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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쟈 Jul 12. 2024

사랑이 지나간 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들

영화[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리뷰



개봉: 2018년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

출연: 티모시 샬라메(엘리오), 아미 해머(올리버), 마이클 스털버그(펄먼), 아미라 카서(아넬라)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소개 스틸컷




아름다운 햇살이 반짝이는 이탈리아의 어느 마을. 

일상에서 벗어나 특별한 순간을 보내는 햇살보다 더 반짝이는 젊음이 있다. 



세상에서 감출 수 없는 두 가지가 ‘기침’과 ‘사랑’이라고 하던가, 올리버의 사소한 행동에도 안절부절 못하는 엘리오의 모습은 막 사랑에 빠져드는 어린 소년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자정에 만나자는 올리버의 쪽지를 받은 뒤로, 엘리오의 하루는 ‘자정’에 고정되어 있다. 한낮에 여자친구와 만나 데이트를 하면서도 그의 시선은 손목시계를 떠날 줄 모른다. 집요하게 시계를 보여주는 카메라는 우리에게도 그 ‘자정’이라는 특별한 순간을 상기시킨다. 



너무 늦게 서로 마음을 표현하는 바람에 시간을 낭비했다는 엘리오의 말에, 나는 처음부터 호감을 표현했다고 대답하는 올리버. 

올리버가 처음 도착한 순간부터, 그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는 엘리오와 달리 올리버의 애정 표현은 조금 더 우회적이었기에, 영화를 보는 나도 올리버의 사랑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궁금해졌다. 



엘리오가 올리버에게 처음 자신의 방을 소개할 때 하는 말을 보면 , 어쩌면 모든 일은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던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My room is now your room.
 I’ll be next door. We have to share the bathroom. 
It’s my only way out.


엘리오는 자신만의 공간을 내어주고 올리버가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했으며, 항상 옆에 있을 것이며, 그가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올리버를 통해서이다.  



아직은 어리고 미숙한 엘리오와 달리 올리버는 늘 자신만만하다. 

낯선 공간에서도 늘 그곳에 있어 왔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섞여 들 수 있는 능력을 지녔으며, 스스로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것을 늘 조심스럽게 감춰왔던 엘리오와 달리 올리버는 당당하게 드러내고, 그런 올리버의 모습에서 엘리오는 눈을 뗄 수가 없는 것 같다.  



I know myself too well. If I have a second, I’m just gonna have a third, and then a fourth.



영화 속에서 몇 가지 눈에 띄는 연출이 있었다. 

어디론가 외출해서 돌아오지 않는 올리버를 기다리는 엘리오의 얼굴 위로 무엇인지 명확히 알 수 없는 영상이 겹쳐진다. 푸른색이 일렁이는 영상은 마치 엘리오가 물속에 잠긴 것처럼 보이게 한다. 이런 연출은 앞서 우리가 보았던 바닷속에서 건져 올린 조각상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물속에 잠겨 있다가 떠올라 세상에 얼굴을 드러낸 조각상처럼 자신의 세계에 잠겨 있던 엘리오가 마침내 세상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그 ‘자정’의 밀회 직전, 피아노 연주를 마친 엘리오가 방으로 돌아와 소변을 보는 순간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 “Do I know you?” 그것은 누구의 목소리였을까?

올리버가 엘레오에게 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직은 정체성이 완성되지 않은 엘리오가 스스로에게 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둘만의 여행의 마지막날, 먼저 일어난 올리버가 잠든 엘리오의 얼굴을 바라보고, 그들의 즐거웠던 여행의 순간들이  붉은색으로 반전된 영상으로 화면에 나타난다. 그 영상은 잠든 엘리오의 꿈속을 잠시 엿본 것으로 볼 수도 있으며, 어쩌면 이제 뜨거웠던 여름을 끝낼 수밖에 없는 올리버의 복잡한 심경을 나타낸 것일 수도 있다. 순진한 얼굴로 잠든 엘리오를 바라보는 올리버의 씁쓸하고도 슬픈 표정을 보면 후자에 더 가깝지 않을까?

그들의 행복했던 순간은 외부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기차의 기적소리에 깨어지고, 그 소리에 놀란 듯 뒤를 돌아보는 올리버의 모습은 환상의 순간에서 현실로 불러 올려지는 것만 같다.  달콤한 꿈을 꾸던 순간에 울리는 날카로운 알람시계 소리처럼. 





현실로 되돌아간 올리버와 달리 그 꿈같은 세계에 조금 더 머무르고 싶은 엘리오는 다시 어린아이가 되어 어머니에게 어리광을 부려본다. 

뜨겁고 강렬했던 여름이 끝나가고, 엘리오가 겪었던 경험에 대해 조심스럽게 조언을 하는 아버지. 그는 사랑이 끝난 후에 우리가 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힘든 순간에 충분히 힘들어하고,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을-그것이 슬픔과 아픔뿐일지라도, 모든 것을 제대로 겪어내야 한다는 현명한 조언은 지금의 나에게도 유효하다. 

이런 대화가 있었기에, 엔딩씬에서 벽난로 앞에 앉아 엘리오가 느끼는 모든 감정들을 조금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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