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어머니 해방이 머지않았습니다
엄마의 갑작스러운 비대위 하차 이후, 우리는 새로운 체제로 전환해야 했다. 이름하여 "비대위의 비대위". 장인장모님이 1주 도와주시고, 3주를 셋이서 버티는 시스템이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다. 1주 vs 3주. 숫자로만 봐도 부담이 3배였으니까.
"3주를 우리끼리 버틸 수 있을까?"
"해봐야 알겠지. 어떻게든 되겠지."
그렇게 반신반의하며 시작한 비대위의 비대위 체제였다.
다행히 하늘이 도왔다. 분당 프로젝트가 겨울에 일이 줄어드는 일정이었던 것이다. 가장 큰 변화는 주말 출근이 없어진 것. 격주로 토요일을 회사에서 보내던 지옥에서 해방되었다.
"여보, 당분간 주말에 회사 안 가도 돼!"
주말이 온전히 가족 시간이 되니 숨통이 조금 트였다. 그리고 예전처럼 주말 오전에 아들과 둘이 외출하는 루틴을 재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겨울이었다는 것. 추운 날씨에 공원 산책은 한계가 있었다. 아들은 추위를 몰랐지만, 내가 밖에서 오래 있기 힘들었다(...). 그래서 새로운 외출 코스를 개발해야 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지하철 여행.
아들이 뭔가 타면서 바깥 구경하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지하철은 추운 겨울 야외보다 따뜻하고, 시간도 잘 가는 좋은 코스. 특히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는 경의중앙선을 종종 탔다. 옥수에서 출발해서 청량리 방향으로 가면 한강이 잘 보여서 좋았다. 아들이랑 창밖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아들은 지하철에서 창밖을 보며 신나게 떠들고, 나도 아들과 함께 서울 구경을 하는 기분이 좋았다.
지하철 여행으로 주말은 해결했지만, 진짜 문제는 평일. 3주간 셋이서 버티기는 확실히 힘들었다. 특히 등하원을 전담하는 아내가 가장 힘들어했다. 아침에 아들 챙겨서 어린이집 데려다주고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해서 아들 데려오고. 하루 종일 쉴 틈이 없었다.
평일 역할 분담:
아내: 등하원 전담
나: 퇴근 후 집안일 전담
퇴근하고 집에 오면 바로 집안일 모드로 전환했다. 설거지, 집안 정리 등등. 아내는 아들과 놀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주말 역할 분담:
오전: 내가 아들과 외출 (아내 휴식)
오후: 가족 시간 + 집안일 정리
이렇게 역할 분담을 해도 3주를 버티기 위해서는 역부족. 결국 외부 도움이 필수였다.
식사 해결책:
장모님이 해주신 반찬 (1주차에 다음 주까지 준비해 주심)
배달음식 활용 (넉넉히 시켜서 두 끼 해결)
간편식과 냉동식품 비축
아들 반찬은 배달 서비스 구독. 일주일에 한 번씩 아이 전용 반찬이 배달되니 편했다. 물론 가격은 좀 비쌌지만,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그리고 주말에 4시간 청소 서비스를 이용했다. 청소, 빨래, 분리수거까지 한 번에 해결. 이것도 비용이 들었지만, 주말을 온전히 가족 시간으로 보낼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돈으로 살 수 있는 시간은 사자.
이게 우리의 새로운 원칙이었다.
그렇게 3주를 버티고 나면 장인장모님이 오시는 1주가 찾아왔다. 이 1주는 정말 확실한 힐링. 특히 장인어른의 육아 기여도가 압도적이었다. 밤잠 재우는 것 외에는 모든 육아 활동을 전담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네 부모님들의 육아 기여도 비교:
장인어른: 100점 (최고의 육아 도우미)
엄마: 70점 (애정은 넘치지만 체력 한계)
장모님: 50점 (장인어른의 열정에 뒤쳐짐)
아버지: 15점 (그냥 할아버지...)
손주에 대한 애정 표현도 장인어른이 압도적 1위였다. 아들과 놀아주고, 책 읽어주고, 산책 나가고. 아들도 외할아버지를 가장 좋아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장인어른이 오시면 아들의 텐션이 확 올라갔다. 나도 질투가 날 정도로(...).
3주간 버티기 체제에 적응하면서 우리는 조금씩 성장했다. 처음에는 "3주를 어떻게 버티지?" 했는데, 몇 번 반복하니 나름의 리듬이 생겼다. 아내도 처음에는 힘들어했지만, 점점 요령이 생겼다. 아들도 어린이집 생활에 완전히 적응해서 등하원이 수월해졌고. 그렇게 2022년 봄이 되어 다시 분당 프로젝트에 주말 출근이 생겨도 어느 정도 대응이 가능해졌다. 3주 버티기 체제가 안정화된 덕분이었다.
그렇게 비대위의 비대위 체제를 몇 개월 운영하면서 우리는 깨달았다. 이제 정말로 홀로서기를 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물론 장인장모님이 오시는 1주는 여전히 큰 도움이었다. 하지만 3주를 버틸 수 있다면, 4주도 가능하지 않을까?
"이제 비대위 체제를 종료하고 장인장모님께도 자유를 돌려드릴 때가 된 것 같아."
"그래, 이제 우리가 할 수 있을 것 같아."
장인장모님께도 매월 서울 오시는 게 부담이 되실 것 같았다. 1년이 넘도록 우리를 도와주셨으니, 이제는 당신들만의 시간을 가지셔야 할 때였다. 그렇게 우리는 비대위 체제 종료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진짜 홀로서기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비대위의 비대위 체제는 우리에게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3주를 버틸 수 있다는 자신감, 외부 서비스를 적극 활용하는 노하우, 그리고 무엇보다 가족 셋이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이제 정말 독립할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