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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고 또 차이는 숙명

스누즈

by 라이트리
2 스누즈.png



스누즈.

그걸 왜 만들었을까?

누구나 너를 두 번 씩은 차버릴 수 있게!


처음 울릴 땐,

“으… 제발…” 하며 손으로 널 치워버린다.

입으론 다정하게 ‘하암’ 하면서 말이다.

두 번째 울릴 땐 조금은 너를 미워하게 된다.

“왜 또…, 벌써?

세 번째쯤 되면 약간 감정이 섞인다.

“하아-, 나 진짜 일어난다니깐…”


그래도 넌, 울기만 할 뿐 아무 말도 안 한다.

그저 묵묵히 울고 또 울고,

내가 결국 일어날 때까지…,

마치 어김없이 찾아오는 집착형 연인처럼.


그래서 나는 생각해 본다.

세상에 이렇게 많이 차이면서도

한 번도 토라지지 않고,

언제나 똑같은 간격으로

다가오는 존재가 너 말고 또 있을까?


사람이었으면

벌써 마음의 문을 닫고도 남았을 텐데.

기분 나쁘다며 울지도 않고,

뒤돌아서지도 않고,

어김없이 같은 시간이면 돌아오는 너.


가끔은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

필요할 때 제시간에 다가가서

잠에서 깨울 만큼은 아니더라도

마음이 식기 전에 한 번쯤은

“일어나, 괜찮아?” 하고 말해줄 수 있는 존재.


물론 현실에선

한 번 차이면 자존심이 상하고,

두 번 차이면 그냥 눕고 싶어진다.


근데 너는 안 그렇잖아.

심지어 설정해 둔 시간에 맞춰

되게 성실하게 울잖아?


이제는 안다.

스누즈는 단순한 알람이 아니라,

삶에서 가장 꾸준히 다가오는 ‘작은 관심’이라는 걸.


오늘도 내 하루를 먼저 깨우는 건

내 책임감도, 목표도, 누군가의 말도 아닌

바로 너다.


그러니까 고맙고… 미안하고…

그런데 너 내일도 나한테

두 번은 차일 준비 돼 있는 거지?



* 스누즈(Snooze)는 알람 시계나 휴대전화에서 알람을 잠시 멈추게 하고

일정 시간 후에 다시 울리게 하는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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