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사람의 마음
"빵———."
귀가 깨질듯한 소음으로 지하철이 플랫폼에 들어선다. ‘얼른 정신 차려, 집에 안 가?’ 규칙적인 바퀴소리와 경적소리가 나를 흔들어 깨운다. 나는 벤치 끝에서 척추만 널브러진 채 기대어 앉아있다. 몇 대의 지하철을 보냈는지 이제 알 수가 없다. 퇴사를 했다, 했어. 이게 그렇게 기운 빠질 일인가. 바닥에 놓인 짐들을 흘끗 본다. 바닥에 맥없이 쓰러져있다. 주인과 닮았다. 아직 4월 초인데 몸 주름 접히는 곳에 땀이 스멀스멀 난다. 짐들이 꽤나 무거웠던 모양이다.
3년 동안 이 회사를 다녔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언제나 나는 떠나는 사람의 마음이었다. 이 사람의 책상은 캐릭터 상품으로 휘황찬란하다. 저 사람은 '내가 세상에서 제일 바빠'라고 서류 뭉텅이들이 대신 말해준다. 반면에 내 책상은 하얗다. 그나마 허용한 것이 갑 티슈다. 내 책상은 퇴사자의 것과 같거나, 입사 전 회사에서 세팅해둔 기본의 것과 같다. 입사한지 1주일이 됐던 어느 날에는 긴장이 풀렸는지 늦잠을 잔 적이 있다. 평소에 일찍 오던 애가 왜 안 오지, 어? 책상에 아무것도 없네. 상사는 나의 통보없는 퇴사로 오해했다. 서둘러 출근하는 내 모습을 보고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한다. 그렇게 내 늦잠이 덮여진 적이 있었다. 원래 나는 짐 올려두는 걸 싫어한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이곳에 마음이 정착되지 않았다. 그래서 늘 떠날 사람처럼, 책상에 최소한의 취향조차 반영하지 않았다. "참…대.단.해" 내 책상을 지나친 동료와 상사들이 늘 한 마디씩 거들었다.
다시 바닥에 놓인 짐들을 본다. ‘여행 다니면서 찍어!’의 폴라로이드 카메라, ‘여러분, 오늘 ㅇㅇ가 퇴사해서 제가 선물을 준비했어요.’의 목걸이, ‘이거 진짜 아무것도 아니에요, 부담갖지마시라고..’의 마카롱, ‘오다가 주웠어요.’의 양말. 선물과 함께 녹음된 그들의 말이 짐들 사이에서 흘러나온다.
‘쟤는 왜 말을 저렇게 해. 사람 기죽이면 행복할까.’ 서로가 각자 생각하는 예의 방식이 달랐다. 그래서 늘 화가 났다. 3년 동안 가장 외로웠다. 화 때문에 서걱거리는 고통이 가슴에 느껴졌다. 가장 사람이 이해 안 되는 시기였다. 그것이 기피증으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 ‘어디서 만날까, 가고 싶은 데 있어?’라고 친구가 물어보면 나는 늘 ‘사람 없는 곳’이라고 대답한다. 이 회사 들어오기 전에 난 어땠지. 내 직업 분야에 있어서 최고는 못되더라도 이름은 알리고 싶었지. 잘하고 싶었어. 이제는? 꼴도 보기 싫어. 욕은 또 엄청 많이 했을까. 늘 얘기한다. 나도 이런 내가 싫어. 정말 싫어.
그런데, 질릴 대로 질려버린 인연들이 지금 가장 따뜻한 사람들로 내 앞에 있다. 그동안 느낄 수 없었던 가장 배려있는 모습으로 나를 송별해준다. 그 배려와 친절 틈에 끼어 정신없이 그들과 같이 1층 로비로 내려왔다. 다 같이 단체사진을 찍는데 나는 어디를 보고 있는지 모르겠다. 분명 내 카메라로 찍고, 내 카메라는 전무님이 들고 있다. 근데 나는 지금 무슨 표정을 짓고 무슨 대답을 하는 거지. 내 말들이 정리가 안됨을 느낀다. (친구는 나중에 단체사진을 보더니 특이하고 아이러니하다고 했다.) 포옹을 하고 인사를 나눈다. 포옹을 나눈 상대방은 3년 동안 가장 남처럼 지낸 직속 상사다. 나가는 순간까지 내 마음은 굳게 닫힐 거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그들의 인사를 쭈뼛쭈뼛 받으면서 그제야 서서히 모두 다 어쩔 수 없었겠지 하고 이해하는 마냥 내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그래, 서로 부드러워서 나쁠 건 없다. 우리가 지금처럼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서로를 더 아쉬워했다면, 그만큼 가까워질 수 있을 뻔했던 시간들을 낭비하진 않았겠지.
이젠 진짜 집에 가야 할 시간이다. 친구들이 퇴사를 축하하기 위해 우리 집으로 오고 있는 길이다. 양손에는 예상치 못한 선물들이 묵직하다. 평소에 조용하던 핸드폰은 퇴사 축하한다는 메시지로 분주하다. 내가 나를 먼저 축하하기 이전에 남들이 더 많이 먼저 나를 축하해주고 있었다.
지하철이 도착했다. 속 시원할 것만 같던 퇴사는, 결국 작은 미련의 티가 되어 나를 따라 지하철에 탔다. 후회는 없지만 내가 예상했던 기분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