하는 프로젝트였다.
새로운 출퇴근 스케줄:
5시 10분: 집에서 출발 (더 일찍!)
6시 30분: 출근
18시: 퇴근 (하면 다행)
19시 30분: 집 도착 (더 늦게!)
아들이 자고 있는 새벽에 나가고, 저녁에는 아들이 거의 잠들 시간에 들어오게 되었다. 평일에 아들과 보내는 시간이 거의 사라졌다. 6월부터는 격주로 주말 근무까지 추가되었다. 그나마 있던 주말 시간마저 반토막.
"여보, 미안해. 이번 주말도 근무야."
"...알겠어."
아내의 대답이 점점 짧아지는 게 느껴졌다.
그런데 진짜 위기는 따로 있었다. 아들이 어린이집에 적응해 가던 4월, 연이어 감기에 걸린 것이다. 아, 어린이집 적응기에는 감기를 달고 산다더니. 슬픈 예감은 왜 그냥 넘어가지 않는가.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다. "아이가 열이 나는데 데려가셔야겠어요." 엄중한 코로나 시대, 아이 체온이 37.5도가 넘으면 무조건 귀가시키고 열이 떨어지기 전에는 등원을 할 수 없는 시대였다. 코로나 종식된 지금 다시 생각하면 아찔하고 아득하다. 이때부터 우리의 비상 계획이 가동되었다. 내가 조퇴하거나 재택근무를 해서 아들을 돌보기로 한 계획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프로젝트 때문에 조퇴하기도 어렵고, 재택근무를 해도 아픈 아이를 돌보면서 일에 집중하기는 불가능했다.
"여보, 오늘은 내가 못 빠져. 중요한 일정이 있어서..."
"나도 오늘 미팅 있는데..."
서로 미안해하면서도 누군가는 아들을 돌봐야 하는 상황. 결국 대부분 아내가 연차를 쓰거나 반차를 내서 해결했다. 직장어린이집 보내는 워킹맘을 아내 회사에서 많이 배려해 줬다.
계획할 때는 완벽해 보였던 우리의 분업 체계가 현실에서는 여러 구멍이 드러났다.
계획: 아내가 등하원, 나는 비상상황 대응, 서로의 장점을 살린 합리적 분업
현실: 아내가 등하원 + 비상상황 대응 + 집안일 대부분, 아내에게 과부하 집중
특히 내가 프로젝트로 바빠지면서 육아와 집안일 참여도가 급격히 떨어진 것이 문제였다. 아내 혼자서 감당해야 할 몫이 너무 많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빡빡한 일상을 버텨낼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
첫째, 아들이 어린이집을 좋아했다. 처음에는 울면서 가던 아이가 이제는 어린이집 가는 복도에서 달려가기 시작했다.
둘째, 아내가 일하는 것을 원했다. 20개월 만의 복직이었지만 금세 적응했고, 일하는 재미를 다시 찾았다.
셋째, 경제적 여유가 생겼다. 맞벌이의 가장 현실적인 장점이랄까.
전쟁 같은 코로나 시대 맞벌이 육아, 완벽한 분업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 더 많이 양보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아내가 힘들 때는 내가 어떻게든 도와주고, 내가 바쁠 때는 아내가 더 많이 감당해 주고. 그리고 무엇보다, 주말만큼은 온전히 가족 시간으로 보내려고 노력했다. 비록 격주로 주말 근무가 있었지만, 그 외의 주말은 집안일도 적당히 하고 아들과 놀아주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아내의 체력과 휴가는 한계가 있었고 아무리 고민해 봐도 각이 안 나오는 시기가 금방 찾아왔다. 아내와 나 둘이서는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비상대책위원회가 소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