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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비상대책위원회를 소집합니다

소집 기간 12개월

by 다비드
버틸 수가 없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2021년 5월, 우리 부부는 백기를 들었다. 맞벌이 육아 2개월도 안 된 시점이었다. 분당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내가 집에서 사라진 지 한 달, 아들의 감기 러시가 시작된 지 한 달. 더 이상 둘이서만으로는 버틸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분당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집은 정말 잠만 자고 오는 곳이 되었다. 새벽 5시 10분에 나가서 밤 7시 30분에 들어오니, 평일에는 육아에 거의 참여할 수 없었다. 간신히 아들 자기 전에 목욕만 시켜주는 게 전부였다.

"아빠!" 하고 아들이 반가워하며 달려오면 "샤워하자!" 하고 같이 욕실로. 아들과 보내는 시간은 목욕 30분과 자기 전에 같이 뒹굴거리는 30분 남짓이 전부였다. 퇴근이 늦기라도 하면 이미 아내와 아들은 자고 있고.

게다가 격주로 주말에도 같은 일정으로 근무를 해야 했다. 토요일 새벽 5시 10분에 나가서 저녁 7시 30분에 들어오는 주말 근무. 아내는 하루 종일 혼자서 아들을 돌봐야 했다.

코로나 시대라 갈 수 있는 시설도 마땅치 않고, 집에서 육아를 해야 하는 상황. 아내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여보, 나 진짜 힘들어."

그래도 간신히 버텨내고 있었는데, 4월부터 아들이 감기에 계속 걸리기 시작했다. 어린이집 적응기의 필수 코스라더니 정말 매주 감기였다.

"아이가 열이 나는데 데려가셔야겠어요."

어린이집에서 오는 이 전화가 공포였다. 코로나 시대의 엄격한 기준 때문에 37.5도만 넘어도 무조건 귀가, 열이 완전히 떨어지기 전까지는 등원 불가.

재택근무를 하거나 휴가를 쓰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둘이 번갈아 휴가를 사용해도 2개월도 안 되어 연차의 절반 이상을 소진했다.

"이러다 연차 다 떨어지겠어."

"그럼 어떡해? 무급휴가 써야 하나?"

거의 매주 발생하는 비상상황. 우리에게는 아들을 챙겨줄 지원군이 절실히 필요했다.

20210323_182807.jpg 감기 걸린 아들과 함께하는 재택근무, 최대주주님

처음에는 육아도우미를 고려했다. 하지만 곧 포기했다.

좋은 사람을 찾고 면접 보는 것부터가 아내에게는 큰 부담

어르신을 부리는 것에 대한 심리적 부담

2살 아들을 남의 손에 맡기는 것에 대한 걱정

"아직 너무 어린것 같아. 말도 제대로 못 하는데..."

아내의 걱정이 이해되었다. 아들이 아프거나 힘들 때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나이였으니까.

결국 마지막이자 유일한 카드를 꺼내 들었다. 양가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것. 그렇게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게 되었고 그 결과, 양가 부모님이 한 달에 1주씩 서울에 와서 지내기로 했다.

월간 로테이션 시스템:

1주 차: 장인어른, 장모님 파견
2주 차: 셋이서 엉망진창 버티기
3주 차: 엄마 파견
4주 차: 셋이서 엉망진창 버티기

양가 모두 한반도 남쪽의 먼 곳(전남 광양, 경남 창원)이었지만, 첫 손주 키우는 아들/딸을 흔쾌히 도와주시기로 했다.

"그래, 우리가 가야지. 얼마나 힘들겠어."

부모님들의 한 마디에 눈물이 날 뻔했다. 아내는 진짜로 울었다.

부모님이 계시는 1주일은 정말 천국이었다.

부모님이 계신 주:

직접 운전해서 아내 출퇴근과 아들 등하원 담당

온갖 집안일 완벽 처리

다음 1주일간 먹을 반찬까지 준비

너네는 회사 일만 해. 나머지는 우리가 다 할게.

부모님들 덕분에 아내와 내가 체력을 아끼고 마음 편히 회사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아내는 부모님이 계신 주에는 정말 여유로워 보였다.

20210613_192911.jpg 3대가 다 같이 동네 뒷산에 올라 낙조 구경

아내와 나 둘 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부모님과 이렇게 오랜 시간 같이 지내는 게 처음이었다. 가족 3대가 같이 지내면서 추억을 많이 쌓을 수 있었다. 아들은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시간을 정말 좋아했다. 평소에는 엄마, 아빠만 보던 아이가 더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랄 수 있게 되었다. 다행히 부모님들도 유일한 손주를 가까이서 자주 볼 수 있는 게 좋으신 눈치. 그리고 나도 부모님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연락드리지 못했는데, 이렇게 직접 도움을 받으니 감사한 마음이 더 커졌다.

물론 부모님이 안 계신 2주 차, 4주 차는 여전히 엉망진창이었다.

"이번 주는 우리끼리 버텨야 해."

"그래, 할 수 있어. 1주일만 버티면 돼."

하지만 이제는 희망이 있었다. 1주일만 버티면 지원군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비상대책위원회의 결정으로 우리 가족은 새로운 균형을 찾았다.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버틸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부모님께는 정말 죄송하고 감사했다. 본인들의 노후를 포기하고 서울까지 와서 손주를 돌봐주시다니. 본인들도 그 시간을 즐기시는 것 같아 그나마 마음이 편했다.

그렇게 우리는 코로나가 창궐하던 2021년을 버텨냈다. 비상대책위원회의 성공적인 작전 수행이었다. 하지만 비대위라는 이름과는 무색하게도 이 체제는 12개월 동안 계속되었다. 이게 비대위가 맞나(...).

하지만 이 시스템도 영원할 수는 없었다. 부모님들도 체력의 한계가 있으셨고, 우리도 언젠가는 독립적으로 육아를 해야 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엄마가 갑작스럽게 비대위에서 하차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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