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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리 Mar 12. 2019

못 낳는 거예요, 안 낳는 거예요?

결혼 10년차, 여전히 아이는 없습니다만

결혼을 하면 뭔가 크게 달라질 줄 알았다.
30대가 되면 인생이 많이 달라질 줄 알았다.

그런데 인생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았다.


결혼 10년차,

여전히 아이는 없습니다만.



2.
못 낳는 거예요, 안 낳는 거예요?

30대가 넘어가면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 반드시 거치게 되는 통과의례 같은 질문이 있다. 

결혼했어요?

처음엔 혼인여부,

아이는요?

그 다음엔 자녀의 유무다. 

지인 중에는 미혼인데 결혼을 했다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몇 있다. 마흔이 넘었는데도 결혼을 안 했다고 하면 ‘왜 안 했어요’부터 시작해서 그래도 해야지, 늙으면 외로워, 좋은 사람 있는데 소개시켜줄까? 하는 쓸데없는 오지랖까지 이어지기 일쑤다. 

거기서 그치면 양반이다. ‘성격이 이상해서 결혼을 못 한 거’라며 뒤에서 수군거리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사람들은 꽤 많다. 

그래서 지인A는 ‘결혼했고 애는 아들 하나 딸 하나 있다’는 꽤나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는다. 애가 하나만 있다고 하면 둘은 있어야, 남자아이가 있다고 하면 딸이 있어야, 딸이 있으면 그래도 아들은 있어야, 하는 참견으로 이어진다. 아들도 있고 딸도 있다고 하면 아예 그 모든 참견을 원천봉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편리한 답변이 아닐 수 없다.


어렸을 때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많이 읽었다. 가볍게 잘 읽히는 그의 에세이를 좋아했는데, 그는 종종 무해한 거짓말을 한다고 했다. 귀찮을 것 같은 상황에서 거짓으로 답변을 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예를 들자면 이렇다. ‘회사에 다니시나요?’라고 물으면 ‘네’하고 대답한다. 실제로 회사에 다니지 않지만 회사에 다니지 않는다고 하면 이어질 질문과 구구절절 해야할 설명이 귀찮아서 대충 대답해버리는 것이다. 

어렸을 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굳이 거짓말을 하지? 그냥 사실대로 얘기하는 게 편하잖아? 왜 굳이 그런 오해를 만드는 거지?

 

그런데 나이가 드니까 그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20대 때 무라카미 하루키에 빠져있지 않으면 바보고 30대가 돼서도 무라카미 하루키에 빠져있으면 바보’라는 말을 누가 했는데 그가 에세이에서 했던 어떤 말들은 30대가 되어서야 이해가 된다. 


나이가 들수록 남을 설득시키는 것은 어렵고 귀찮다. 그래서 때론 그냥 입을 다물고 앉아 있는다. 사실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모임에 나가는 걸 좋아하지만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때가 있는데, 이런 경우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굳이 내가 말하지 않아도 발언자들이 많을 때. 의견이 난립하는 상황에서 딱히 새로운 주장을 내세우고 싶지 않을 때 입을 다물고 있는다. 

둘째, 말할 기력이 없어서. 말하기는 매우 많은 체력을 필요로 한다. 나의 경우는 그렇다.

셋째, 의견이 다를 때. 현재 토론 주제와 큰 관련이 없고 상대방의 기본 사고방식이 나와 다를 때 '어? 나는 아닌데?'라고 하기보다 입을 다무는 쪽을 택한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돼 속 편하다. 이 경우 두번째 이유인 '말할 기력 없음'과 맞물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건 그렇고 아무튼 나는 자녀가 없으므로 정직하게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얼마 전 소속된 어느 단체에 신규회원이 들어와 식사 자리를 가졌다. 식사가 나오기 전의 어색한 분위기에서 그는 나에게 물었다. 

아이 있어요?

아뇨.

결혼한지 얼마나 되셨어요?

9년이요.

그러고 5초 정도 침묵이 이어졌다. 숫자로 써놓고 보면 별 것 아닌 거 같지만 7명이 모인 자리에서 5초 간의 침묵은 꽤 긴 시간이다. 그는 아마 내가 결혼한지 길어봤자 1, 2년이 됐을 거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러면 '아이가 곧 생기겠네요' 정도의 답변을 할 예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내 긴 결혼생활은 긴 침묵을 가져왔다.

침묵을 깬 것은 그였다. 그는 침묵을 깨고 이제 막 고등학교에 입학한 큰 아들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단하다고 맞장구를 쳤다. 그러고는 이 침묵의 균열에 마음 속으로 안도했다.


어쨌든 결론은 본인의 아들 자랑이었을 것이다. 과연 자랑할 만한 화려한 경력을 가진 아이였다. 나라도 그런 아들이 있다면 자랑하고 싶어 좀이 쑤셨을 것이다. 아니, 글쎄, 들어보세요. 우리 아들이 이번에... 

과연 나는 앞으로 아들을 자랑할 일이 있을까? 모를 일이다. 


이번 사건으로 깨달은 바가 있다. 질문이란 결국 본인의 관심사다. 아이스 브레이킹용 질문도 있지만, 대부분 그렇다. 그러니까 뒤에 이어질 대화를 미리 준비해야겠다. 앞으로 아이의 유무와 결혼이력(?) 질문 뒤에는 반드시 답변과 함께 몇 마디를 덧붙이기로 한다.


결혼한지 9년 됐는데 아이는 아직 없어요. 그냥 생기면 낳고 아님 말려구요. 

근데, 댁의 자녀 분은 어떻게 되시나요?

 


<결혼 10년 차, 아이는 없습니다만>이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주요 온라인 서점 및 전국 대형서점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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