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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이 Jul 31. 2024

깨달은 자의 삶, 퍼펙트 데이즈

지극히 개인적인 영화 감상문.

<퍼펙트 데이즈>라는 제목의 이 영화는 한 중년 남자의 아침 맞이로 시작을 하지요.

눈을 뜨고, 뒤척임 따위는 없이 곧장 일어나 이불을 개고 세안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차를 타기 전에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출발합니다. 출근길엔 ‘The House of the Rising Sun’이라는 60년대 올드 팝이 흘러나옵니다. 일터는 도쿄 시내 곳곳에 위치한 공중 화장실입니다.

네, 주인공 히라야마 씨는 시부야의 공공시설 청소부입니다. 그는 마치 예술품의 먼지를 털어내듯, 변기와 세면대를 정성껏 닦아냅니다. 그러다 누군가 화장실을 이용하려고 들어 오면, 자리를 비켜주며 하늘을 봅니다.

나뭇잎 사이로 비추는 햇살을 보며, 그 아름다운 순간을 카메라로 포착합니다. 화장실을 오가는 사람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때로는 도움을 건네기도 합니다. 점심시간이 되면 인근 공원에서 샌드위치를 먹고, 또다시 청소를 합니다. 그렇게 하루가 마무리되면 공중목욕탕에서 피로를 풀고, 좋아하는 책을 읽다가 잠이 들지요.

꿈을 꾸고, 해가 뜨면, 히라야마 씨는 눈을 뜨고, 또다시 이불을 갭니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지만, 그는 매 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고 충실하게 임합니다. 관객들로 하여금, 절로 ‘당신의 하루는 어떤가요?’라고 되묻는 듯합니다.

아침을 맞이할 때 몸과 마음이 충분히 가벼운지, 하찮은 일을 하는 것 같아 풀이 죽은 적은 없었는지, 바쁘다는 핑계로 하늘 한 번 올려다보지 못하고 사는 건 아닌지, 오가며 마주치는 인연들에 다정한 미소를 지어주는지, 하루 동안 내가 좋아하는 시간들을 얼마나 챙기며 사는지…

이처럼 히라야마 씨의 단 하루, 즉 영화의 1/4만 보았을 뿐인데도, 소위 ‘현타’가 밀려옵니다. 어쩌면 머리로는 다 알지만, 몸과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 우리의 일상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요?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히라야마 씨는 소위 깨달은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깨달은 사람의 삶은 저런 모습이겠구나 싶었습니다. 매 순간 깨어 있는 의식으로 현존하는 삶은 저러하겠구나.

영화는 이어서 히라야마 씨의 반복되는 일상 속 발생하는 몇몇 소소한 사건들을 보여 줍니다. 이를 테면, 동료의 무례한 행동들, 가출한 조카(누나의 딸)의 방문, 마음을 주던 단골 주점 여사장의 전남편과 대화 등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을 수밖에 없는 사회와 관계 속 굴레들.

히라야마 씨는 상황에 따라 때로는 화를 내고, 눈물을 흘리며, 속상해하기도 하지만, 그 감정에 압도당하거나 붙잡혀 있지 않고 자연스레 흘려보냅니다. 

“이 세상은 수많은 세상으로 이루어져 있어.”

과묵한 그는 다른 세상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선을 넘지 않으며, 타인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예의와 존중으로 대합니다. 참으로 양심적이고 도덕적인 교과서 같은 삶 아닌가요?  

이처럼 영화는 히라야마 씨의 평범한 일상을 통해,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삶의 모습은 결코 멀리 있지 않음을 알려줍니다. 누구나의 일상 속에서도 실천할 수 있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물론 ‘‘아는 대로 실천하는 삶’을 살아 내는 게 결코 쉽지 않습니다. 몸과 마음을 아는 대로, 즉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우리의 의식을 깨워야 합니다. 잠들어 있던 신성한 힘을 자각하고 존재감을 키워야 합니다. 우리가 명상이라는 수행을 지속해야 하는 이유이겠지요.

마침내 매 순간 현존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우리의 하루는 셀 수 없이 무수한 기쁨으로 채워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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