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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남이 Apr 06. 2020

오피스텔이란 무엇인가

반듯한 작은 네모들을 보며

그래도 봄인데 봄 사진 하나는 남겨야지. 바람은 아직 차가웠지만 따뜻한 봄볕에 의지해 공원을 잠시 걸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허허벌판이었던 동네가 이제 주상복합 오피스텔이 즐비한 아주 세련된 도시가 되었다. 우연히 올려다본 오피스텔의 풍경에 기분이 참 묘하다. 집집 마다라고 부르기엔 어딘가 어색하고 방방마다 라고 부르기엔 칸마다 모두 다른 인생이 있으니 오피스텔을 뭐라고 말해야 좋을까.


동생이 살고 있는 오피스텔은 커튼을 쳐 두어야 한다. 집을 구할 때 부동산 아저씨는 말했다."이 집은 해가 잘 들어오고 전망이 좋은 것이 큰 장점이에요." 조그만 방구석에 이런 호사라니 생각했지만 정작 살면서 이 호사는 누려볼 길이 없다. ‘ㄷ’ 자 형태의 건물 모양은 서로의 집이 아주 잘 들여다보이는 구조였다. 공원에서 올려다본 오피스텔은 봄볕 덕분인지 커튼이나 블라인드가 드문드문 걷혀 있었다. 나름 공원 뷰를 가진 오피스텔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동생의 집에 갈 때마다 나는 오피스텔의 복도가 너무 적막하다고 느꼈다. 긴긴 복도에 지그재그로 현관문이 촘촘하게 붙어있다. 내가 이 복도에서 어떤 일을 당해도 아무도 나와 보지 않을 것 같다. 문을 열어보기 전까지는 내 이웃이 어떤 사람인지 도쪽에선 상할 여지가 전혀 없다. 그저 집마다 놓여진 택배상자가 조금 다를 뿐. 복도를 지날 때면 늘 살짝 긴장이 되곤 했다.


그런데 반대편에서 보는 오피스텔현관이 있는 복도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절대적 개인의 공간 같았던 오피스텔이 한눈에 다 들어오는 풍경이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을 너무 신경쓴 나머지 뒤는 미처 가리지 못한 느낌이랄까. 아주 투명한 큰 유리 넘어 집집마다 조금씩 다른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네모 반듯한 공간에 빨래 건조대가 먼저 보이기도 하고, 침대나 책상이 먼저 눈에 띄기도 했다. 누군가는 스트라이프 블라인드를 걸어 두었고  누군가는 커튼을 양갈래 머리처럼 예쁘게 묶어 두었다. 네모 안에 각기 다른 세계가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연극 무대 같기도 하고 방마다 갑자기 사람들이 튀어나오면서 멋진 퍼포먼스가 시작될 것 같기도 했다. 엉뚱한 상상을 하며 한참을 구경하다 그 모을 기억하려 드폰을 꺼냈다.


네모 반듯한 오피스텔. 사람들이 한 명씩 나와 자기소개를 할 것만 같다.



나도 오피스텔에 살고 싶었다. 고작 10평짜리 방 한 조각 일지라도 그런 주상복합 오피스텔에 살고 싶었다. 오피스텔 주변에 쇼핑몰, 영화관, 마트가 있고 헬스클럽과 배달족이 즐비한 그런 곳. 집 안에 모든 시설이 다 갖춰져 있어 가구 따위를 새로 사지 않아도 되는 붙박이 있는 그런 곳. 작은 내 차 하나 제든 받아줄 수 있는 속 깊은 지하 주차장이 있는 그런 곳. 에게는 원룸계의 프리미엄 아파트 같은 곳이었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나는 20살부터 서울에 올라와 수 없이 이사를 다녔지만 한 번도 그런 곳에서 살아보지 못했다. 나의 첫 방구석은 학교 앞 오래된 주택의 반지하 윗집이었다. 빛이 조금 더 오래 들어오는 것 빼고는 반지하와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은 집이었다.  후 이사한 집들도 모두 20년이 넘은 주택이거나 소형 아파트였다. 그 나름 낭만과 만족이 있었지만 나는 늘 원룸계의 프리미엄인 신축 오피스텔을 로망 해왔다.


나의 오랜 꿈은 동생이 대신 이뤘다. 지하철 3분 거리, 회사와의 거리 30분 이내. 복합 문화시설과 붙박이 가구가 갖춰진 그 원룸이다. (나는 부모님이 좀 더 큰 네모 집에 들어가 작은 네모 한 개를 얻어 살고 있다.)


아직도 로망이냐? 동생의 집을 드나들면서 나는 오피스텔이  동네 편의점 같다 생각했다.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딱 한 두 개씩만 선별해 갖다 놓은 곳. 편리하긴 하지만 만족스럽진 않은 곳. 필요 이상 좀 비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살 만은 한 곳.


동생에게 너 혼자 오피스텔 사니까 좋으냐고 샘을 부렸는데 이 좋은 봄날 오피스텔에서 코로나 시대를 견뎌내는 동생이 좀 안되어 보였다. 어쩐지 자꾸 공원을 걷자고 하더라니. 이제는 좀 다른 로망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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