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나는 내 운명을 한치 앞도 알지 못하여 아주 길게 헤매었다. 도망갔고, 버렸었고, 떠나갔었다. 때론 맞섰고, 저항했고, 쟁취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깨닫지 못한 인간인 나는, 운명의 정체를 찾으려 애쓸 수록 미궁으로 빠져버려 헤어나오지 못했다. 그저 망망대해 위에 좌초되어 어느곳도 떠나가지 못하는 배 위로 널부러진 채 하늘을 바라보는게 전부인 인간. 그게 나였다. 나는 밤 하늘의 별을 셈하며 나의 길이 어디인지 찾고 있었다. 나는 사랑하고 싶었으나 사랑을 거절했고, 완벽한 나를 찾고 싶었으나 언제나 버거워했다. 이 모든 길은 방황이었고, 고통이었다. 나 스스로를 고통에서 몸부림치게 만든 사유는 오로지 단 하나, 나의 깊은 심연이었다.
캄캄하게 꺼진 심연에는 아이, 스승, 도둑이 있었다. 아이는 사랑을 구걸했고, 스승은 아는 체를 했으며, 도둑은 탐했다. 그들은 허락 없이 배에 타기도했고 내가 태우기도 했다. 그들은 제각각 역할을 해내면서 내 시간에 살아왔다. 그들이 내게 달콤한 열매를 내어줄 때마다 내 눈은 멀어졌다. 내 눈이 멀어질 수록 나는 나 스스로와 멀어졌다. 가장 가까워야 할 나 자신과 멀어지는 것은 인간의 원죄를 가중시킬 뿐이다. 두터운 원죄로 둘러쌓인 심연이 느껴졌고 마음이 단단한 밧줄에 결박된 상태가 되었다.
나는 아이, 스승, 도둑이 다른 얼굴을 한 채로 다가와선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 꺠달았다. 눈 먼 나를 구해야겠다며 정신을 차렸을 때, 신성의 외침이 들려왔다.. 신성의 소리는 아이, 스승, 도둑의 얼굴을 거짓없이 드러내게 하여 실상을 비추었고, 눈을 멀게했던 열매를 버리도록 하였으며, 언제나 내 안에 존재하는 사랑을 반사하여 볼 수 있도록 거울을 내밀었다.
신성은 나의 심연 속에 있어왔다. 그 속으로 들어가 육안으로 들여다보면 온통 새카맣게 그을러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사람의 육안으로는 아무것도 보이는게 없으니 인간의 판단, 인간의 사고, 인간의 육체는 운명을 알아낼 재간이 없다. 그러나 심연은 오로지 내 안에 존재함을 알아차리고자 애썼다. 이는 나만이 알아 낼 수 있는 감각이자 나의 운명을 가리키는 나침반으로서, 밖에서 구함이 없어야 했다. 심연에는 죄책감과 신성이 함께 존재했고, 이들은 서로 뒤엉켜 굴러가며 현실에 드러났다. 운명의 정체는 다름아닌, 이들이 만든 굴레였다.
모순적이게도 운명을 알고자 하는 시도를 멈추고 내 안의 소리가 외부의 구원을 절단했을 때, 나의 심연에 신성이 온전히 존재하게 되었다. 이를 밖에서 구한 시도는 헤메어 돌아온 과거 이야기가 되었다. 신성이라 불리는 존재는 언제나 내 곁에 있어왔다. 구함 없이 구해지는 일생을 살아간다는 만고의 진리를 긴 겨울을 거치고서야 알게되었다. 인생은 마치 해와 달이 우주의 법칙대로 그저 존재하는 것에 의심이 없는 상태와 같다는 것을. 해와 달의 거리가 멀어져 서로를 비추지 못하여 보이지 않을 때나, 빛으로 환히 드러나 떠있을 때나 그들은 언제나 그곳에 있을 뿐임을 아는 것, 그게 그들이 존재하는 이유이자 생동하는 이유인 것을, 이는 인간의 삶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달은 별의 갯수를 셈하지 않는다. 해는 구름의 명암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달과 해는 서로의 거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햇빛으로만, 달빛으로만 각각 존재하는 세계 또한, 없다. 겹치지 않는 이원적인 것이 제 각각의 존재로서 굴러간다. 아주 당연하게, 있을 뿐이다. 만약 또다른 겨울이 다가와, 나에게 긴 겨울잠을 요청한다면 그대로 따라가야만 할 것 같다.
이 글은 내면의 사랑을 찾아 멀리 떠나간 시간에서 자신이 가진 굴레를 알아채고자 시도한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한 개인이 가진 사람의 의무는 오로지 한 가지, 각자의 굴레를 발견하여 그를 굴리고 있는 존재를 알아차리는 것 뿐이었다. 그 이외에 해야 할 일은 모두 부차적인 것이며, 타인에게서 구할 수 없었다. 일말의 기다림이 영겁의 시간처럼 길게 느껴지더라도, 다그치지 않고 묵묵히 찾아가길 바랄 뿐이다. 인간이 가진 각자의 굴레 속에는 저마다의 천국과 지옥이 도사린다. 그곳엔 극적인 환상이나 낙원이 없음을 고백한다.
# 소설의 인물과 사건은 창작적 의도에 따라 가공된 요소임을 밝힙니다.