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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멘트 Feb 11. 2019

17살에 첫 딸을 낳았던 한 여자의
삶에 대한 믿음

# 이번 생은 이미 망했다고 생각하는 모든 이들에게

아주 어렸을 때 나는 펜으로 스케치북 한 장을 반으로 나누어 한쪽에는 옷을 잘 차려 입고 얼굴도 예쁜 여자 아이를, 다른 한쪽에는 보기 싫게 깡 마르거나 아니면 뚱뚱한, 옷도 지저분하게 입은 한 아이를 그려 넣었었다. 외모로만은 모자라 각각의 프로필까지 적어 넣었다. 예쁜 여자아이 옆에는 세계에서 가장 좋은 학교를 나왔으며 똑똑하며 성격까지 착한 OOO. (이름도 예쁜 이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다른 한쪽에는 그와 반대되는 특징들을 적었다. 

그리고 나는 분명 이 둘 중에 예쁜 여자아이로 성장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Chiloé, Chile

그녀와 만난 건 이번 출장길에서였다. 그녀는 공장의 품질 총책임자인데, 보통 이쪽 일을 하면서 여자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특히 아무리 남미라도 웬만한 글로벌 회사의 해외 영업 담당자들은 1년에 몇 번씩 아시아를 포함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전 세계의 바이어들을 만나고 다닐 수 있으며, 그 외에도 시장이 과잉 공급 상태일 경우만 제외하고는 생산자의 위치에서 가격을 가지고 고객사들과 소위 말하는 '밀당'을 하며 거드름도 피울 수 있는 자리라서 인기가 많다. 당연히 수입도 괜찮은데(우리나라 웬만한 대기업 월급보다 훨씬 높은 경우도 많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 곳 남미의 해외 판매 담당자들은 국가에 상관없이 거의 늘 유러피안처럼 생긴 백인 남자가 대부분이다.(불편한 진실..) 그녀는 물론 해외영업 담당자는 아니었으나, 마초남들이 가득한 칠레 사회에서 여자로서 공장의 총책임자로 일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다. 


그녀는 처음 만난 동양 여자애와 3시간을 넘게 가는 차 안에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이어갈 정도로 에너지가 넘치는 아줌마였다. 초면에 나이를 묻는 것은 이 곳 남미에서도 그다지 흔한 일은 아니지만 남미에서 일하는 젊은 동양 여자를 신기해하는 이 곳 사람들로부터 나는 자주 나이에 대한 질문을 받곤 한다. 내 나이를 이야기하자 아줌마가 자기도 딸이 둘 있는데 첫째 딸은 너보다 나이가 많다는 것이다. 

"어머 너무 젊어 보이셔서 상상도 못 했어요!"라고 했던 나의 놀람은 단순 아부용 겉치레만은 아니었다. 

서른 살 딸을 둔 47살 여자라니.. 1초간의 계산을 거쳐 "아 그럼.."이라고 말하는 찰나에 그녀가 먼저 내게 이야기했다. "응, 첫째 딸은 내가 17살이 었을 때 낳았어. 그런데 스무 살이 되던 해에 남편은 죽고 나 혼자 아이를 키웠지. 딸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남편 없이 여자 혼자 살면서 한 번도 다른 남자들이랑 어울리고 하질 않으니까 어떤 사람은 나를 레즈비언쯤 되나 보다 하고 생각하기도 했어. 그런 시간이 지나 이제는 지금의 남편과 만나 이제 9살이 된 둘째 딸도 있고, 강아지도 한 마리 있고.. 무엇보다 이쪽 일만 20년 넘게 했는데 이렇게 공기 좋은 곳에서 계속 일을 할 수 있는 것에 정말 만족해." 


@ 그녀와 함께 방문했던 Chiloé섬 양식장에서

나의 상상을 뛰어넘는 그녀의 긍정성에 감탄하면서도 그래도 그 세월이 쉽지만은 않았겠다고 하자 그녀가 말을 이었다. 

"쉽지 않았지 당연히. 하지만 나는 내가 고통스럽게 살기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어. 항상 나를 포함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행복해질 저마다의 이유를 갖고 태어났다고 생각해. 물론 사람들은 나를 에너지 넘치고, 활달한 사람으로 생각하겠지만 사실 나도 그러다가 문득 어느 날은 아무도 만나지 않고 온전히 나의 공간으로 깊숙이 들어가서 시간을 보내야 할 때가 있어. 그렇지만 그 이후에는 또 계속 나아가야지. 내가 17살에 첫 아이를 낳고, 남편과 사별했고, 그 말고도 살면서 수많은 문제들이 있었지만 중요한 건 내가 지금 여기에 웃으면서 살아있다는 거 아니겠어?" 


사실 칠레는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 것이 아주 흔한 나라다. 어떻게 보면 사회적으로 기본적인 성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내 관점에서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 곳 학교(이곳은 초, 중, 고를 구분하지 않고 대학교 입학 전까지 같은 학교를 쭉- 다닌다)들에서도 종종 여자애들이 임신을 한 채로 학교를 다니거나, 아니면 임신을 하고 휴학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늦어질지 언정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까지 다니며 애를 키울 수 있도록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자식들을 서포트를 해주고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아이를 갖는 것 자체를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강하다. 그녀도 그런 수많은 이 곳의 여성들 중에 하나고, 이제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사회적으로도 인정받고, 개인적으로도 두 아이의 엄마이자 한 남자의 남편으로 살고 있는 행복한 한 여자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며 항상 내가 어렸을 때 그렸던 두 여자아이 중 얼굴도 예쁘고, 착하고, 똑똑하며 사람들에게 늘 인기도 많아서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바랐었다. 

그것이 내가 어렸을 때 내가 가졌던 삶에 대한 믿음이었다. 

'나는 상처 없이 완전한 멋진 여자로 성장하리라.' 그래서 오히려 두려움도 컸고 열등감도 컸다. 바꿀 수 없는 외모에서 오는 스트레스부터 시작해서 내가 목표로 했던 대학을 가지 못했다는 스트레스를 거쳐, 모두가 부러워하는 직장에 보란 듯이 입사하는 일도 나에게는 뭐 하나 쉽게 되는 것이 없게 느껴졌다. 그럴 때마다 우울했다. 시간이 갈수록 나는 나의 믿음 속의 미래와 멀어져 가고 있는 것 같아서 조급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바람직하게 여겨지는 틀'을 벗어난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겉으로는 저렇게도 잘 사는구나, 대단하다 라고 했지만 내심 나는 절대 저런 삶은 살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굳은 다짐과 내가 걸어가고 있는 이 길은 나를 어려움에 빠뜨리지 않는 안정적인 길일 거라는 믿음을 곱씹었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시간의 파도는 우리를 생채기 하나 없이 두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나를 포함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고통받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닌, 행복해지려고 태어난 것'이라는 그녀의 삶의 믿음은 나의 그것보다 훨씬 더 열린 결말을 암시한다. 이 믿음은 당신이 어떤 외모 콤플렉스가 있다고 해도, 오랜 시간 일을 구하지 못해 통장 잔고가 말라가고 있다고 해도, 건강이 악화되어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해도, 당신이 오랜 시간 준비했던 시험에 낙방해서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좌절감을 느낀다고 해도, 10대에 계획 없이 임신을 하게 됐다고 해도, 혹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다고 해도.. 당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던지와 상관없이 당신은 늘 상황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뜻한다. 그래서 나는, 

당신의 삶에 대한 태도가 그녀의 삶의 믿음과 같기를 바란다. 

나의 인생을 언제든 무제한으로 reset 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오직 나뿐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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