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핸드폰 안의 사진들을 차근차근 정리하며 짧은 글과 함께 인스타그램에 기록 중이다. 사진을 한 장씩 꺼내보며 기록하다 보니 그동안 잊고 있던 순간들이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다.
몇 년 전 대구에서 혼자 살았던 아파트 베란다의 풍경이다. 이전까지 함께 생활하셨던 부모님께서 갑자기 남해로 귀촌을 하셨다. 평생 바닷가 마을에서 노후를 보내고 싶은 꿈이 있으셨던 부모님은 어느 날 갑자기 남해로 이사를 가셨다. 덕분에 혼자 집에 남게 된 나는 독립 아닌 독립을 하게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 살아보는 설렘은 잠시였고 여러 가지 집안 일과 꽃집까지 맡아서 운영하느라 버거워서 몸도 마음도 힘들던 때였다.
그때부터였다. 그전에는 관심조차 없던 식물들이 눈에 들어오고 하나둘씩 집에 생기기 시작했다. 근무하던 꽃집이 백화점 건물의 실내에 위치하다 보니 햇빛도 많이 들어오지 않고 물관리도 쉽지가 않았다. 식물들이 점점 시들어 가거나 상태가 안 좋아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로 느껴졌다. 그렇게 아픈 식물들을 하나씩 집에 데려와 돌보기 시작한 일이 식물과 만남의 시작이었다. 집으로 데려온 식물들을 하나씩 관찰하고 공부하면서 제일 중요하고 필요한 건 빛과 물, 그리고 바람이라는 걸 새롭게 배우게 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문제는 집이 1층이다 보니 바로 앞에 아파트가 가려져 있어서 바람도 햇빛도 많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가족들이 함께 살아갈 때는 사람의 온기가 있어 햇빛이 부족해도 모르고 살았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던 부지런한 엄마 덕분에 그동안 바람의 소중함도 알지 못했다. 결국 혼자 사는 나에게는 이 환경이 더 이상 맞지 않는 장소라는 걸 식물을 통해서 느끼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혼자 살게 되면서 자주 아프고 힘이 없던 이유가 나에게 맞지 않는 환경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화점 안의 맞지 않는 환경에서 점점 시들고 말라가던 식물들은 내 모습이었다.
그때부터 식물들이 잘 자랄 수 있는 바람이 잘 들고 햇볕이 따뜻하게 들어오는 그런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식물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는 환경이면 사람에게도 좋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동네 부동산 사장님께 식물이 잘 자라는 곳이면 된다고 했더니 처음에는 신기하게 보시더니 다행히 나의 상황을 알아주셨는지 몇 달 동안 열심히 집을 찾아주셨다. 근무지와 가까운 거리의 깨끗하고 예쁜 인테리어의 아파트들을 구경해 보았지만 겉으로 보기에만 좋아 보이고 왠지 마음이 가지 않아서 포기하려던 중에 좀 낡고 오래된 아파트였지만 베란다가 넓고, 창문을 열면 앞뒤로 햇빛과 바람이 많이 들어오는 밝고 환한 그런 집을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
내가 찾은 새로운 집에서 식물들과 나는 조금씩 건강해지고 안정을 찾아갔다. 식물들을 돌보고 아껴주면서 나 스스로를 돌보고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그때의 행복했던 독립생활을 1년쯤 한 뒤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하게 되었다. 이전까지 결혼 생각이 전혀 없었던 내가 누군가를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까지 하게 된 건 어쩌면 식물들과 같이 살던 따뜻하고 안온했던 이 작은 집에서의 시간들 덕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결혼을 하고 대구에서 살던 집과 꽃집을 정리하면서 이사할 때 제일 먼저 함께 살던 반려 식물들을 챙겨서 왔다. 이제는 습관처럼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식물들 상태를 체크해 주고 인사하는 게 하루의 시작이 되었다. 식물과 나무는 사람처럼 움직일 수 없어서 늘 사랑과 관심을 갖고 바라봐 주어야 한다. 말하지 않아도 필요로 하는 적당한 물을 주고 빛과 바람이 들어오는 환경도 만들어주어야 한다. 식물들과 같이 살면서 그 존재들이 주는 소리 없는 메시지를 귀 기울여 듣다 보면 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 그리고 때로는 우리를 더 좋은 곳으로 안내해 주기도 한다.
사람은 식물과 같다.
빛을 향해 자란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랩 걸, 호프 자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