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크라쿠프 02
크라쿠프 버스 터미널에서 오시비엥침Oświęcim행 버스를 타면 아우슈비츠 제1수용소(아우슈비츠 뮤지엄) 바로 앞에 내려준다. 폴란드의 평범한 도시였던 오시비엥침은 독일 나치가 폴란드를 점령하며 이곳에 수용소를 세운 뒤 독일어식인 아우슈비츠Auschwitz로 바꿔 불렸다. 기록된 역사로만 이곳에서 학살된 인원이 110만 명이다. 무서운 건 불과 몇십 년 전에 일어난 아주 가까운 역사라는 것이다. 인간에겐 이런 학살을 일으킬 수 있는 불씨가 있다. 사고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 그리고 잠깐, 내가 나고 자란 남쪽의 도시를 생각했다.
너무 어마어마한 역사지만 영화나 소설 등으로 익히 봐 왔기 때문에 ‘그’ 장소에 가 봤다는 자체의 의의로 생각했는데 웬걸. 무덤처럼 쌓은 여행 가방, 수십만 점의 신발, 몇십 킬로그램의 안경, 수십 동의 수용실, 좁은 가스실, 학살이 숫자와 무게, 공간으로 다가오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특히 의수, 의족, 목발이 수북이 쌓인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숨이 막힐 거 같았는데 그건 아마도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난 그들이 어떤 과정을 거쳤을지 피부로 와 닿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아, 이 땅은 묘비 없는 공동묘지구나.
제1, 2 수용소를 모두 돌아보는 데에 3시간 반이 걸린다고 안내 책자에 쓰여 있었는데 그건 전시 내용 자체보다 이 수용소의 규모 자체가 욕이 나올 만큼 넓기 때문이었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학살하려고 만든 거대한 수용시설. 오래 곱씹으며 보기엔 날도 마음도 서늘해 2시간 정도로 마무리했다. (이곳의 여행 계획을 세울 예정이시라면 이 ‘넓음’에 대해 꼭 참조해주시기를). 수용소에서 가장 늦은 시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크라쿠프로 돌아왔다. 간간이 떨어지던 빗방울이 멈췄고 이대로 바로 방에 들어가긴 싫어 호텔 로비 바에서 칵테일을 주문했다. 여러 영혼을 얹고 왔나. 함께 마시는 사람이 많은 기분이다. 이대로 영원히 취하지 않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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