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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J Jun 01. 2020

설거지의 존재론

발바닥에도 형이상학이 있고 면도칼에도 철학이 있다는데 매일 하는 설거지라고 그냥 허드렛일에 불과하겠는가. 그것으로 세계의 총체성을 해명할 수는 없겠으나, 허접하지만 설거지도 나름의 철학이 있다.

설거지를 하는 동안에는 최소한 목숨은 보전할 수 있다. *남편이 설거지를 하는 동안 등 뒤에서 총을 쏘는 아내는 없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내가 괴성을 지르며 흥분할 때, 말대꾸를 하거나 화가 난 이유를 묻는 대신 조용히 앞치마를 두르라. 흐르는 물에 손을 담그고 설거지에 집중하라. 뒤를 돌아볼 필요는 없다. 신은 하늘에 있고 아내는 등 뒤에 있다.

세계 최고 부자 빌 게이츠와 제프 베조스는 저녁 식사를 끝내면 설거지를 한다. 설거지는 그들의 루틴이다. 루틴은 가장 중요한 일과를 의미한다. 그렇지 않다면 반복적으로 그것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 저녁 식사가 채우는 것이라면 설거지는 비우는 것. 빌 게이츠에 의하면 뇌가 즐겁게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다. 비우지 않으면 채우지 못한다. 현자들이 말하기를 채우고 비우고를 반복하는 것이 삶이다. 그 외의 것은 사족이거나, 몰라도 사는데 큰 지장이 없는 것들이다.

믿지 않겠지만 설거지는 정의에도 기여한다. 정의란 무엇인가? 구석기시대의 정의(定義) 지만, 자신의 위치에서 가능한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이다. 성서의 한 구절을 조금 비틀면 설거지하지 않는 자 먹을 자격조차 없다. 세상의 정의란 이처럼 소박하다. 누군가가 밥을 지으면 같이 밥을 먹은 다른 누군가는 설거지를 하는 것이다.

밥을 짓는데 1시간, 그것을 먹는데 30분, 설거지하는 데 1시간. 도합 2시간 30분이 식사시간이다. 날름 받아먹기만 하면서 음식의 형상과 질료에 대해 세세한 논평까지 한다면 그 혀는 이미 세상의 정의와 거리가 멀다. ‘벨 에포크'가 아름다운 시대라고? 유럽인들이 마호가니 식탁 위에서 미식을 즐길 때 먹지도 않은 음식의 잔반을 치우고 남아있는 접시를 닦은 사람들은 비유럽인들이었다. 누가 정의를 아름다운 것이라고 했는가. '아름다운 시대'는 아름답지 않았다.

멀리까지 갈 것도 없다. 최근의 몇몇 연구 자료는 설거지가 현재의 행복감을 매우 높여주며, 자연스러운 명상체험의 기회를 준다고 언급한다. 그것을 통해 스트레스를 줄이고 간혹 창조적 영감까지 떠올릴 수 있다는 건 덤이다.

세제와 물이 만나서 만들어지는 거품처럼 세계가 우연적이며 제멋대로일 때가 있다. 설거지를 하라. 주방은 플라톤이 구축했다는 어떤 세계처럼 차갑고 정적이며 투명하지 않은가. 살다 보면 간혹 자신에게 용서가 필요한 시점이 있다. 자괴감과 자책감에 빠지면 한이 없다. 설거지를 하라. 나는 근사하고 쓸모 있고 이타적인 사람일 수 있다. 누군가 내게 왜 설거지를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고 묻는다면, 준비된 답변이 있다.

‘아! 간단합니다. 당신과 나는 존재론적으로 다른 사람이거든요’

*No woman has ever shot a man while he was washing the dishes.

#설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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