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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한달살이: 박물관에서 만난 제국의 초라한 그림자

바람처럼 자유로운 삶의 방식 그 자체가 유물

by 야간비행

여행을 할 때면 가장 먼저 그 도시의 박물관을 찾는다.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가장 압축적이고 진솔하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700년 전, 칭기즈칸의 후예들은 말을 타고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며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그들의 말발굽 소리는 유럽의 궁전과 아시아의 초원을 뒤흔들었고, 세계의 지도는 그들의 이름 아래 다시 그려졌다. 몽고반점을 나누어 가진 먼 친척으로서, 나는 그 위대한 역사의 흔적을 직접 보고 싶은 설렘을 안고 울란바토르의 국립박물관과 칭기즈칸 박물관을 찾았다.

KakaoTalk_20250819_154447450.jpg 몽골 국립박물관 :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 유목민 삶의 여러 모습을 전시
KakaoTalk_20250816_015248335_04.jpg 칭기즈칸 박물관: 유목민 제국의 영광을 전시

칭기즈칸 광장 뒤편에 자리 잡은 국립박물관은 3층 규모로, 몽골의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역사를 시간 순서대로 전시하고 있다. 그런데 전시실을 한 바퀴 둘러보는 내내 기대감은 점차 실망과 의아함으로 바뀌었다. 몽골의 화려한 과거를 보여주는 유물은 몇 개 없고 유목민의 생활상과 1900년 이후 현대 몽골의 모습이 대부분이다. 최신식으로 지어진 칭기즈칸 박물관도 마찬가지이다. 몽골초원을 지배했던 흉노, 그리고 세계를 정복했던 몽골 제국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지만 그 양과 질이 너무나 빈약하다.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제국을 건설했던 몽골 제국에 대한 전시관은 더욱 초라하다.


지난봄 비엔나 박물관에서 합스부르크 제국의 흥망성쇠를 수많은 유물로 확인했던 것처럼,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에서 문명의 격전지를 유물로 체험했던 것처럼, 중국의 박물관에서 4대 문명의 찬란한 모습을 봐왔던 것처럼, 나는 몽골 박물관에서 세계 제국을 건설한 영광의 증거들을 보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박물관에 들어선 순간, 나의 기대는 안타까움으로 바뀌었다. 텅 빈 공간, 빈약한 전시품들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넘어 마음이 아팠다.


수천 년 전 인류 최초의 도시를 건설했던 메소포타미아 문명, 피라미드를 쌓은 이집트 문명, 그리고 대제국을 이룩했던 로마와 오스만의 유물들은 그 크기와 정교함으로 당대의 위력을 웅변한다. 그들의 박물관은 그 자체로 역사의 거대한 전시장이다. 하지만 몽골 제국의 흔적은 지도상의 거대한 영토 표시와 역사 교과서의 짧은 기록 외에 현실에서는 찾기 힘들다. 박물관에는 커다란 디지털 지도로 과거 찬란했던 몽고의 영토를 시기별로 표시하는 것 외에 별다른 유물은 안 보인다. 낡은 말안장, 칼과 활만이 과거 몽골군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KakaoTalk_20250816_015248335_19.jpg 디지털 지도: 시기별 유목민 제국의 영토를 전시한다.
KakaoTalk_20250816_015248335_07.jpg 칭기즈칸 시절 군사장비: 칼, 활, 마구 등이 전시되어 있다.

벽면에 커다랗게 설치된 디지털 지도에는 시기별 유목민의 세력권을 표시하여 과거 유목민족과 몽골제국의 위대함을 과시하고 있다. 한반도의 북부가 유목민 세력권에 들었다 나갔다 하다가 13세기에 완전히 붉은색으로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고대 한반도 북부와 만주 지역은 초원 지대와 인접해 있어, 말, 기마술, 수렵 등 유목민의 문화적 요소가 깊숙이 스며들어 있었다고 한다. 부여와 고구려는 강력한 기마군을 바탕으로 성장한 국가들이어서 초원 유목민족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우리 역시 유목민의 피가 흐르고 있을 것이며, 그 영향으로 내가 지금 유목민처럼 세계를 유랑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전시실을 걸으며 ‘이게 전부인가?’라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거대한 제국의 유물이라기엔 전시된 것들이 너무나 소박하고 볼품없다. 칼, 활, 안장 등 몇몇 무기와 복식, 그리고 그림들이 전부이다. 그마저도 복제품이 대부분이고, 진품이라 해도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아 낡고 희미하다. 몽골의 과거 화려한 역사를 고려한다면 몇 달 전 방문했던 터키 이스탄불 박물관, 오스트리아 비엔나 박물관, 중국의 여러 박물관들에 비해 너무나 초라하다.


박물관을 나선 후에도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몽골 제국은 정복지에서 얻은 온갖 진귀한 보물과 유물들을 수도로 가져왔을 텐데, 대체 왜 이토록 박물관의 소장품들은 빈약한 걸까. 숙소로 돌아와 인터넷을 뒤지고 AI에게 물었더니, 유목민의 특성상 유물이 적을 수밖에 없고 그나마 남은 유물 대부분이 러시아와 중국 박물관에 있다고 한다.


이스탄불 박물관의 찬란한 유물이 그 땅에서 출토된 인류 문명의 기록이었듯, 몽골 박물관의 빈약하고 초라한 유물은 유목민들의 삶과 철학을 담고 있다. 그들은 정착하지 않았기에, 화려하고 거대한 건축물이나 정교한 도자기를 남기지 않았다. 그들은 오직 말과 초원에 의지해 이동했고, 그들의 소유물은 유목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이었다. 그래서 박물관에 전시할 유물 자체가 별로 없다.


게다가 몽골의 역사유적과 유물이 빈약한 것은 수집과 보존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칭기즈칸의 후예들은 정복자로서의 기록보다 삶의 터전인 초원의 안녕에 더 관심을 두었다. 그래서 몽골 국립박물관은 우리에게 '유목 문명'의 본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다른 제국들은 정착과 소유를 통해 문명의 흔적을 남길 수 있었지만 몽골의 유목민은 눈에 보이는 화려한 유물이 아니라, 드넓은 초원과 끝없이 펼쳐진 하늘, 그리고 바람처럼 자유로운 삶의 방식 그 자체가 유물이다.

KakaoTalk_20250819_160138236.jpg 몽골의 유물은 드넓은 초원, 하늘, 바람 그리고 자유로움 삶의 방식 그 자체가 유물이다.

빈약한 유물에 대해 안타까웠던 마음은 몽골이라는 나라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애정으로 변했다. 세계를 정복한 역사가 오히려 거창한 유물을 남기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본질을 증명하는 역설인 것이다. 몽골은 박물관의 빈약함 때문에 오히려 더 위대한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는 것들로 가치를 평가하는 현대 사회의 편협한 시선을 비웃듯이 말이다.


울란바토르 시내를 걷다 보면 거대한 빌딩과 현대적인 상점들이 즐비하다. 한국의 동탄신도시를 닮았다고 해서 ‘몽탄신도시’라고 부를 만큼, 도시의 겉모습은 활기차고 풍요로워 보인다. 그러나 국립박물관에서 마주한 몽골의 잃어버린 역사와 유물들을 떠올리니, 이 화려함이 왠지 모르게 공허하게 느껴진다.


여행자는 겉으로 보이는 풍경만을 좇아가지 않는다. 때로는 한 나라의 아픔이 서린 공간에서 그들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한다. 몽골에서의 한 달 살이는 단순히 시원한 날씨를 즐기는 피서가 아니라, 이 땅의 깊은 역사를 더듬는 사색의 시간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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