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마음
할머니와 단둘이 살던 때가 있었다. 나는 할머니의 장년에서 노년기를 지켜봤고, 할머니는 나의 유아기를 제외한 모든 시간을 옆에서 그리고 뒤에서 지켜보았다. 함께한 시간 속 마주한 할머니의 모습은 이해되는 것보다 이해되지 않은 것들이 더 많았었고, 이해되지 않은 날들을 매일 같이 지내다 보니 나는 다른 사촌들이 할머니에게 가지는 애교 섞인 포옹, 말투, 마음을 점점 잃어가고 퉁명함만 채워졌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이해되지 않았던 것들이 이해되기 시작했고, 할머니가 좋아했던 것들을 피했던 내가 할머니처럼 그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가령 할머니는 몇 년 동안 꼬박 우유를 드셨는데, 처음에는 맛있어서 그러다 점점 밥 대신 우유를 약 마냥 꿀떡 삼켰다. 그리고는 다시 뜨끈하게 푹 쪄진 이불 속으로 들어가, 긴 시간 할머니만의 세상에서 할아버지를 만나기도 하고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거나 젊었을 적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밥 대신 우유만 마시는 할머니는 점점 말라갔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우유를 찾았다. 새벽에 우유가 다 떨어지면 소리를 지르고 울며 우유를 찾을 때마다 우유에 대한 진저리와 그 새벽을 혼자 감당해야만 하는 내 처지가 싫어 책상 아래에 숨어 나도 꺼이꺼이 울었다. 그런 내가 이제는 입맛이 없을 때마다 우유를 한 컵 따라 꿀떡 마시고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우유가 식도를 타고 차갑게 흘러내려가 위를 채우며 잠시동안 포만감에 안정되었을 즈음, 입맛이 없던 할머니에게 유일하게 빠르고 쉽게 속을 채웠던 우유의 역할이, 그리고 우유만 찾는 애타던 마음이 그제야 이해되기 시작했다. 지금도 나는 말라서 핏줄이 울퉁불퉁 튀어나온 할머니의 손을 잡고 우유를 사주겠다며 슈퍼를 찾아 헤매는 꿈을 꾼다.
가끔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올 때가 있다. 그러면 며칠 전서부터 6평짜리 공간을 잘게 나누어 집안일을 분할해본다. 부끄럽게 나뒹구는 머리카락과 먼지 덩어리들을 친구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쓸고 닦는다. 양치하는 동안 둘러보는 시선에 머물 불쾌한 더러움을 들키고 싶지 않아 소매와 바짓단을 걷어 올리고 솔로 화장실 물때를 박박 닦아낸다. 물 좀 마시겠다며 컵을 꺼내는 친구들에게 싱크대에 찐득하게 굳어버린 소스와 기름때를 들키고 싶지 않아 수세미로 박박 밀고 물 묻은 행주로 시원하게 훔쳐본다. 코끝에 가져대는 이불에서 내가 부끄러워하는 냄새가 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회사를 다닐 때는 퇴근 후 늦은 밤이어도 이불을 낑낑 이고 가 빨래방 세탁기에 넣어놓고 잠시 눈을 붙이기도 했다. 그렇게 지긋지긋한 청소의 날을 보내면 ‘우리가 손님이냐. 청소 안 해도 돼’라며 친구들이 이해가 안 된다는 투로 얘기한다. 집주인 마음은 또 그게 아니라며 에둘러댈 뿐이다.
