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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 한달살이: 어색한 동거

by 야간비행


한달살이 국가와 도시가 결정되면 가장 먼저 에어비엔비를 통해 숙소를 예약한다. 대개는 3~4개월 전 예약을 하며 가끔은 6개월 전에 예약을 하기도 한다. 숙소는 도시중심에서 가깝고 주변에 식당, 마트, 카페 등 편의시설과 걷거나 운동할 수 있는 공원이나 시설이 있는 장소를 선정한다. 대부분의 숙소는 방에 욕실과 간단한 주방시설이 있는 원룸(스튜디오)이다. 모든 부동산이 그렇듯이 크기와 위치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며 그 나라의 1인소득에 비례한다.


나는 한 달 100~200만 원 범위의 숙소를 구한다. 이 정도의 예산으로는 국민소득 1만 불 이하 국가에서는 좋은 원룸을 얻을 수 있으나 소득 3만 불 이상의 국가에서는 원룸 가격이 비싸서 욕실과 주방을 공유하는 공유숙소를 얻는다. 그동안 동남아 국가에서는 상태 좋은 원룸에서 살았으나 삿포로, 타이베이, 프라하에서는 단독 원룸이 아닌 공유숙소에서 한달살이 했다. 공유숙소는 약간 불편하나 여러 사람이 함께 부딪치며 살아가는 즐거움이 있어서 나 홀로 여행객에게는 더 좋을 수도 있다.


2025.5.28일 부다페스트 한달살이를 마치고 비엔나로 왔다. 오스트리아는 1인소득이 6만 불에 가까운 선진국이며 수도인 비엔나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관광지이다. 숙소 가격이 매우 높아서 욕실과 주방을 주인과 공동 사용하는 방하나가 월 180만 원이다. 이 가격도 나 혼자라서 180만 원이지 두 명이 쓴다면 300만 원이 넘는다. 방만 하나 빌리면서도 13번의 한달살이 중 가장 비싼 숙소였다.


예약한 숙소는 비엔나 중심에서 가깝고 주변에 교통, 식당, 마트 등 내가 원하는 시설들이 있는 좋은 위치이다. 조금 비싼 가격에도 이 집을 예약한 것은 위치가 좋을뿐더러 지금까지 거쳐간 많은 숙박객들의 리뷰가 칭찬 일색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주인 모녀가 친절하고 잘해줘서 아주 편안하게 지냈다는 글이 많았다. 비엔나 가기 며칠 전 숙소주인과 문자로 도착시간을 협조하였는데 주인이 매우 친절하고 손님에 대한 배려심이 많은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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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에서 기차로 비엔나로 향했다. 유럽국가 간 이동은 열차로 다닐 수 있어서 간편하고 값도 저렴하다. 부다페스트에서 비엔나 중앙역 까지는 19유로(3만 원)이며 2시간 40분 거리이다. 주중이어서 인지 기차가 텅 비어있어서 편하게 왔다. 기차 타기 직전 10년을 잘 버텨준 캐리어 바퀴가 빠져버렸다. 웬만해서는 택시를 타지 않는데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다닐 수 없어서 비엔나 역에서 숙소까지 택시를 탔다.


운전사가 무척 친절하게 짐을 실어주고 환영인사를 하더니 출발하면서 수작을 부린다. 오늘 차가 많이 막히는데 미터기로 하면 요금이 많이 나오니까 미터기 끄고 60유로에 가 주겠다고 한다. 내가 어리숙해 보이는 모양이다. 운전사에게 잠깐 기다려 달라고 한 후 숙소 주인에게 메시지를 보내 운전사가 60유로를 달라고 하는데 택시비가 얼마 정도 나오는지 그리고 길이 막히는지를 물었다. 주인은 평일이어서 길 막히지 않으며 미터기로 30유로쯤 나올 거라고 한다. 비엔나 오자마자 나쁜 운전사 만나서 속상하겠다고 위로한다. 운전사에게 미터기로 가자고 얘기하고 차를 빙빙 돌릴 수 도 있을 것 같아 구글 지도를 경로로 확인했다. 사기가 안 통한다 싶었던지 운전사가 얌전히 정상적으로 운전한다. 어디 가나 귀여운 사기꾼은 있다.


숙소 주인은 운전사 때문에 비엔나에 대한 첫인상이 안 좋겠다면서 나에게 대신 사과를 한다. 자기를 만나면 비엔나 사람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도 한다. 친절하고 배려심 있는 집주인이라는 생각에 흐뭇했다.


에어비엔비 숙소는 젊은 층이 부업으로 하는 경우가 많지만 은퇴한 퇴직자들이 노후 생활수단으로 운영하기도 한다. 노후 생활비를 충당하는 것이 주목적이겠지만 젊은 여행객들과 만나고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그동안 만났던 은퇴한 집주인들은 모두 영어가 가능하고 적극적이며 대화를 좋아하고 부지런한 사람들이었다. 이번의 집주인도 비엔나 대학을 졸업했고 3개 국어가 가능한 가방끈이 제법 긴 퇴직 여성이다.


숙소에 도착하니 여주인이 반갑게 맞이한다. 사기 치려던 택시운전사를 비난하면서 비엔나에는 좋은 사람이 훨씬 더 많다면서 나를 위로한다. 친절하고 깔끔하고 쾌활한 여성이다. 집은 한국의 15평 아파트 크기이며 방 두 개, 욕실, 화장실, 주방이 있고 모든 곳이 호텔처럼 깨끗하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군대 내무검사 하는 것처럼 모든 것이 정돈되어 있으며 각이 잡혀있다. 여주인의 성격이 얼마나 깔끔한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내가 쓸 방도 널찍하며 방안에 침대, 소파, 식탁등 가구가 잘 비치되어 있다. 지금까지 살아본 13번의 숙소 중 가장 만족스럽다.


