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국가 중 단 한 곳만 여행할 수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터키를 선택할 것이다. 이 나라만큼 다양한 역사 유적과 경이로운 자연을 함께 품은 곳은 드물다. 그 중심 도시 이스탄불에는 ‘고고학 박물관’이라는 이름의 보물이 있다. 이곳은 단순한 전시관이 아니라, 세계사를 온몸으로 체험하는 살아 있는 강의실이다.
이스탄불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요새화된 도시 비잔틴으로 존재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로마 제국의 수도를 이곳으로 옮긴 후 1100년 동안 로마와 비잔틴 제국의 수도였고, 이후 600년간은 오스만 제국의 중심지로 군림했다. 도시 곳곳에 유적이 산재해 있으며, 그중에서도 고고학 박물관은 특히 비잔틴 이전의 고대 유물들을 중심으로 전시하고 있다. 이곳에서 '기원후(AD)'보다 '기원전(BC)'이라는 표기가 훨씬 더 자주 보이는 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유물 하나하나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 땅 위를 얼마나 많은 문명과 제국이 지나갔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전시된 유물은 대부분 터키 영토에서 출토된 것으로, 단지 이 나라의 과거를 넘어 인류 고대사의 실물 교과서라 불릴 만하다.
세계 각국의 박물관은 대체로 자국의 역사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이집트, 중국, 한국 등은 저마다 수천 년에 걸친 자국의 이야기를 잘 보여준다. 반면, 제국주의 시절을 거친 유럽의 대형 박물관들, 런던의 대영박물관, 파리의 루브르, 베를린의 박물관 등은 다른 나라에서 가져온 유물들로 채워져 있다. 이집트 미이라나 바빌론의 성문이 유럽 도심 한가운데에 있다는 사실은 어딘가 어색하고 쌩뚱맞다. '왜 이 유물이 여기에 있어야 할까, 누군가의 고향을 빼앗아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따라붙는다.
그러나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은 다르다. 자국 땅에서 출토된 유물만으로도 세계사를 조망하게 한다. 규모는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보다 작지만, 담고 있는 서사는 훨씬 풍부하고 입체적이다. 이곳은 ‘자국사로 바라본 세계사’라는 드문 시각을 가능케 하는 공간이다.
그 배경에는 아나톨리아 반도의 지리적·역사적 특수성이 자리한다.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에 놓인 이 땅은 선사시대부터 수많은 민족과 제국의 각축장이었다. 크고 작은 문명이 흥망을 거듭하며 지나갔고, 그 흔적이 지금도 곳곳에 남아 있다. 아나톨리아는 문자 그대로 ‘문명의 회랑’이라 할 만하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단일 국가의 역사를 넘어 인류 문명의 흐름을 보여준다. 인류 최초의 정착 거주지로 알려진 BC 10,000년의 괴베클리 테페, BC 8000년의 차탈회위크, 트로이 문명, 히타이트 제국, 프리기아와 리디아 왕국, 앗시리아와 메디아 제국, 바빌로니아와 페르시아, 알렉산더 제국, 로마 제국까지. 이 작은 땅 위에 이토록 많은 문명과 왕국, 제국이 등장했다는 사실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프리기아의 미다스 왕은 손에 닿는 모든 것을 금으로 바꾸는 전설로 유명하며, 그가 남긴 풀 수 없는 매듭은 훗날 알렉산더 대왕이 칼로 잘랐다는 고르디온의 전설로 남아 있다. 리디아는 세계 최초로 금화와 은화를 만든 왕국으로 알려져 있고, 마지막 왕 크로이소스는 솔론과 이솝 같은 인물들과도 교류했다. 에게 해 인근 도시들에서는 탈레스, 헤로도토스, 히포크라테스 같은 인류사적 거목들이 활동했다. 특히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그리스 전쟁을 기록하며 ‘역사학의 아버지’가 되었다.
이 모든 이야기를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은 간결하면서도 강렬하게 전시한다. 특히 트로이 문명과 알렉산더 대왕의 묘에서 출토된 석관이 전시된 특별 전시관은, 고대 지중해 문명의 서사를 압축해 놓은 듯하다.
터키 전역에는 기독교 유적도 깊게 박혀 있다. 아라라트 산과 반호는 아담과 이브, 노아의 전설과 연결되고, 아브라함이 머물렀던 하란도 터키 남부에 있다. 성모 마리아가 마지막 생을 보냈다고 전해지는 셀축, 에베소 전서와 후서가 쓰인 에베소, 초기 기독교 7대 교회 모두가 현재의 터키 땅 안에 있다.
로마 제국의 수도였던 이스탄불은 동로마와 비잔틴 제국을 거치며 기독교 문명의 중심이 되었고, 1453년 오스만 제국의 정복 이후에는 이슬람 세계의 거점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렇게 동서양, 고대와 현대, 기독교와 이슬람의 교차로였던 이 땅은, 그 자체로 인류 문명의 축소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은 단순한 전시장이 아니라, 인류 문명의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체험의 공간이다. 나는 이 박물관을 걸으며 유물을 바라보는 눈보다, 과거의 시간을 손끝으로 더듬는 마음으로 전시장을 누볐다.
유물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숨결을 담고 있다. 누군가의 손으로 만들어졌고, 누군가의 눈앞에서 쓰였으며,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그것들이 지금 내 눈앞에 있다. 고대의 사람들도 지금의 우리처럼 하루를 살고, 사랑하고, 웃고, 울었을 것이다.
한 달간 이스탄불에 머물며 보낸 시간은, 고대와 현대, 동양과 서양, 전설과 현실이 한데 얽힌 문명 드라마 속을 여행하는 듯했다.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은 그 드라마의 프롤로그이자 에필로그였다.
과거는 결코 죽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여전히 현재를 숨 쉬고 있다.
바로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이 그것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