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일
돌아서니 연휴의 한 가운데에 와 있습니다. 추석 연휴 평안히 잘 보내고 계신지요? 본가의 부모님께서는 늘 자식을 보고 싶어하나 타향에 머문 지 20년 가까이 되고 보니 본가나 선산에 들러도 낯설게 느껴지고 오래 머물고 싶은 마음이 전과 다르게 많이 옅어집니다. 아내는 아내대로, 자식은 자식대로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다르다 보니 이 또한 가끔 낯설게 느껴집니다.
아내와 아들을 제주도로 보내고, 돌아다니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저로서는 결국 저희 집 둘째이자 아빠 바라기인 ‘무둥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어떨 때는 견공이 벗 같기도 또는 사랑하는 사람 같기도, 자식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전생에 이 친구에게 어떤 빚을 졌기에 혹은 어떤 인연이었기에 안아주고, 대소변 가려주고, 식사와 간식, 물을 챙겨주는 일을 도맡게 되었는지 무둥이의 순수한 눈을 바라보기도 하고 아침저녁으로 함께 산책하기도 하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됩니다.
주역을 읽고 선현의 말씀을 나누는 시간을 인스타와 유튜브로 대신하는 시간이 많기에 아래 시가 더 그립고 절실히 느껴집니다. 새벽, 고전, 어른, 솔숲, 먹물, 이슬, 대나무, 바람, 경쇠 등 이런 자연물과 옛 어른의 말씀은 언제 접하든 싫증 나지 않고 사람을 맑고, 깨어있게, 때로는 겸손하고 착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평온한 추석 연휴, 좋은 추억 많이 쌓으시고 안전운전 하시길 바랍니다. 늘 평안하십시오. 고맙습니다.
讀易曉窓(독역효창) 이른 새벽 창가에 앉아 《주역》읽고
丹砂硏松間之露(단사연송간지로) 솔숲 이슬 받아 붉은 먹물 만드네
談經午案(담경오안) 낮에는 옛 성현의 말씀 마음에 새기니
寶磬宣竹下之風(보경선죽하지풍) 대나무, 바람, 경쇠가 함께 호응하네
- 홍응명(洪應明, 1573~1619), <대나무, 바람, 경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