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14
오삼불고기를 먹으면 기운이 날 줄 알았다. 목도 칼칼하고, 코 속에 뾰루지가 나고 생리도 안 하는 거 보니 뭔가 몸의 균형이 틀어진 거 같아 극약처방이 필요했다. 매운 거나, 아니면 고기 지방류를 먹으면 내 몸이 ‘그래 주인아! 바로 이거야! 이걸 원했다고!’ 할 줄 알았는데 얼마 못 먹다가 결국 남기고 식당을 나왔다. 입에서 짠 내가 가시기 전에 서둘러 서점으로 향하던 도중, 배 아래쪽이 묵직하게 아팠다. 오늘은 서점이고 미술관이고 다 포기하고 나는 따뜻한 차와 화장실이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차를 마시면서도 그림에 집중을 못 해 결국 아이패드를 덮고 계속 하품만 하며 또 다른 뷰잉 시간을 기다렸다.
오늘 찾아간 뷰잉은 여태 본 집과 다른 아파트 형태였다. 사실 집 보다 한국인을 만나는 것이 더 반가웠다. 비용은 중요치 않았다. 고작 10일의 더블린 생활기를 나누고 싶었다. 같이 이야기하는 사람도 나와 같은 방을 뷰잉하러 온, 어찌 보면 경쟁자이지만 누가 됐든 간에 어떻게든 모두 각자의 집을 구할 것이니, 불안한 마음보다는 그냥 ‘드디어 만났다 한국인’ 이 안도감으로 대화를 나눴다. 대화를 마치고 어학연수로 온 B씨와 함께 내려오며 우리가 사는 곳이 같은 더블린 7 지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한국 사람을 그리워했는데 막상 집까지 오랜 시간 옆자리에 함께할 것을 생각하니 어떤 이야기로 30분 이상을 버틸지 막막했다(극 내향인이 이래서 힘들다). 원래 집으로 가려던 계획을 급하게 변경했다. 원래 있었던 계획처럼. "아! 저는 시티로 가요."
버스에 내려서 북적거리던 거리가 1주 일차에 방문했던 George's Strreet Arcade 건너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때는 아케이드 밖으로 나와 어수선한 분위기에 얼른 급하게 다시 들어간 기억이 났다. 어수선했던 것이 아닌, 활기찬 분위기였는데 놀란 마음에 내가 마음대로 분위기를 전환해버린 것이다. 늘 같은 곳만 방문했던 나에게 다리 하나 건너 또 다른 더블린을 마주할 수 있었는데 말이다.
울퉁불퉁한 돌길을 좀 걷다 보면 늘 아일랜드 소개 장면에 나온 붉은 The Temple Bar가 보인다. 그 주변으로 펍들과 다양한 상점이 모였는데 벌써부터 이들의 불금이 영국 국기 문양의 파란 원피스를 입은 남성의 D라인에서 느껴졌다.
가장 더블린 다운 장면을 만나 신나게 셔터를 누르고 돌아서는 길에 유리창에 비친 모습이 혼자여서 이곳 분위기와 상반되는 내 모습이 조금 외롭게 느껴졌다. ‘고작 10일인데, 다음에 누군가와 함께 오면 되지.’라며 아쉽게 발길을 돌렸다. 버스정류장을 향해 가다가 그래도 이대로 집 가긴 아쉬워 2미터 남겨두고 ‘나는 지금 뭐가 먹고 싶지? 한식은 이제 질려, 중식, 일식, 아시아 음식 질려, 그러자니 햄버거도 싫고, 아이리쉬 브렉퍼스트는 지금 아침이 아니니 안 해주겠지?’ 질문만 하다 결국 갈증이 나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평소에 사 먹지 않던 떡볶이와 야채, 토마토, 포도를 씻어 가지고 올라와 방 안에서 <무한도전>을 보며 먹으니 내가 살던 봉천동에서 보내는 금요일 밤과 닮아 마음이 잠시 아늑해졌다. 이렇게 조금씩 적응하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