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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심의 의식, 이별의 예고.

책상

by 라이트리


3 책상.jpg


희한하다.

나는 항상 뭔가를 정리할 때,

먼저 책상부터 손댄다.


특히 마음이 어지럽거나,

무언가 결심했을 때.

혹은 이별을 준비할 때.


마치 책상 위를 정리하면

마음속도 정돈될 것 같은 착각을 안고서.

먼지 쌓인 서류 더미를 정리하고,

다 쓴 펜을 버리고,

누군가와의 이야기를 기록한 메모를 조용히 찢는다.


책상은 그런 내 손길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받아주고,

조용히 나를 받쳐줄 뿐이다.


내가 깔끔하게 책상을 치우는 날이면

책상은 늘 내 마음부터 읽는 듯했다.


“또 무슨 다짐했어?”

“이번엔 정말 끝낸 거야?”


그 물음은 들리지 않았지만,

언제나 내 안에 울렸다.


책상이 말 없이 받아주는 날은

대부분 내가 나를 다잡고 싶은 날이었다.

무언가를 시작하려는 날,

아니면 끝내려는 날.


책상은 그 모든 걸 안다.

내 손의 리듬에서,

정리하는 순서에서,

버릴 것과 남길 것을 가르는 그 주저함에서조차.


살다 보면,

정리는 단순한 정돈이 아니라

감정의 퇴장 방식이기도 하다.

떠난 사람의 흔적을 지우듯,

책상 위에서 나는 기억을 조용히 접는다.


그럼에도 책상은 불평하지 않는다.

매번 결심의 진짜 이유를 묻지 않고,

그저 자리를 내어준다.


다시 쓰여질 날이 와도,

언제든 기대라는 이름으로 받아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래서 고맙다.

언제나 말 없이 곁을 지켜줘서.

그리고,

내가 무너질 때마다

조용히 나를 다시 세워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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