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만큼 얻지 못해도 괜찮아, 삶에는 노력보다 중요한 게 있으니까
자녀가 시험을 망쳐 울고불고했다는 지인 얘기를 들었다. 평소 잘 하던 과목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속상해하는 아이 앞에서 애써 마음을 진정하고 위로했지만, 결국 나중에 혼자 지인도 눈물을 훔쳤다면서 힘든 마음을 토로했다.
아이의 좌절과 부모의 안타까움은 아이가 평소 무척 열심히 공부한다는 사실에서 비롯한다. 공부를 안 해서 시험 성적이 좋지 않은 것이라면 차라리 나으련만, 거의 매일 자정 넘어서까지, 시험 기간엔 자정이 훌쩍 넘도록 열심히 공부하는 데도 기대하는 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아 힘들어 한다. 지난 시험에서도, 이번에도 항상 평소 알고 있었던 쉬운 문제에서 틀려 속앓이를 하는 것이다.
내게는 모든 노력은 절대로 배반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다. 반백살 겪어보니 단지 믿음이 아니라 사실이다. 수 년간 공들여 신간<영화로운 개인> 출고를 앞두고 있지만, 책에 미처 담지 못한 수많은 글을 생각하면 아쉽기 그지 없다. 이 책과 관련한 글만이 아니다. 원고 파일에 가득한 그 글을 쓰기 위해 쏟았던 정신적 스트레스, 시간과 각종 기회비용을 생각하면, 나도 절망의 눈물 바다를 이뤄야 할 판이다.
하지만 어떤 분야의 어떤 노력이든 몸과 마음을 다 한 분투는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다만, 그 노력이 내가 예상하고 기대했던 일이 아니라 훗날 전혀 생각치 못했던 다른 일에서 빛을 발하는 경우가 적지 않을 뿐이다. 지금 이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기울였던 노력이 비록 당장 아무 쓸모 없었던 것 같아도 훗날 어떤 일을 가능하게 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냥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노력은 절대로 없다.
그런데 결과가 자신의 노력만큼 나오지 않는 것 같아 좌절하기를 반복한다면, 차라리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게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수할 때마다 생기는 좌절감을 억누르고 공부하면 열심히 하지 않을 때보다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겠지만, 삶은 학벌이나 직업 같은 게 보장해주지 않는다. 물론, 좋은 학벌로 전문직에 종사하면 경제적,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할 가능성이 커지겠지만, 그 삶은 무척 애를 써야 유지되는 것이 될 지 모른다. 삶에서 더 중요한 것, 즉 수월한 삶 또는 행복은 학벌이나 직업 같은 외적 조건이 아니라 무의식에 심어진 자아관과 인생관이 좌우하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공부는 단지 입시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후 나머지 인생을 좌우할 자아관과 인생관의 바탕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그 시절 자신이 유일하게 하는, 또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 일에서 ‘나는 열심히 해도 항상 내 노력에 미치지 못한 성과를 낸다’는 자아상이 생기면, 이후 다른 일에서도 그 인식이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인간에게 노력은 중요하고 의미 있다. 하지만 근대화되면서 사회가 구조적으로 평등해진 대신 그 노력의 가치와 의미가 과대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노력만하면 원하는 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조건은 모두 무시한 나머지 노력해서 원하는 걸 얻지 못한다면 그건 배경이나 지원, 기회 등과 같은 외적 조건 탓으로만 돌린다. 그런 태도가 개개인의 삶을 고되게 만들고, 또 사회적으로도 점차 현대판 전근대로 회귀하게 만드는 작은 씨앗이 된다.
노력은 성취와 행복을 위한 여러 요소 중 하나일 뿐이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노력했는데도 실패했다는 경험이 혹여 언더도그마로 작용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패 경험뿐만이 아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이 불리하거나 불행하다고 해서 그러한 상황을 자기연민으로 고착시키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영화 「돈 워리」에서 존은 자신의 비참한 상태가 어릴 적 버림받은 상처와 알코올 중독, 불의의 사고 탓이라고만 여기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자기연민에 빠져 있는 자기 자신이었다.
그처럼 우리는 때로 영문 모를 일을 뜬금없이 겪게 되기도 한다. 존과는 다르지만, 「아이리시맨」의 프랭크 역시 그저 가족을 더 잘 부양하려는 책임감을 갖고 삶이 자신에게 요구하는 바에 따라 충실히 살았는데도, 정작 가족에게 외면당한 채 고독한 노년에 이른다. 그의 이야기는 삶이 결코 내 의도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현대인의 믿음과 달리, 이런 어리둥절하고 불가항력적인 상황은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이 발전할수록 잦아진다. 갈수록 수없이 많은 변수가 복잡하게 얽히는 반면, 인간 두뇌의 인지 능력은 그 인과관계의 아주 작은 일부만 파악할 수 있는 수준에 머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대의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전근대 시대 사람보다도 못한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노력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은 전근대의 것에 가깝다. 근대로의 변화는 막무가내 가능성이 아니라 인간이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구분함으로써 이루어졌다.
2장 ‘뜻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아’는 두 편의 영화를 통해 그 변화 과정의 이야기와 함께 인간으로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삶에 순응할 줄 아는 지혜로운 태도가 개인주의적인 모습임을 이야기한다. 영화 「조조래빗」이 보여주듯 인간에게는 제 아무리 절망스러운 상황도 넘어설 강력한 무기가 있기 때문이다.
1장이 불완전한 자기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여 자기만의 기준을 가짐으로써 중심을 잡는 이야기라면, 2장은 최선을 다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 삶에 흔들리지 않으면서도 그런 세상과 조화로울 수 있는 길을 안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