그때마다 할머니의 청소가 떠오른다. 부산에 사는 삼촌이 서울로 출장 올 때마다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 나 오늘 서울 올라가요’라고 하면 그때부터 할머니는 분주해진다. 추운 겨울, 베란다 통유리창을 활짝 열고 방바닥 빗질을 시작하면 어린 나는 침대 모서리에 걸쳐 앉아 이불을 뒤집어쓰고 춥다고 징징거린다. 시끄럽고 발이나 들라고 하면 발을 들면서도 너무 빡빡하게 청소하는 할머니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계속 찌푸린다. 빗질이 끝나면 손걸레로 다시 노랗고 매끈한 방바닥을 미끄러지게 닦는다. 닦으면서 전화기도 한 번씩 걸레로 훔치고, 꽃병에 쌓인 먼지, 구석에 놓인 액자, 교회에서 받은 상패도 하나씩 꺼내서 닦는다. 수건을 새로 꺼내 화장실에 걸어 넣고, 잘 쓰고 있던 갈라진 비누를 버리고 새 비누를 뜯어 놓는다. ‘아까운 비누를 왜 버려?’라고 잔소리 투로 물어보면 할머니는 대답 없이 세면대를 물로 훔친다. 늘 마른반찬만 반찬통 뚜껑을 연 채로 먹었던 식탁에 따끈한 북엇국이 올라온다. 가장 위쪽 찬장에서 안 쓰던 꽃무늬 접시를 꺼내 반찬을 예쁘게 담아 놓는다. 그리고 장롱 제일 아래쪽에 깔린 가장 도톰하고 좋은 비단이불을 꺼낸다. 그러면 나는 왜 그 이불은 삼촌만 덮냐며 볼멘소리로 옆에서 쫑알대면 할머니는 시끄럽다고 하면서 또 다른 장롱에서 빳빳하게 개어진 아끼던 옷을 꺼내 입는다. 그러고는 곧 삼촌이 오니 너도 옷 좀 갈아입으라며 손녀의 단정까지 챙긴다. 삼촌이 올 때만 달라지는 집의 환경과 할머니의 분주함이 그때는 이해가 안 됐었다. 그런 내가 성인이 되고, 혼자 생활을 꾸리는 공간에 누군가를 초대하니 알겠더라. 할머니는 설렘과 동시에 아들에게 초라한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다. 깨끗하게 사는 엄마의 모습이 아들에게 여전히 멋진 자부심이 되길 바라며 손거울을 들고 노란 도끼 빗으로 똘똘 말린 곱슬머리를 빗으며 그렇게 삼촌을 기다린다.
앓고 있던 치매가 심해지면서부터 할머니의 청소도, 북엇국 냄새도 더 이상 집안에 풍기지 않았다. 할머니의 최선까지는 아니지만 누워있는 할머니를 대신해 방바닥을 대충 쓸고 있으면 할머니는 팔을 괴고 ‘다 키웠네. 이제 청소도 잘하고..’ 라고 할 뿐이다. 그리고 삼촌이 오면 땀에 축축해진 내복 차림으로 삼촌에게 안기며 아빠를 기다린 아기처럼 웃는다. 그리고 똑같은 질문을 10분마다 여러 차례 물어보는 것으로 최선의 기쁨과 여전히 엄마로서 가지는 걱정을 대신할 뿐이다.
‘밥은 먹었어?’
'밥은?'
'식사는 했나?'
‘밥 먹고 왔니?’
‘밥 먹고 왔다고 했나?’
‘배고파서 어떡해, 밥 먹어야 하는데’
삼촌을 향한 할머니의 마음에 견줄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 모습을 보고 자란 내가 이제는 할머니의 조금은 닮아진 마음으로 친구들을 맞이하고 있다. 서로 초라한 모습도 다 알아버린 사이겠지만 그래도 내 흔적의 때를 보여줌으로써 진짜 초라해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청소한다. 청소를 하고 있으면 그때의 할머니의 모습과 마음이 떠오른다. ‘다 키웠네. 이제 청소도 잘하고..’의 목소리와 누워있는 모습이 희미하게 풍기다 사라진다.