주인은 집안 구석구석을 보여주고 가전기구 작동법을 설명해 준다. 한 달간 내 집이라 생각하면서 편하게 지내라고 한다. 주인이라 생각하지 말고 친구로 생각하고 격의 없이 지내라고 한다. 자기를 “사비네”라고 부르라고 하면서 내 이름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묻는다. 나는 “한 “으로 불러달라고 했다. 식탁 위에 있는 커피, 차, 과일은 물론이고 냉장고에 있는 거 아무거나 먹어도 된다고도 한다. 방하나 짜리 숙소 치고는 좀 비싼 편이기는 하지만 주인의 여러 가지 친절과 배려가 감동이다.


그런데 이 집에 여주인 혼자이다. 이전 투숙객들의 리뷰에서는 모녀가 투숙객들에게 매우 친절하다고 해서 모녀가 함께 사는 줄 알았는데 딸이 두 달 전 취업이 되어 엄마 혼자 관리하고 있단다. 대부분의 손님이 젊은이들 이어서 엄마처럼 돌봐주었을 텐데 지공거사가 와버리니 여주인도 조금 어색해하는 모습이다. 여주인과 둘이 좁은 집에서 한 달을 살게 되는 소설이나 영화에서 본듯한 어색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방구조도 애매하다. 주인방과 내방이 문으로 연결되어 있다. 문 앞에 소파를 배치해서 드나들 수는 없지만 불빛이 새어 나올 정도이다.

KakaoTalk_20250531_203301321_01.jpg 깔끔한 욕실

주인이 덜렁이 이면 나도 대충 하고 살면 되는데 깔끔한 주인과 함께 살아야 하니 여러 가지로 조심스럽다. 깨끗하고 각 잡힌 욕실과 주방을 함께 사용해야 하니 보통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하도 깨끗하게 해 놔서 물 한 방울만 떨어져 있어도 표시가 난다. 주방이나 욕실을 사용하고 다음에 가 보면 내가 썼던 물건이 다시 정돈되어 있고 각이 잡혀있다. 내가 손씼고 튄 물 몇 방울도 흔적 없이 닦여져 있다. 특히 화장실 바닥이 방바닥처럼 반질반질하다. 소변보는 게 조심스럽다. 나는 평생 소변을 서서 봤다. 친구 중에 아내와 딸의 불평 때문에 앉아쏴 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사나이가 어떻게 앉아서 “라고 핀잔을 했었다. 하지만 서서쏴 후 바닥을 보니 이곳저곳에 파편이 튀어 있다. 파편을 휴지로 닦으니 닦은 자국까지 보인다. 할 수 없이 평생 안 해본 앉아 쏴를 하고 있다.


우리는 서로 이름을 부른다. 한국의 정서상 남녀가 이름을 부르면 뭔가 특별한 사이처럼 느껴진다. 한국 지공거사와 오스트리아 여인이 서로 다정하게 이름을 부르면서 한 달간 어색한 동거를 하게 되었다. 사비네는 나만 보면 활짝 웃으면서 인사를 하고 도와줄 것이 없는가를 묻는다. 친구에게 하듯이 나에게 수다를 떤다. 나에게 어제는 뭐 했으며 오늘은 뭐 할 거냐를 물어보고 나는 묻지도 않는데 자기는 오늘 뭐 할 예정이다는 등 사소한 것들을 쾌활하게 떠든다. 이런 친절하고 쾌활한 성격 때문에 그동안 투숙객들의 리뷰가 최고 등급이었을 것이다. 사비네가 친구처럼 생각하고 편히 지내라는 말이 와닿는다. 사비네와 나는 주인과 손님이 아닌 친구가 되어가고 있다.


2년 전 삿포로에서도 주인과 함께 살면서 방만 빌리는 한달살이를 했었다. 당시는 부부가 운영하는 숙소였다. 부부와 친해져서 저녁이면 함께 맥주 마시고 티브이로 한국 드라마를 보기도 했다. 여주인 미찌꼬와 함께 온천과 맛집을 찾아다니며 친척집에서 지내듯이 아주 편하고 즐겁게 한달살이 했다. 미찌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함께 여러 온천을 다녔던 즐거운 추억이 생생하다.


이번에도 성격 좋고 쾌활한 사비네와 즐거운 한달살이를 하게 될듯하다. 문제는 사비네는 혼자 사는 여성이라는 점이다. 나이는 모르지만 60쯤 되어 보인다. 일본의 미찌꼬는 약간 덜렁이 이면서 70대이고 부부가 함께 살았기 때문에 함께 다니더라도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실수로 미찌꼬가 샤워하고 있는 욕실문을 열어 버렸던 비상 상황에서도 스미마생 하면서 서로 웃어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사비네는 신경이 쓰인다. 욕실과 주방을 쓰고 난 다음 흠잡힐곳이 없는지 살피고 또 살핀다. 사비네도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의 쾌활함 속에 뭔가 어색함이 보인다. 나에게 사비네가 조금 신경 쓰이듯이 사비네도 내가 신경 쓰이나 보다. 자기가 만들었다고 하면서 빵 몇 개를 가져다주면서 어색해한다.


여행이 좋은 것은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경치, 음식, 문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경험의 폭을 넓혀주고 내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 비엔나에서 여주인과의 어색한 동거는 추억에 남을 새로운 경험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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