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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인 May 15. 2023

궤도를 벗어났다

2023.04.17

궤도를 벗어난 느낌이다. 


우주를 완만하고 평화롭게 유영할 수 있는 궤도에 있다가 새로운 모험을 하겠다고 그 궤도를 이탈했는데, 나는 또 다른 궤도의 ‘진입’을 당연하게 기대했지만 정작 내 행성은 궤도를 벗어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뭘 해야 할지 몰라 오늘은 방 안에만 있었다. 밥 먹으려고 나가는 길 마주친 거울 속 내 얼굴은 이미 속이 바싹 타 들어가는 얼굴이었다. 누가 봐도 여행을 하기 위해 온 얼굴이 아니었다. 한국에서 일을 못 구했을 때도 이런 얼굴이었을까. 나는 지금 일을 하고 있지 않지만 기분은 마치 대행사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했을 당시 야근하고 퇴근하는 외로운 귀가와 같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 의아했지만 결국은 곁에 있는 가족과 친구가 없는 외로움과 비슷하다는 것을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깨닫는다. 


나는 지금 집이 필요한 걸까. 친구들에게 하소연할 시간이 필요한 걸까, 가족에게 기댈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걸까. 위로를 원할까. 응원을 원할까.


지금 아무것도 힘이 되지 않는다. 그나마 문 앞에 온 강아지만이 이곳에서 내 힘듦을 알고 찾아와준 유일한 방문객 같았지만 난 오늘 강아지를 쓰다듬을 마음의 여유 따위 없다. 2주밖에 안되었지만 방 안에서 2주의 시간을 삭힌 기분이 든다. 익은 것이 전혀 아니었다.


방문을 열면 항상 홈스테이 집 강아지 Willow가 턱을 계단에 괸 채 조용히 쳐다보고 있다.



방에 틀어박혀 앉아 계속 방 구하는 메일을 하루에 수십 통씩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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