그렇게 청소했지만 크게 변한 건 없는, 나만 알아차린 말끔해진 집에 친구들이 한바탕 떠들다 가고 나면 현관문이 쿵 닫히는 소리와 동시에 적막함이 무섭게 공간을 덮쳐버린다. 직장 다닐 때는 다음 날 출근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혹은 남은 휴일을 만끽하려는 마음으로, 다음날 사람들에 섞여 겪을 속 시끄러움으로 적막감이 이내 사그라들지만, 내일도 모레도 말없이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은 요즘은 더 큰 고독으로 나를 덮쳐버린다.
그때마다 명절 때 시끌벅적했던 친척들이 떠나고 난 뒤의 할머니와 내가 있던 집이 생각난다. 할머니는 섭섭한 마음으로 식탁 위 그릇으로 덮어놓은 남긴 음식을 잠시 매 만지다가 이내 피곤해서 자야겠다라며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30분 전만 해도 웃고 떠드는 소리가 왕왕했었는데 친척들이 떠나는 순간부터 집 전체가 고독의 차원으로 급격히 빨려 들어간다. 왕왕함과 적막감에 대한 괴리감은 어린 나에게 반갑지 않은 감정으로 전달되었다. 그때의 할머니의 밤은 물리적 시간이 기준이 아닌 오로지 자식들이 떠난 시점일 뿐이었다. 깜깜한 집안에 베란다 너머로 들어오는 여러 집의 불빛들만이 은은하게 방을 비출 뿐이다. 화장실을 가려고 나와서 흘끗 보면 할머니는 일찍 누웠지만 잠들지 않고 눈을 말똥하게 깜박이며 은은한 방을 응시하고 있었다. 혹은 방안을 떠들썩하게 만들던 자식들의 잔상을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명절 연휴가 끝나고 나는 다시 학교에 가고, 친구들과 노는 동안 할머니는 또 긴 시간 혼자가 된다. CCTV가 있으면 모를까. 분명 할머니의 혼자를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할머니의 혼자가 눈에 선하다. 시간이 멈춘 방에 누워서 조용히 찬송가를 부르다 혼잣말을 하기도 하고, 냉장고를 계속 여닫거나 괜히 화장대 서랍을, 옷장을 열어보기도 한다. 답답할 때는 잠시 아파트 복도로 나와서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외투와 지팡이를 챙겨 밖으로 나간다. 돌계단에 앉아 주머니에 미리 챙겨 넣은 휴지로 입 주변을 훔치면서 말동무를 기다려보기도 한다. 그러나 의지와 상관없이 자꾸 갈리는 이 소리 때문에 그나마 담소를 나누던 동네 할머니들도 이내 일어나버린다. 그러면 할머니는 다시 지팡이를 똑- 똑- 거리며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누워서 빈 천장도 바라보고, 미리 찍어놓은 영정사진이 놓인 책장도 바라보고, 느지막이 해가 넘어가는 베란다 창문도 보다가 자신의 마르고 건조한 손과 팔과 얼굴을 쓰다듬으며 일찍 집에 들어오지 않는 손녀를 기다린다.
지금 나는 할머니의 혼자와 닮아있다. 마주 앉은 자리가 비어있는 식탁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좁은 집안을 배회하며 냉장고 안을 열어보고, 괜히 책장에 진열된 장식품을 오랫동안 쳐다본다. 할머니의 자세처럼 옆으로 누워 팔을 괴고 방구석을 응시하며 고민의 소용돌이에 의식을 던져보기도 한다. 몸을 돌려 누우며 혼잣말로 고민하는 것들을 중얼거리기도 한다. 대개 해답 없는 질문들뿐이다. 눈에 들어오는 건조한 피부를 쓸어 어루만질 때마다 내가 나도 모르게 할머니의 행동과 닮아있음을 알아챈다. 그러다가 친구들이 온다고 하면 늘어졌던 몸을 일으켜 할머니처럼 최선을 다해 청소를 하고 기다린다. 사람들 속에 섞이지 않은 이 시간 동안 유독 할머니의 혼자를 되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