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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제비 - 다섯 번째 소식

새 커피원두/달걀찜기/홍콩의 밤거리/투모로우바이투게더-별의노래

by 릴리리

[오늘의 스토리]

지난 주에 퇴근하고 후다닥 근처의 좋아하는 커피집에 가서 원두를 사왔다. 파랗게 칠한 벽과 어두운 우드톤의 테이블과 의자, 젊은 남자 사장님의 진지한 분위기가 차분한 무드를 만들어내는 곳이다. 직접 볶는 원두도 여러 종류가 있어 고르는 재미가 있다.

항상 에티오피아만 사다가 이번엔 코스타리카 엘사르 데 사르세로의 원두를 사봤다. 원두를 살 때는 추천을 해달라고 할 때도 있지만 결국엔 추천보다 내가 더 끌리는 걸 골랐기 때문에(’답정너‘라 죄송합니다) 그냥 원두 설명을 보고 고르는 편이다. ’밸런스 좋은 과일의 향미, 복숭아와 청포도의 맛, 바닐라시럽의 단맛‘이 특징인 커피라는데, 좋아하는 걸 다 모아놔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집에서 새 원두로 커피를 내려마시려고 그라인더를 꺼냈더니 전에 갈아놓은 원두가 있었다. 새 커피 맛은 다음에 봐야겠다.


[오늘의 물건]

달걀찜기

올해 잘 산 물건 넘버원으로 꼽을 수 있는 제품이다. 물을 넣고 전원을 연결하고 버튼만 누르면 달걀을 쪄주는 편리한 물건이다. 달걀을 좋아해서 평소에 삶은 달걀을 많이 해먹는데, 전기 달걀찜기가 편리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살림살이를 늘리고 싶지가 않아(그런 것 치고는 맥시멀리스트인 편) 계속 사지 않았었다. 왜 갑자기 이걸 사려는 마음이 들었냐 하면, 사실 반 년 정도 전부터 사고 싶다고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에 우연찮게 본 요리 유튜브에 달걀찜기가 나와 덜컥 사버린 것이다. 오래 고민을 하던 것 치고는 충동적인 구매였다.

2단이라 달걀을 최대 12개까지 넣을 수 있고, 만두도 욱여넣으면 12개까지 찔 수 있다. 음식 닿는 부분이 플라스틱이라 조금 신경 쓰이지만, 아무튼 이걸로 달걀도 삶아 먹고 고구마랑 감자도 쪄먹고 만두도 쪄먹고 아주 잘 쓰고 있다.


[오늘의 풍경]

얼마 전 읽은 김민주 작가의 <재즈의 발견>에 왕가위 감독의 영화 <화양연화>가 나왔다. 인생 영화를 꼽으라고 하면 주저없이 <화양연화>를 꼽는 사람으로서 반갑게 읽었다. 시나리오 작가인 저자는 이 영화가 ‘전통적으로 스토리텔링이 강조되어 왔던 영화 내러티브의 중심을 ’이야기‘가 아닌 ’이미지‘로 옮기는 시도에 성공’했다고 말한다. 혼자 국수를 먹는 양조위의 쓸쓸한 뒤통수, 호텔방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의 모습, 아름다운 무늬의 치파오를 입고 걸어가는 장만옥의 실루엣 등, 과연 <화양연화>를 떠올리면 확실한 이야기 보다는 의미와 분위기만을 전달하는 이미지가 남는다. 그에 매료돼 나도 지금껏 모호한 글만 쓰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어쩐지 자아 성찰의 길로 들어서 버렸다.

아직도 홍콩에 두 번이나 가면서 골드핀치 레스토랑을 한 번도 가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게 아쉽다(현재는 폐업했다). 그래서 ‘오늘의 풍경’은 2019년 방문했던 홍콩의 밤거리다.


[오늘의 음악]

별의 노래 -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아이돌은 저마다의 콘셉트와 서사를 가지고 있다. 콘셉트는 새로운 노래가 나올 때마다 바뀔 수 있는 것이지만 서사는 데뷔 때부터 그룹이 존속하는 한 지속되는 것이라 쉽게 바뀌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이 곡은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7년차에 내놓은 정규앨범의 마지막 수록곡으로, 데뷔 때부터 이어졌던 서사에 일종의 마침표를 찍는 느낌을 준다. 그 동안 꾸준히 ‘내 이름을 불러줘’라고 외쳤던(9와 4분의 3 승강장에서 너를 기다려, Deja Vu 등) 그들이 마침내 ’네 이름‘과 ’내 이름을‘, ’우리 이름을‘ 부른 것이다. 물론 앨범마다 들어가는 팬송의 기능이겠지만 아이돌의 첫 사이클이 끝나는 7년차에 내놓은 노래라 그런지 마침표 같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이 노래가 참 쓸쓸하다. 세월의 흐름에 늙어가는 내가 함께 해서 그런가보다. 나이가 들며 열정도 잔불이 되었지만 이번 주말에 있을 콘서트에 가서는 목청껏 소리 지르고 즐기고 와야겠다. 근데 아무래도 이 곡이 나올 때는 눈물이 날 것 같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별의 노래’가 수록된 <The Star Chapter: TOGETHER> 앨범 아트커버(2025, BIGHIT MUSIC)

발행의 변(辨)

: 좋은 소식을 가져온다는 제비처럼 소소한 일상 소식을 나르는 매거진. 종종 하잘것없지만 복잡한 세상 속에서 피식 웃을 수 있는 모먼트를 선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월-금 주 5회 발행. 공휴일은 쉬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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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화, 수, 목,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